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뭔지 모를 불안과 원망에 휩싸여 지냈다. 그런가 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 가슴 답답함 때문에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여름방학이 가까워지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포항 바다에 꼭 가보고 싶었다. 어떻게든지 가 봐야겠다. 나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이 집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궁리를 했다. 숨통 막히는 ‘도덕 선생님’ 우리 아버지가 꼼짝없이 넘어 갈 수 밖에 없는 수단을 찾아야지. 나는 아버지께 ‘학교에서 간부 수련회를 포항으로 간다.’고 말했다. 속마음은 몹시 떨리지만 야무지게 이야기해서 수련비를 타 냈다. ‘야호, 드디어 해냈다.’ 그 당시 친했던 친구의 집에 가서도 친구 엄마·아빠께 그렇게 말했다. 무섭기로 소문난 그 친구의 아버지도 수련비를 주시면서 승낙해 주셨다.
우리는 포항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으나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가는 바다 여행인데다 어디에서 자야 하는지 뭘 먹고 살아야하는지 아무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우리 주변에 한 무리의 남녀 대학생들이 있어서 물었더니, 포항 바닷가에 간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얼른 그 중에서 순해 보이는 대학생 오빠에게 우리가 초행길이니 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그 대학생들이 묵는 텐트 가까운 곳에 조그만 방을 빌렸는데 마침 주인 할머니가 먹을거리도 주시고 주방기기도 빌려주셨다. 우리는 시장을 봐다가 맛있는 것도 해먹고 그리고는 시원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다. 머리 위에는 파란 하늘 위로 뭉게구름이 둥둥 떠가고 사파이어 색깔의 바다에서 튜브를 타고 신나게 놀았다. 정말 마음속의 무거운 그림자가 다 씻겨 내려가는 듯 즐겁고 행복했다.
그렇게, 지낸 꿈같은 2박 3일은 집안 어른들의 시선을 벗어나 자유롭게 웃고 떠들다보니 가슴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가짜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 온 며칠 뒤 담임선생님이 우리 둘을 교무실로 오라고 부르시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해서 갔더니, 선생님은 편지 한 통과 사진 4장을 펼쳐 놓으시며 한 마디 하셨다.
“이것 뭐니? 와! 몸매도 괜찮은데.”
사진에는 수영복을 입고 있는 대로 폼을 잡은 우리 둘이 있었다. 친구 집도 우리 집도 거짓말이 들통 나면 큰 사단이 날 텐데 하는 걱정에 생각 없이 학교 주소를 가르쳐 준 게 동티가 난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교무실 문짝에 그 사진을 붙이고 우리더러 문 앞에 서 있으라고 했다. 문 앞에 서 있는 동안 지나가는 선생님마다 사진 한 번 보고, 꿀밤 한 대 때리고 가셨다. 몇 시간을 서 있다가 풀려났지만, 거짓말로 부모님들을 멋지게 속이고 마음껏 자유롭게 보내다 온 여행의 그 짜릿함은 잊을 수 없다.
우째 그런 용기가 있었을까! 사춘기의 일탈과 방황은 항상 있을 진데, 크게 해로운 일이 아니면 좀 너그럽게 대해 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