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며 살겠습니다’가 슬로건인 ‘극단 십년후’를 만나다.
한바탕 볼거리로 말초신경을 자극당하는 문화지대가 존재한다. 그러나 영원한 화두 ‘사랑’이 있기에 우리 문화예술은 동토(凍土)를 비집고 올라오는 새싹처럼 아름답고 신선하다.
연극 <블랙아웃> 속으로 -
고등학생 동희(이미정扮), 초등학생 동민(이선호扮) 남매의 부모님은 중국으로 출장을 떠났고 집에는 남매뿐인 상황에 블랙아웃이 발생한다.
첫째 날
엘리베이터는 비상전력으로 가동, 일상의 불편함으로 다가오지만, 절망이나 당황과는 거리가 있다. ‘똑똑한 사람들이 천지인 세상이니 내일 날이 밝으면 전기는 들어와 있을 거야.’
둘째 날
빗나간 기대. 교실은 벌써 찜통으로 폭발하기 직전이다. 어제 하루 동안의 암전 상황, 각자 무용담 풀어내듯 분주하다. 오후. 전기, 물, 가스의 중단이 예상되면서 불안 심리가 고개를 든다. 아파트 15층, 갑자기 낯설다. 걸어 올라간다. 비 오듯 땀이 나고 냉장고에서 녹아내리는 물로 거실이 흥건하다.
셋째 날
물,가스 공급 끊김. 대형 스크린에선 “곧 정상화 예정”이라는 공허한 멘트가 반복된다. 마트에서 절도 발생, 주민들 한층 예민하다. 욕조의 물도 바닥, 변기의 물도 없다. 냄새 진동, 마트 출입구에 물건 사러 온 주민들이 마치 개미떼처럼 모여 있다. 휴교.
넷째 날
민심이 흉흉하다. 태양도 터질 듯한 더위에 어린 동민이가 복통을 호소한다.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트는 이미 전쟁터, 물건값은 몇 배로 올랐고 현금만 거래되고 물량은 제한되어 판매된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마트 형편을 봐준다. 어렵게 구한 물건을 날치기당해도 경찰은 경위부터 쓰라고 위협적인 분위기로 서류를 내민다. 남매는 말수가 적어진다.
다섯째 날
먹고 싸는 것과의 전쟁이 이어진다. 세상이 멈췄다. 소방서 제한 급수. 각자의 상식선에서 정전의 이유와 희망을 얘기한다. 하지만 마비된 현실에 불안감은 증폭된다. 폭염에 집안의 오물 냄새는 이미 한계를 넘어 무감각해진다. 날카로운 민심이 다툼과 갈등으로 곳곳에서 분출된다. 엄마의 친구(김희경扮)는 빚진 돈을 갚으라며 동희 남매에게 남아 있던 쌀을 강제로 뺏다시피 한다.
여섯째 날
날이 밝아도 전쟁 같은 블랙아웃. 소방서 급수 불가능, 경찰(최부건扮)에게서 비밀리에 영업 중인 슈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분개한다. 그들끼리는 불편 없이 일반 생활이 유지되고 있다. 어렵게 3배 이상의 비싼 가격을 치르고 산 물건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강탈당하고 만다. 동민이는 새날이 시작될 수 있을지 혼란스럽다. 어서 날이 저물기만 바란다.
일곱째 날
주민들이 마트로 몰려간다. 경찰과 대치, 경찰 발포. 공포가 삽시간에 주민들을 지배한다. 질서를 지키라는 경찰의 확성기 소리는 묻혀버린다. 마트 유리창을 깨고 들어간다. 경찰, 속수무책. 메뚜기떼가 지나간 듯이 마트의 물건들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마치 그동안의 울분을 쏟아 붓기라도 하듯 폭군으로 변한 사람들은 마트 안의 물건들을 마구 부순다. 사무실에선 CCTV가 그들을 보고 있다. 번개, 천둥이 치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저 멀리 도시가 밝아진다.
블랙아웃 일주일간을 간접적이지만 체험하다.
재난과 이웃
막연하게나마 아이티 강국 대한민국이 전기 하나 못 고치겠나 생각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블랙아웃과 가마솥더위까지 가세한 일상은 곧 먹고 싸는 기본 생활부터 엉망이 되어 가고, 주민들은 짜증을 내며 신경질적으로 변해간다.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 같다. 주민들 목소리는 어느새 날카로운 칼날처럼 고음이다. 갈등은 군중심리를 계속 자극시킨다. 남매 동희와 동민이의 눈에 비친 현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기적인 어른들의 민낯을 보며 동민이는 동화 같은 상상을 한다. 오늘 밤 자고 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기를.
세계는 이미 거미줄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이라는 사적인 개념들은 공유, 공개를 알게 모르게 요구당한다. 컴퓨터의 끝 모를 진화는 견인차 선봉에 서있다. 블랙아웃은 순식간에 국가적 재난 급으로 수직 상승하게 된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전 영역에서 우리는 이미 유기체다. 블랙아웃, 모든 뿌리가 뒤흔들리는 대참사. 이 모든 치밀한 공유들이 어느 날 순식간에 무너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불과 일주일 전국을 먹물처럼 물들인 대정전으로 도시와 그 속에 놓이고, 버려진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마비 상태가 된다. 난폭해지고 결국은 폭동으로 비화된다. 연극 무대나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얼마든지 예상 가능한 일들이다. 재난 시 어떤 대비책을 숙지하고 있는지.
전기가 끊어진 세상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아무 불편 없이 생활한다. 오히려 기회로 여기고 폭리를 취한다. 오물이 넘쳐나고 살벌한 지역과는 사뭇 다른 지역이 동시에 존재한다. 동민이는 혼란 속에 존재하는, 판타지 같은 다른 세상을 인정하기 어렵다. 정부의 일방적 발표에 속기 쉬운 국민의 우매함, 우매한 국민의 무서운 파괴력에 대한 삼촌(류완선扮)의 말은 어린 동민에게 더욱 이해할 수 없다.
관객들의 몰입도 최상.
진지하다. 연극이라는 제한된 무대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룬다. 교훈적인 내용이면서 게다가 설명에 가까운 무대라면 지루한 공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미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깊게 빠져 있었다.
1인 다역 배우들의 열연과 <2015 책 읽는 부평>에서 대표도서로 선정된 동명의 장편 동화(박효미 著)를 각색한 탄탄한 내용이 받치고 있다. 한정된 공간이지만 7일간의 무대를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무대의 변화에 따른 적절한 조명(박진수)과 음향(김명훈), 특히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를 응용한 역동적이면서 세련된 영상(최종찬)까지 조화를 잘 이루었다.
송용일 연출가는 연극 <블랙아웃> 공연이 제한된 연령에 머물지 않고 전 연령층으로 확대되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애라 前 기획팀장은 지역문화가 활성화돼야 함에 각별한 의지를 보인다. 인천 연극이 살아야 중앙 무대에 진출하더라도 힘을 받는다고, 서울에서 가져온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만 시민들이 선호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문은주 기획팀장은 블랙아웃을 내년에도 레퍼토리로 해서 무대에 올린다고 한다. 인천 연극의 확산과 예술의 발전을 바란다는 문은주 기획팀장, 이애라 前 기획팀장의 희망을 들으면서 ‘극단 십년후’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좌:이애라 前 기획팀장, 우:문은주 기획팀장>
사회의 갈등과 군중심리? 이성과 감성의 경계는? 부정의 현상들을 극복하는 열쇠는 무엇인가? 전기는 무한정 국민에게 공급되는 에너지원인가? 우리 삶 속 전기의 중요성?
학교,가정,회사에서 다양한 토론의 장을 열 수 있다.
‘극단 십년후’의 연극 <블랙아웃>.
가족끼리, 학교 단체, 사회 구성원으로서 등 전 연령에 걸쳐 관람을 추천한다.
<‘극단 십년후’ 대표 송용일> <‘극단 십년후’의 슬로건>
** ABOUT '극단 십년후'
?1994년 창단
?대표송용일
??‘사랑하며 살겠습니다’를 슬로건으로 극단의 정서인 ‘사랑’을 담은 창작극, 교육극과 창작뮤지컬 꾸준히 공연
?‘찾아가는 연극 공연’으로 도서 문화 소외지역, 사회복지시설에 사랑 나눔 실천
?수상작품
<블랙아웃>2017 제35회 인천연극제 우수작품상, 신인여자연기상
<배우 우배>2016 제34회 인천항구연극제 최우수작품상,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은상
<화>2012 인천항구연극제 최우수작품상, 남녀우수연기상
<나비, 날아가다>2009 인천항구연극제 최우수작품상, 연출상, 극본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어머니>26회 전국연극제 은상, 여자연기자상
<사슴아 사슴아>(穆宗悲曲)24회 전국연극제 대통령상, 연출상, 여자연기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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