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두런 웅성거리는 소리
연한 불빛이 비치니 싸리문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아이들의 목청껏 부르는 노랫소리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옷을 단단히 껴 입고 양말도 두겹이나 겹쳐 신고 목에는 목도리를 칭칭감고 깊이 잠들어 못 일어날까봐 쪼그리고 앉아서 자려던 참이었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메고 온 자루에 눈깔사탕이랑 뻥튀기 건빵 등을 잔뜩 챙겨 넣어 주셨고 우리는 자루를 메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 이집저집 아이들을 끌어모아 아랫마을로 향했다.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NOueMDzFVDM>
논밭에는 눈이 하얗게 내려 달빛에 비친 들판은 반짝반짝 빛나며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했다. 호롱을 넣은 등불은 앞에 있는 선생님이 들고 그 뒤로 올망졸망 동네 꼬마들은 추워서 손을 호호불며 줄줄이 뒤따라 아랫마을에 도착하면 싸리문 앞에서 “그 어리신 예수 눌 자리~ 없어.” “기쁘다 구주 오셨네~~에.”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방안에 불이 켜지면 우리는 메고온 자루를 내밀어 선물을 받고 옆집으로 가곤했다.
어느집은 기다리고 있다가 다 들어오라고 하고 따끈따끈한 아랫목에 앉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을 끓여주면 노란 코를 훌쩍훌쩍 들여마시며 맛있게 먹던 생각이 난다. 아마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기억되는 그 떡국은 어쩌다 퉁퉁 불은 멸치 한 마리 얻어 걸리면 엄청난 행운을 만난 것 같아 머리부터 꼬리까지 아작아작 씹어 먹으며 즐거워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랫마을 윗마을 다 돌고 우리동네 교회로 돌아오면 자루에 가득 들어있는 과자를 꺼내어 나누어 먹으며 크리스마스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밤이 새도록 듣느라 아이들은 신나는 축제 같은 밤을 보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발표무대가 열렸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서 아이들 재롱을 보는 시간 이었다. 솜씨 좋은 우리 작은 엄마는 나일론 천으로 층층이 원피스를 미싱에 둘둘박아 만들어 나를 입혀주었고 나는 그 때 그 드레스가 백설공주 드레스 보다 더 예쁜 것 같았다. 또 눈썹도 그리고 특히 입술에 빨간 구찌베니(루즈)를 발라주어 그게 지워질까봐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고 입을 살짝 벌리고 내밀어 침도 ‘쓰~으윽’ 들이 마시며 조심해서 삼켰던 기억이 난다.
무대에서 폴짝폴짝 뛰며 율동을 하면 마을 어르신들이 쳐주던 박수소리가 얼마나 자랑스럽든지! 그 때는 6.25 직후라 참 가난해서 교회에서 구호물자를 받아 옷도 나누어주고 옥수수빵도 쪄서 나누어주었는데 나는 가장 기뻤던 선물이 크리스마스 카드였다. 하얀 바탕에 초록색 츄리가 있고 빨간 지팡이도 걸려있고 반짝반짝 빛나는 금가루가 잔뜩 뿌려져 있던 그 카드는 받자마자 안고자고 몇 년동안 벽에 붙여두며 보고 또 보고 세상에 이렇게 예쁜 그림이 다 있나 감탄하고 또 감탄했던 것 같다.
<출처:http://www.fmkorea.com/best/278886668>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나는 새벽송을 돌고 싶다. 어느 집 문앞에서 마음껏 축복의 노래를 불러주고 혹시 우리집 문 앞에 오는 새벽송꾼들에게는 자루 한 가득 맛있는 걸 넣어주면서 축복해주고 싶다. 이렇게 어둡고 침울한 사회적분위기 속에서도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내 마음에 불이 켜진 듯 환해지고 아련하게 그리움과 행복감이 밀려오는 것은 어린시절의 긍정적이고 행복한 기억들이 주는 찬란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삶속에서 수많은 고통과 아픔을 마주할 때 이런 멋진 추억들로 인해서 다시 벌떡 일어설 수 있는 힘이되고 살아가야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