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나눔'으로 따뜻함을 일궈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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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나눔'으로 따뜻함을 일궈내는 곳
  • 김주희
  • 승인 2010.10.2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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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 발 따라 … 인천新택리지] ⑮ 동구 화수1·화평동

취재: 김주희 기자

 

지름 30㎝ 짜리 스테인리스 냉면 그릇에 육수가 한 가득, 고추장 양념에 오이와 무·열무·깨, 그리고 계란 반쪽을 얹은, 볼품은 없지만 시원하고 달콤새콤 얼큰한 맛이 좋은 냉면이 있다.

세숫대야만큼 큰 그릇에 담아 나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세숫대야 냉면'. 인천시 동구 화평동을 전국적인 명소로 만든 '아이콘'이다.

경인철로변을 따라 세숫대야 냉면거리가 있는 화평동은 그러나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끊어질듯 이어진 골목길에 '깜짝' 보물을 숨겨놓은 곳이기도 하다.


화수1·화평동 주민센터

화평동은 1998년 10월 화수1동과 통합, 행정동으로는 '화수1·화평동'이라고 한다. 주민수가 8천300명인 조그마한 동네다.

화수동의 지명 유래는 후에 있을 '화수2동' 편에서 다루기로 하고 이번에는 화평동의 지명 유래를 우선 밝힌다.

화평동(花平洞)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화촌동(花村洞)과 '벌말'이라 부른 평동(平洞)을 합쳐, 두 마을 이름 첫 자를 따 지은 합성 지명이다.

화촌동은 한자 표현대로라면 지형이 꽃처럼 생겼거나, 마을에 꽃이 많아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화평동 일대가 매립되기 전, 바다로 돌출한 육지를 뜻하는 곶(串)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돼 '곶마을'로 불렸다. 그러다가 이를 부르기 쉽게 '꽃마을'이 되고, 이것이 다시 한자화해 화촌(花村), 또는 화촌동이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평동은 벌판에 마을이 있어 이를 벌말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화한 것이다.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거리.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찾는 이가 줄어 점심시간임에도 한적하다.

어찌됐든 꽃동네는 분명히 아닌 화평동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단연코 '세숫대야 냉면' 때문이다.

보통 냉면하면 물냉면의 대표격인 평양냉면이나, 비빔냉면이 일품인 함흥냉면을 떠올리게 되는데, '세숫대야 냉면'이라니.

냉면을 담는 그릇의 크기도 그러려니와 지름 30㎝ 크기 그릇에 담긴 냉면의 양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을 터다.

게다가 가격도 '4천원', 비교적 싼 가격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어 500원 하던 시절부터 이곳을 찾던 주변 공장 노동자들이 단골로서 여전히 여름철 점심시간 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화평동은 골목길이 참 정겹다. 군데군데 텃밭이 있어 정겨움을 더한다.

지금의 냉면골목이 형성되기 훨씬 전, 1980년 초까지만 해도 화평동 냉면집들은 주로 화수시장 인근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했다. 아직도 화수시장 인근과 화평동 곳곳에는 냉면집이 많다.

그러던 것이 하나둘 경인철로변으로 자리를 옮겨 오늘에 이른다고 하는데, 간판을 보면 하나같이 '원조'다. 상인들조차도 진짜 원조를 가리기 힘든 듯했고, 그 맛도 대동소이하다.

예전에는 냉면집이 수십 개나 영업했다고 했다. 양복점과 구둣가게가 냉면집으로 바뀌고, 그렇게 전성기를 보냈지만 지금은 11개만 남아 있다고 했다. 경인전철 복복선 사업으로 철로변쪽 가게들이 철거돼 없어졌기 때문이다. 덩달아 술꾼들을 끌어 모으던 일명 '방석집'들도 그때 사라졌다.


골목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이다.
 좀 멀리서 동네아낙들이 모여 함께 찬거리를 다듬는 모습을 담았다.

화평동 냉면거리는 골목길로 해서 작고 아담한 동네로 이어진다. 막다른듯 열려 있는 골목길을 따라가면 자그마한 텃밭이 있고, 어깨를 맞댄 집이 있고, 또 사람이 있다.

골목길에서 동네아낙들이 배추를 다듬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화평동은 인천에서 몇 안 되는 곳이다.
 
그곳에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작품을 남긴 극작가 함세덕(1915~1950)의 생가가 있다.

화평동 455번지에서 태어난 함세덕은 1936년 '조선문학'에 단막극 '산허구리'를 발표하며 등장했고, 1939년 동아일보에서 주최한 연극제에 '동승'으로 참가했다.

194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해연(海燕)'이 당선돼 등단한 이후 '낙화암', '무의도기행(無衣島紀行)' 등을 남겼다.

함세덕은 주로 섬과 바다를 배경으로 어민들의 생(生)과 사(死), 현실과 꿈을 그렸다. 그러나 한때 '흑경정', '추장 이사베라' '에밀레종' 등 친일 성향의 작품을 쓰기도 했다.

8·15광복 후 조선연극동맹에 참여해 '기미년 3월 1일', '고목(古木)', '태백산맥' 등 문제작들을 발표했지만, 광복 직후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그 동안 작가적 역량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1988년 월북 작가들에 대한 해금조치와 함께 그의 작품이 재조명되고 있다. 인천에서도 지역 출신 극작가 함세덕의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들이 진행됐지만, 정작 그의 생가는 보존 계획이 여전히 답보 상태다.

화평동 좁은 골목길에 자리한 그의 생가는 소주방으로 변해 있다.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만든 박두성 선생의 딸 정희씨가 사는 '평안수채화의 집'.
옆에 걸린 그림이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그 골목을 스쳐 지나 화평동 냉면거리로 다시 들어서면 중간쯤에 또 다른 인물과 만나게 된다.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만들어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고 박두성 선생의 딸, 정희(87)씨가 살고 있는 4층짜리 집이다. 의사인 남편을 만나 1949년부터 살고 있는 그곳에서 정희씨는 그림을 가르친다.

'평안수채화의 집'이라 하는 이 건물은 원래 정희씨 남편이 하던 '평안의원'이었다.

예순 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 화가로 정식 데뷔한 그는 직업, 나이, 신분 따지지 않고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수필 '나의 아버지 송암'을 펴내기도 했던 그는 전시회 수익금을 시각장애인들의 복지를 위해서 내놓는다.

초대 인천시립박물관장을 지냈고 국립현대미술관장을 했던 석남 이경성 선생도 1919년 화평동 37번지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참 얘깃거리도 많은 동네인가 보다.


국수가 없는 민들레 국수집. 목요일이라 문을 닫아 아쉬움이 컸다.
바로 옆 건물에 처음 민들레 국수집을 열었던
3평짜리 가게에 걸린 빛바랜 간판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숨어 있다는 표현이 적절치 않게 꽤나 유명한, 국수는 팔지 않는 '국수집'이 화평동 길 건너 화수1동에 있다.

화도안로를 따라 가는 고갯길, 화도교회 교회 인근에 서영남씨가 2003년 4월1일 문을 연 '민들레 국수집'. 가톨릭 수사 출신의 서씨는 배고픈 사람에게 동정을 베푸는 곳이 아닌, 섬기는 곳으로 국수집을 열었다고 한다.

열 사람이 겨우 앉는 작은 식당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150~3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찾는다.

마침 민들레 식당을 찾은 날이 목요일(민들레 국수집은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을 쉰다)이어서 문을 닫은 터라, 인터뷰는 할 수 없었다.

3평짜리 가게에서 국수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18평짜리 가게에서 뷔페식으로 음식을 내놓는다.

기업이나 정부의 후원 없이 평범한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은 노력으로 8년간 국수집을 운영하는 작은 기적은 지금 공부방으로 승화하고 있다.

서씨는 민들레 국수집 홈페이지(mindlele.com)에서 "그냥 꿈일까 했는데도 불구하고 '민들레 책들레'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꿈마저 가난한, 가난한 동네아이들을 위해 꾸던 그의 꿈이 또 다른 이들의 꿈이 돼 현실로 됐다.

누구는 벽지를 새로 바르는 일을 했고, 누구는 책상과 의자를 싸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또 누구는 반찬 만드는 일을 도왔고,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구는 찬거리를 보내주기도 했다.

그래서 국수집은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으로 됐고, 노숙인 공동체 '민들레의 집'과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로 또 됐다.

가난하고 배고픈 이들의 작은 쉼터 '민들레 국수집'이 있어 사람 사는 동네 화평동을 더 향기롭게 하지 않나 싶다.


화도진 도서관 옆 경로당 담벼락에 걸린
'희망과 나눔'이란 글귀가 이 동네와 참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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