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뮌헨의 독일박물관(위)과, BMW 박물관(아래) ⓒ 서진완
뮌헨(München)을 찾은 이유는 전적으로 아이들 때문이다. 작은아이는 독일박물관(Deutsches Museum)을 보고 싶어 했던 반면에 큰아이는 독일에 오면 BMW, AUDI, BENZ, Porsche 등 독일차에 관한 박물관을 보고 싶어 했다. 뮌헨하면 바로 BMW를 떠올릴 수 있는 곳인지라 BMW 박물관(BMW Welt)을 찾았다. 이곳은 독일 뮌헨 BMW 4실린더 빌딩 부근에 있는 BMW의 출고 센터로 2007년에 개장한 곳이라는데 일반적인 출고센터와 달리 브랜드를 설명하는 역할을 확장하여 현행 BMW 차량의 세부적인 항목을 보거나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곳이었다. 체험공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BMW에 익숙해지고, BMW 오너들이 차를 몰고 가는 것을 지켜보도록 만들어져 있다. 특히 소용돌이치는 물살과 같은 형태의 특별전시장(Double Cone)과 1만 4천 평방미터에 달하는 유리와 철제로 구성된 건물(Cloud Roof)이 눈길을 끌었다. 큰아이는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흥분하기 시작했다. 나도 처음으로 BMW에서 만든 각종 자동차를 직접 타 보기도 했다.
작은아이의 표정은 독일박물관에 가자 환하게 달라졌다. 이곳은 독일은 물론 세계 최대의 과학과 기술 분야 박물관으로 1903년 독일 공학자협회에서 설립하였다고 하는데, 시내 중심가를 관통하는 이자르 강에 있는 작은 섬에 위치해 있었다. 강 건너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에 들어갔다. 아내가 여권이 들어있는 가방을 가지러 차로 간 사이에 아이 둘을 박물관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아내를 찾아 차로 돌아갔다. 이미 아이들은 박물관에 들어가 있고, 아이들이 충분히 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박물관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사이에 아내와 나는 시내를 구경하기로 했다. 고풍스러운 시내 중심가는 역시 다른 독일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래된 건물과 성당을 중심으로 화려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아내와 산책을 하면서 사야할 물품도 구입하고 관심 있는 것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작은아이는 물리 분야를 중심으로, 큰아이는 비행기를 중심으로 보았다고 했다. 엄청난 전시물을 하루 만에 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기 때문에 작은아이는 자신의 관심분야를 중심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서로 다른 관심은 아이들의 얼굴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오스트리아(Austria)에서 알프스산을 넘어 슬로베니아(Slovenia)로 가는 길은 정말 예뻤다. 날씨가 맑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비가 내리거나 흐린 날씨 때문에 이 좋은 경치를 만끽하지 못했다. 그러나 구름에 가려진 설산의 모습이 간간히 바라보이는 것조차도 멋있게 보였다. 오스트리아 쪽에서 알프스산맥을 넘는 것은 그렇게 가파르지 않았다. 수도 류블라냐(Ljublijana)는 과거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1991년 슬로베니아가 분리 독립하면서 과거처럼 그대로 수도가 되었다. 물론 현재에도 이 도시는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크고 활발한 도시이지만 시내는 너무나 조용하고 한산했다. 시내 중심가에 벼룩시장이 들어서고 거리음악가들이 음악을 연주하기도 해서 이곳만큼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구도심의 중심지는 조그만 강을 중심으로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언덕위에 류블라냐성이 있고, 언덕 아래에 강을 따라 오래된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짤츠부르크(Salzburg)에 와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큰아이는 안내소에 들어가 지도를 구했다. 이곳도 고색창연한 건물들과 돌로 이어진 골목길이 정겹게 느껴졌다. 벼룩시장에서는 슬로베니아를 상징하는 갖가지 기념품에서부터 과일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거리를 지나갔다. 한 무리의 일본관광객들이 지나간 뒤, 주위를 둘러봐도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 동양인의 얼굴을 찾기는 어려웠다.
슬로베니아 류블라냐 거리 ⓒ 서진완
슬로베니아의 하늘에는 여전히 구름이 많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보였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단기간 이용할 수 있는 고속도로 스티커(7일권)를 구입했다. 크로아티아(Croatia)는 EU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슬로베니아에서 크로아티아로 들어갈 때는 국경검문소에서 출입국검사가 이루어졌다. 아이들에게는 류블라냐에 이어 쟈그레브(Zagreb)도 낯선 이름이었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되면서 크로아티아의 수도가 된 쟈그레브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건축과 문화 등이 혼합된 곳이라고 했는데, 다양한 갤러리와 박물관이 들어서 있는 시내 중심가는 역시 오스트리아의 어느 도시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늘에 구름이 짙어졌다가 햇살이 비치기도 하고 다시 어두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다. 성 마르코 성당을 다시 찾았다. 언덕길로 올라가는 골목길이 차가 흔들릴 정도로 작은 돌로 촘촘하게 만들어져 인상적이었다. 언덕 위에는 14-15세기에 걸쳐 건축된 고딕 양식의 성당이 있다. 성당 지붕의 오른쪽은 쟈그레브의 문양을 왼쪽은 크로아티아의 문양을 상징하는 모자이크 무늬의 타일로 새겨져 있다. 성당 하나에 크로아티를 상징하는 전체를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크로아티아 축구대표팀 유니폼에서 본 건데...” 큰아이가 본대로 크로아티아의 현재 국기 문양이기도 하다. 다시 언덕을 내려오면서 쟈그레브 대성당을 보았다. “정말 조용하네요!” 유고슬라비아 연방 시절에는 같은 나라였지만 현재는 독립된 두 곳 모두 수도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한적했다. 도시 곳곳에 나무들과 풀들이 많이 있어서 이곳이 수도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는 평범한 마을 같다.
크로아티아의 쟈그레브 성 마르코 성당 ⓒ 서진완
어두운 느낌과 밝은 느낌...
고속도로로 헝가리(Hungary) 영토내로 들어오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한속도가 130km이지만 쏟아지는 비속에서 그만큼 속력을 낼 필요가 없다. 부다페스트에 들어서는 순간 어둡고 침울한 동유럽에 대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다뉴브(Danube)강변으로 고풍스런 건물이 이어졌다. 아내와 큰아이 역시 뭔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가라앉아있는 듯하고 음침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예약한 아파트는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있어서 근처에 있는 개인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헝가리는 EU회원국이지만 유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아파트 주인에게 방값을 지불하고 주차비와 교통비로 사용할 돈을 환전했다.
부다페스트의 경치는 사랑스럽다. ⓒ 서진완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좋은 전망은 역시 언덕위로 올라가서 흐르는 다뉴브강과 고색창연한 건물들을 보는 것이다. 누군가 이곳에 오면 너무나 사랑스러워진다고 했는데, 이 말이 맞다. 어부의 요새(Halaezbastya) 주변은 아기자기한 첨탑과 교회 건물이 어우러져 예쁘고 아담했다. 이곳에서 바라본 다뉴브강은 아름답게 굽이쳐 이곳을 흘러갔다. 옛날부터 이 강은 여러 나라가 대립해왔던 곳이었고, 이 강의 이남지역은 소위 발칸반도로 현재에도 여전히 화약고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이 강을 둘러싸고 여러 나라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분쟁의 소지도 그만큼 많았다. 로마시대에 이미 라인강과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 그리고 이곳 댜뉴브강이 로마의 국경선이자 방위선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지키는 로마군은 최강의 군대로 알려져 있을 만큼 이 지역의 중요성과 함께 그만큼 치열한 전투가 자주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독일의 나치 침공이후 소련의 지원,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로서 어두웠던 시기동안 이 강은 여전히 지금처럼 흘렀을 것이다. 시내 곳곳에는 아직도 사회주의 시절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해가 완전히 지고 거리에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에 맞춰 야경을 보러 나갔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카메라에 그 모습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정말 예쁘고 아름답다. 큰아이는 이곳의 경치를 보면서도 자신이 안고 있는 고민거리를 얘기했다. 강을 내려다보면서 아이들의 얘기를 잘 들었다. 지금까지 잘 하고 있고 앞으로 더 잘 할 것이라고, 그리고 너무 초조해 하지 말라고 했다. 이런 곳에서는 먼저 경치부터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큰 아이는 나의 대답에 옅은 미소로 대답했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앞에 두고 고민을 하다니... 내 어깨로 아이의 손이 올라왔다.
부다페스트에서 절대 놓쳐선 안될 '야경'이다. ⓒ 서진완
부다페스트에서 2시간 정도 달리면 슬로바키아(Slovakia)의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가 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유채꽃이 들판 가득 피었다. 슬로바키아는 이름 그대로 슬로바키아어를 사용하면서도 같은 슬라브족인 체코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로 있다가 1993년 체코로부터 평화롭게 분리 독립하였다. 언덕위에 높이 솟은 하얀색의 브라티슬라바성과 근처에 있는 데빈(Devin)성도 보았다. 브라티슬라바는 분리 독립된 이후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었는데, 수도라고 하기에는 작고 아담했다. 트램이 구시가지를 다니고 거리는 한산했다.
브라티슬라바와 오스트리아의 빈(Wien)과의 거리는 정말 가깝다. 게다가 같은 EU회원국이기 때문에 국경을 통과할 때 검사도 하지 않기 때문에 표지판을 보지 못하면 국경을 통과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빈 시내로 들어오자 부다페스트와 브라티슬라바에서 본 어둡고 칙칙한 느낌은 찾아볼 수 없고, 건물들은 하얗고 밝은 느낌이 든다. 유서깊은 건물들이 도시를 가득 메우고 거리는 활기차고, 건물들은 화려하고 보다 고급스럽게 보인다.
빈은 너무나 볼 곳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들이 결정한 곳을 중심으로 보기로 했다. 하늘은 맑고 바람도 적당하게 불어서 걷기에 더 없이 좋았다. 지도를 들고 앞서가는 큰아이를 따라 의회 건물에서 시작해서 레오폴드(Leopold) 박물관을 보고, 화려한 합스부르크왕조의 영화를 느낄 수 있는 건물들 사이를 걸었다. 호프부르크(Hofburg) 왕궁에서 공연하는 음악회 안내를 보면서 이곳에서 연주회나 오페라를 한번 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음악의 도시로 빈 필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이곳에서 클래식 음악소리를 연상하면서 길을 걸었다. 많은 음악가들이 이 길을 걸었을 테고, 이곳 궁정에서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수많은 연주를 했을 것이다.
빈 레오폴드 박물관 ⓒ 서진완
“다음에 제가 꼭 이곳에서 음악공연을 보여드릴께요!” 작은아이는 엄마와 내가 나누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 다시 이곳에 온다면 오페라를 꼭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약속했다. 우리 둘이 다시 오자고! CD로만 듣던 빈 필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이번에는 기획하지 못했다. 너무나 할 것이 많고 또 가야 할 곳도 많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아름다운 빈의 모습을 스케치할 수 있는 정도로만 눈에 담아야만 했다.
숙소 내 벽면마다 이곳 출신의 화가 클림트(Klimt)의 작품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엘리베이터에는 그의 'Kiss' 사진이 붙여져 있다. 여전히 바깥 날씨는 흐리고 공기는 차가웠다. 아침에 벨베데레(Belvedere)궁전과 쇠넨(Schönnen)궁전을 찾았다. 유럽 전역이 이상기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6월이 가까워 오고 있는데 늦은 가을에나 느낄 수 있는 싸늘한 추위가 엄습해 왔다. 사람들도 옷깃을 여미고 정원에서 서둘러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차안에 있는 것이 훨씬 아늑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현재는 두개의 궁전 모두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중 상부 궁전에 바로 클림트의 키스가 전시되고 있다. 두 아이 모두에게 이곳에 소장된 유명한 작품들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소개해주었지만, 둘 다 그림에는 시큰둥했다. “우리가 자주 미술작품을 보여주지 못했던 탓일까요?” 아내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었다. 역시 관심이 행동에 반영된 것이리라.
쇤부른궁전으로 갈 때는 마치 비라도 내릴 기세였다. 이곳은 합스부르크가의 여름 별궁으로 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인데 오스트리아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녀의 딸 마리 앙뜨아네트가 살았던 곳으로 아름다운 정원과 화려한 궁전 내부로 베르사이유 궁전과 비교될 만큼 많이 알려진 곳이다. 노란색을 좋아했던 황후 마리아 테리지아의 취향이 반영되어 궁전 전체의 모습이 노란색을 띠고 있다. 그러고 보면 마리 앙뜨아네트는 오스트리아 공주로서 그리고 이후 프랑스 왕비로서 베르사유까지 가장 아름답다는 두개의 궁전에 모두 살아본 사람이지만, 그 말로를 생각하면 아름다운 궁전에 산다는 것이 덧없이 느껴졌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들이 단지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모차르트가 어릴 때 이곳에서 마리아 테리지아 황후 앞에서 연주를 했다는 곳이 이곳 어딘가일텐데 그 곳이 더 궁금해졌다. 그녀가 어린 모차르트의 연주에 감동해서 소원이 무엇인가 물었고, 이에 모차르트는 어린 마리 앙뜨아네트를 쳐다보며 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는 얘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리 앙뜨아네트가 만약 그와 결혼을 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왕궁을 나오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칠 그런 비는 아니었다.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진짜 경찰이 맞나?
프라하(Prague)로 오는 길 내내 비가 내렸다. 차는 숙소에 두고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시내중심가로 나갔다. 우리는 언덕위에서 아래로 카를(Charles)교를 건너 구도심으로 다시 내려오는 동선을 잡았다. 역시 큰아이가 지도를 들고 앞장을 섰다. 우산을 쓰고 다니느라 불편했지만 고풍스런 건물들 사이로 비가 내려 더 운치가 있다. 프라하성에 오르자 비는 더 많이 내렸다. 다행히 거리는 돌로 만든 길이라 빗물이 흘러도 걷는 데 불편하지 않았다. 큰아이가 안내한대로 계단으로 연결된 길을 택한 덕분에 가장 빨리 성으로 올라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올라가면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좋았다. 정원을 둘러싸고 마치 거대한 요새처럼 만든 이곳 성에서 경비들의 교대식도 보고, 성 비투스(St. Vitue) 대성당에서는 한동안 앉아있기도 했다. 지금까지 모두 건강하게 여행을 잘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성당에 들어가면 항상 마음속으로 이런 기도를 하게 된다. 아무런 탈 없이 지금까지 왔던 것처럼 남은 여행을 그렇게 갈 수 있도록.
프라하 천문시계 ⓒ 서진완
성당을 나서자 비는 잦아들고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성에서 내려오며 바라보는 길은 이곳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카를교로 연결된다. 다리 근처로 가자 하늘이 맑아지면서 햇살이 비쳤다. 다리 양옆에 있는 문은 물론 다리 사이에 세워진 섬세한 조각 작품 하나하나가 우리 시선을 끌었다. 그 중 사람들이 꼭 만져야만 하는 조각들이 있다. 우리 가족 모두 다 건강하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만졌다. 다시 이곳에 오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여행을 마치게 해달라는 마음이 더 컸다. 다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뒤로 그리고 앞으로 번갈아가며 바라보는 이곳 광경은 이곳에 오면 절대 놓치면 안 된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구시가지 광장에서는 구 시청사 건물에 설치된 15세기에 완성되었다는 천문시계가 눈에 띈다. 이 시계가 완성되자 더 이상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지 못하도록 시계제작자의 눈을 멀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는데 작은아이는 이러한 전설 얘기를 듣는 것보다 천문시계 그 자체에 관심을 보였다.
프라하의 야경 또한 놓칠 수는 없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차를 가지고 구시가지로 다시 들어갔다. 강가에 잠시 차를 주차했는데, 경찰이 와서 여권을 확인하며,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며 나가라고 했다. 낮에 걸었던 시내 중심가로 들어갔지만 주차할 공간을 찾을 수가 없다. 해가 완전히 지고 프라하성과 카를교를 중심으로 불이 들어왔다. 주차할 공간을 찾는 우리에게 경찰복장을 한 사람이 차를 세웠고, 출입이 허용되지 않은 곳에 들어왔다며 여권과 운전면허증을 요구하더니, 잠시 후 벌금을 내야한다고 했다. 앞서 가던 다른 차들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처럼 보였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왔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벌금을 내라고 했다. 결국 실랑이 끝에 10 유로를 집어주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고,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빠, 경찰이 아닌 것 같은데요?” 차를 돌려서 나오는데, 두 아이가 사기꾼 같다고 얘기했다. 현금이 없다고 하자 길건너 현금출납기가 있는 곳을 가르쳐준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낯선 곳에서 어떤 상황에 처할지 몰라서 어쩔 수 없었다.
프라하의 야경 ⓒ 서진완
“아낙수나문~” 차문을 열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다함께 웃었다. 여행을 하면서 큰아이가 자주 외치면서 어느 순간부터 우리 가족 모두가 기분 나쁜 상황이 되면 외치는 우리들만의 주문이다. 그럴 때마다 웃게 된다. 아낙수나문은 고대 이집트의 제사장 이모텝이 사랑에 빠진 파라오의 정부인 이름이다. 파라오가 눈치 채자 아낙수나문은 자결하고 이모텝은 자신의 혀가 잘리고 눈이 뽑힌 뒤 사람의 살을 파먹는 풍뎅이들이 우글거리는 석관에 산 채로 갇히는 형벌을 받는다. 큰아이는 그가 되살아나면 인류 최악의 재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아낙수나문을 언급했었다. 체코에서 독일로 가는 길에 다시 경찰을 만났다. 우산을 받쳐도 빗물이 들이칠 정도로 빗줄기가 굵어졌는데, 체코 국경을 넘기 직전 경찰차가 우리 차 앞을 추월하면서 우리 차를 세우라고 표시를 했다. 여권을 검사하고 차량에 부착된 스티커를 확인했다. “이번에는 뭘까요?” 아이들은 걱정했다. 서투른 영어로 독일로 조심해서 가라고 한다. 차를 다시 출발하며 “비네(Vignette)가 없었더라면...” 큰일날뻔 했다.
참고로 체코에서 발행하는 고속도로 이용권인 비네는 두장으로 한 장은 스위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와 달리 우측 아래쪽에 부착하여야 하고, 다른 하나는 소지하고 다니며 경찰의 불시 검문 시 제시하여야 한다(10일권이 17유로). 아이들은 어제 본 경찰이 가짜라는 확신이 든 모양이다. 이 경찰과 많이 달랐다고 했다. 독일 국경을 넘었다. 더 이상 체코 경찰을 만날 일은 없겠지!
<정리 = 이미루>
2017년에는 꼭 나라밖 여행을 다녀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