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이젠 유럽으로!
이젠 런던이다! © 서진완
비행기가 이스탄불 하늘을 출발한 지 3시간 20여분의 비행 끝에 작은아이가 가장 오고 싶다던 런던에 도착했다. 드디어 유럽여행이 시작되었다. 큰아이는 숙소까지 우리를 안내했다. 아이들은 런던이 처음이었지만 지도를 보며, 숙소를 쉽게 찾았다. 앞으로는 혼자서도 배낭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곳 숙소는 배낭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도미토리이기 때문에 다른 배낭여행자들과 함께 머물러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런던 물가 때문에 숙박료는 가족실에서 함께 지냈던 이전 숙소들보다 훨씬 비쌌다. 큰아이는 이미 지난 산티아고 길에서 이런 숙소에서 지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반가워했지만 아내와 작은아이는 낯설어했다. "우리 아이들이 배낭여행을 오면 이런 곳에서 자겠구나!" 아내는 도미토리에서 새로운 런던에서의 하루를 시작하며 한마디 했다. 일주일동안 이곳에서 머무르게 될 텐데 아내가 아이들을 위해 이곳에서 지내는 것을 흔쾌히 받아줬다.
3층은 큰아이, 2층 작은아이, 아내는 맨 아래층을 그리고 난 그 옆에 붙은 침대 아래층에 자리를 잡았다. 층고가 낮아 앉으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도미토리 침대는 책을 보려면 누워야만 했다. 그래서 침실에서는 대부분 잠만 자고 대부분은 로비에 나와 시간을 보낸다. 일행 중 잠꼬대라도 심하게 하면 그날은 정말 힘들다. “가능하면 일찍 자는 것이 좋아요!” 큰아이가 제 엄마에게 알려준 노하우다.
대영 박물관 내부의 모습 © 서진완
작은아이가 그토록 바라던 빨간 이층버스를 탔다. © 서진완
영국의 빅벤(Big Ben) © 서진완
아이들에겐 ‘해리포터’ 우리에겐 ‘노팅힐’
(위) 영화 해리포터에서 해리가 카트를 밀고 벽속으로 사라졌던 그 장면을 연상할 수 있다/(아래) 셜록홈즈가 살았던 곳 © 서진완
쌀쌀한 날씨에 과학박물관은 반가기만하다! © 서진완
옥스포드와 캠브리지에서 아이들은...
문을 열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맑게 개어있지만, 날씨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어서 따뜻하게 입게 했다. 옥스포드 행 이층버스에 올라 맨 앞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버스는 런던 시내를 빠져나와서 한적한 교외 길로 접어들었다. 올림픽 이후 런던이 대대적으로 정비를 한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깨끗해졌다. 옥스포드로 가는 길에 큰아이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보였다. 어제 밤에 감기몸살 기운이 있어서 약을 먹었다고 했는데, 아침에 여전히 춥고 한기가 느껴졌고, 옥스포드에 도착하자 오한까지 겹쳤다. 따뜻한 밥과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고 약을 먹게 했다.
고풍스런 건물이 인상적인 옥스포드를 찾았다. © 서진완
고풍스런 건물들이 사람을 압도한다. 도서관을 보고 나서 이곳을 오가는 학생들이 성적표를 받고 탄식을 했다는 ‘탄식의 다리’를 보면서 이런 다리가 캠브리지대학교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중세 때부터 내려온 이 대학에서 교회가 갖는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의 역사도 함께 얘기해 주었다. 고풍스러운 골목길에서 이어지는 대학 건물들을 둘러보고 넓게 펼쳐진 잔디광장에서 잠시 산책도 했다. 영화 해리포터에도 나왔던 유명한 크라이스트처치 컬리지(Christ Church College)를 보고 나오는 길에 과학역사박물관에 들렀다. 작은아이는 이곳에서 옛날 과학자들이 직접 사용했던 망원경, 현미경, 그리고 각종 실험장비 등을 관심 있게 살펴보았다. 우리는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전까지 작은아이가 충분히 시간을 갖고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다음날 캠브리지에서의 모든 일정도 작은아이의 결정에 따랐다. 좋아하는 것이 구체적인 작은아이 덕에 캠브리지에서의 일정은 아주 단순해졌다. 처음 찾은 과학역사박물관은 아담한 규모로 옥스포드에서 본 것과 유사하게 다양한 과학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종 물품들을 유형별로 서랍을 열어서 볼 수 있게 해 두었고, 인체구조의 모형을 직접 맞추어 볼 수 있게 했으며, 기타 멀티미디어 자료를 통해 과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게 했다. 오래된 과학실험 장비 등을 보면서 작은아이도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작은아이는 지구과학 박물관에서의 시간을 즐거워했다. © 서진완
예전에 우리 부부가 이 두 곳에 왔을 때는 캠퍼스의 건물을 주로 보면서 아이들이 크면 다시 오리라고 했었는데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적당한 시기에 다시 찾은 셈이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대학이라는 곳을 보고 느끼게 했다. 언젠가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그때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가 둘러본 두 곳의 캠퍼스에서 아이들의 선호가 갈렸다. 큰아이는 옥스퍼드를, 작은아이는 캠브리지가 더 맘에 든단다. 나름대로 선호하는 이유도 달랐다.
"아빠도 이런 곳에서 교수를 하고 싶으세요?" 큰아이가 돌발적으로 질문했다. "만약에 너처럼 일찍 이런 곳을 보고 자극을 받고 꿈을 키웠더라면 아마도... 지금과는 또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도 몰라." 나중에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하게 되든 이곳에서 보고 느낀 경험은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런던 아이를 끝으로... 파리로...
런던을 떠나기 전에 런던 아이(London eye)를 태워주겠다는 작은아이와의 약속을 지켰다. 국회의사당에 불이 들어오고, 강변에 비친 아름다운 건물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작은아이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템즈 강변에서 보낸 시간을 좋아했다. 동생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아이는 웃었다. 이번 영국 여행은 작은아이에게 특별했던 것 같다.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영국을 가장 가고 싶어 했고, 보고 싶은 것도 많다고 했었는데, 그 목적을 모두 이루었다. 큰아이도 동생이 원하는 과학박물관과 그리니치(Greenwich) 천문대를 찾는 일을 많이 도와주었고 기꺼이 함께 했다. 영국에 도착하고 보통의 우리 여행패턴과는 달리 분주하게 다녔다. 이곳에서 아이들 스스로 보고 싶은 장소와 동선을 정하게 했더니 생각보다 가볼만한 곳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문을 닫았거나 시간이 맞지 않아서 못 본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계획했던 대로 다 보았다.
스스로 길을 찾는 것도,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표지판이 잘 되어 있기도 했고 모르면 물어볼 수 있어서 힘들지 않게 잘 찾아다녔다. 이제는 아이들이 우리를 안내할 수 있을 만큼 컸다. 우리 부부도 아이들의 뒤를 따라다니느라 힘들었고 많이 피곤했지만 그래도 즐겁게 지냈다. 이전에 우리 부부가 몇 차례 와서 본 런던과 달리 이번에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영국을 다시 본 셈이다.
아침에 일어난 큰아이의 상태가 다시 나빠졌다.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약을 먹고 좀 더 자도록 하고 아내와 나는 배낭을 정리했다. 좁은 도미토리에서 배낭을 정리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옆에는 아직 자는 친구들도 있기 때문에 조용히 정리를 해야 했다. 정리한 배낭을 로비에 내려놓고 체크아웃을 했다. 영국에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이제 떠난다. 아이들은 다시 이곳을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또 어떤 모습으로 오게 될지는 아이들 몫으로 남겨두고 이젠 파리로 향한다.
우리만 좋아하나봐
프랑스 국도를 따라 달리다보면 이처럼 그림같은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 서진완
히드로 공항을 떠나 1시간 만에 파리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리스한 르노(Renault) 차량을 인수받았다. 비가 내려서 천천히 공항을 빠져나와 주유소를 찾았다. 주유구도 다르고 주유방식도 다르고, 게다가 내비게이션을 작동하는 방식 또한 달라서 한참 동안 주유소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예정된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여행의 묘미이기는 하지만, 점차 빗줄기가 세지면서 급기야 폭우가 쏟아졌다. 그래도 자동차가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으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베르사이유(Versailles) 근처 숙소에서 우리 모두 늦게까지 정신없이 자고 눈을 떴을 때 벌써 9시가 넘었다. 흐린 날씨지만 더 이상 비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창문을 열어놓고 신선한 과일과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고 배낭을 다시 정리했다.
“멋있는데요?” 우리 부부가 처음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았을 때 엄청난 감동을 느꼈는데, 아이들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좋아요!” 알았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으마.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고도 아이들은 큰 감흥이 없다. 그래도 우리 부부에겐 감동적이다! © 서진완
(위) 생 시크라포피 전경/ (아래)생 시크라포피를 배경으로 © 서진완
툴루즈를 나와 다시 국도를 달리는데 큰아이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여기는 신호등이 없어도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으니 좋은 것 같은데요?” 국도에 설치된 로터리 방식의 교차로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차량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차량이 소통될 수 있는 규칙이다. 이런 규칙을 지킬 수 있는 환경과 사람들 또한 이러한 약속을 인식할 수 있다면 좋은 제도다. 정부와 사회가 제도를 만들지만, 이를 지키려는 시민의식은 법과 제도, 그리고 사람에 대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내는 며칠 전 한밤중 아무도 없는 거리를 파란불이 켜질 때까지 정지선에 서 있던 차량운전자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이곳 사람들의 질서의식도 거론했다. 큰아이는 제도와 의식에 대한 나와 아내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제법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자연스로운 토론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앞으로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아이들과 다양한 주제를 논의할 수 있겠다 싶다.
<정리 = 이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