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계 미투,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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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 미투,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 박교연
  • 승인 2019.01.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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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2019년 1월 4일,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석희 선수의 전 코치 조재범이 2014년 선수들이 청소년일 때부터 지속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그 후 스포츠계의 선수들이 하나 둘 자신의 피해사실을 용기 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2019년 1월 14일 전직 유도선수 신유용이 한겨레신문을 통해 자신이 겪은 성범죄에 대해 운을 떼었고, 1월 21일 한국일보에서 양궁계 동성 미투에 관해 보도했다. 1월 22일에는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여자 축구단을 이끌던 하금진 감독이 지난 2018년 9월 성추행 사건으로 직위 해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월 23일, 프로 농구 선수 출신 코치가 고교 동성 선수를 성추행한 것을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사실 스포츠계의 만연한 성폭력 문제는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11년 전 KBS 시사 프로그램 <쌈>에서 ‘2008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스포츠계의 만연한 성범죄 문제가 이미 보도된 적이 있다. 여자 중등부 감독은 회식자리에서 “운동만 가르치나. 밤일도 가르쳐야지.”라고 말했고, 박명수 전 우리은행 여자 농구팀 감독은 “전 룸살롱 안 가요.”라며 소속 선수들에게 성폭력을 일삼았다. 한 여학교 운동부에선 합숙훈련을 할 때 밤에 감독에게 끌려 나가지 않으려고 서로 손을 묶고 잤다고 했고, 다른 여학교 운동부에선 3학년 진학시기 합숙 훈련 때 모두를 위해 희생할 ‘감독님을 모실’ 한 명을 정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스포츠계는 여전히 변한 게 없었다. 심지어 어느 체육계 지도자는 “젊은 사람들 모아 놓으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왜 직장 내 성폭력 같은 것도 항상 있는 일 아닙니까….”라고 언론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최근 오스트리아에서도 한국과 유사하게 국가대표 코치들의 성폭력 전력이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 CNN은 지난 1월 23일 뉴스에서 “이미 두 명의 국가대표 스키팀 코치가 미성년 여자 선수들을 운동선수가 아닌 성적인 대상, 그들을 만족시켜주는 존재로 인식했다”고 보도했다. 이달 초 이들 코치 중 한명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는 코치들이 “선수들은 내 여자들이고, 처녀성을 뺏을 수 있는 것도 나 밖에 없다”며 자랑스레 말하고 다녔다는 증인 진술이 나오기도 했다. 이건 국내 코치들의 “우리 애들 있는데 룸살롱을 왜 가느냐.”, “선수는 종이며 성관계는 선수 장악을 위한 주된 방법”이라고 한 발언과 다를 바 없다. 실제로 오스트리아의 많은 스키 선수가 “더 나은 대우를 대가로 성적 접촉을 요구받고, 성관계 강압 등에 시달렸다”고 증언했다. 헬렌 스콧 스미스 선수는 스포츠계에서 젊은 선수들을 ‘신선한 고기’(fresh meat)로 보는 문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나 대한민국이나 스포츠계에서 메달을 위해 폭력과 성폭력을 묵인하는 관행은 너무나 일반적이다. 한동현 경상남도체육지도자연합회 사무국장은 “존중해주는 대신 성적을 못 올려주는 지도자, 성적은 내주는데 폭력을 일삼는 지도자 둘 중에 누구에게 자녀를 맡기실래요?”라고 선수 부모들에게 역으로 당당하게 질문하기도 했다. 유성연 한남대학교 교수는 “선수들에 대한 폭력, 성폭력 문제는 실제로는 엄청나지만, 지도자가 왕인 지금 환경에선 결코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선배가 가해자인 경우에도 지도자 때문에 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스포츠계의 현실을 지적했다.
 
심석희 선수의 폭로 직전, 대한체육회는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선수가 2010년 26.6%에서, 2018년 2.7%로 줄었다며 이제 스포츠계가 자정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건 자정된 게 아니라, 스포츠계가 그동안 문제가 생길 때마다 피해자만을 처벌해온 걸 증명한 거나 다름없다. 실제로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은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전명규 부회장과 심석희 선수를 불러놓고 “조재범 코치 문제는 내가 해결해줄게. 잠잠해지면 돌아오게 해줄게”라고 발언했다. 이처럼 피해자 앞에서 가해자를 옹호하는 게 스포츠계의 일상적인 성범죄 해결방식이었다. 스포츠계 미투 운동이 없었던 것은 외려 문제가 섣불리 손쓸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었다. 2017년 스포츠계 미투 운동의 포문을 열은 이은희 테니스 코치 또한 “이 바닥이 너무 좁다. 시스템적으로 피해자들이 보호를 받고 안심할 수 없는 환경이 아니다. 솜방망이 처벌, 눈감아주기, 은폐, 축소가 너무나 팽배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법원은 이은희 코치를 초등학교 때 성폭행한 가해자에게 징역 10년을 확정했다. 이은희 코치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벌어진 일이라 당시 범죄행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며, 스포츠계가 조속히 양질의 대책을 내놔야한다고 말했다. 지금 대한체육협회가 긴급히 내놓고 있는 “경기장에다가 방범 카메라 설치하겠다. 라커룸에는 비상벨 설치하겠다. 선수촌에는 여성 관리관과 인권 상담사, 지금도 있기는 있지만 늘리겠다. 성폭력 가해자로 인정이 되면 영구 제명하겠다. 그리고 민간 주도의 특별 조사를 실시하겠다.”라는 방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사실 대한체육협회가 내놓는 방법은 2008년 <쌈> 방영직후와 다를 바가 없다. 2008에도 대한체육회는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고, 교육도 하고, 선수 인권회도 만들고, 공정체육센터라는 시스템도 완비한다고 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건 허울뿐인 정책이었다.
 
스포츠계의 만연한 성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정책 몇 개를 시행할 게 아니라, 그간 폭력과 성폭력을 방치하고 키워온 집단을 해체하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여성 지도자를 적어도 30% 이상 임용해야한다. 우리나라엔 이미 세계적인 여성 선수들이 많다. 양궁, 쇼트트랙, 농구, 배구, 핸드볼, 필드하키, 탁구 등 전 분야에 스타플레이어들이 빼곡하다. 올림픽 메달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국가대표팀, 프로팀, 실업팀 모든 팀에서 감독과 코치는 죄다 남자들이다. 2012 퓰리처상 논픽션 후보 마라 비슨달은 『남성 과잉 사회』에서 테스토스테론과 폭력성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가 있다. 남성 중심의 폭력적인 문화개선을 위해서는 여성 지도자의 임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또한, 악법에 가까운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개정해야한다. 폭로 내용이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명예훼손 소송에 걸릴 수 있기에 피해자들은 선뜻 피해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CNN 또한 이런 상황 속에서는 피해 여성들이 “감옥에 가지 않게 된 것에 겨우 안도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심석희 선수의 용기 있는 결단 이후 스포츠계에서 드디어 미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지만, 미온적인 대책 몇 개로 그친다면 2008년 때처럼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4일 스포츠계 성범죄자들을 엄중 처벌하겠다고 입장을 밝혔고, 1월 2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특사단을 조직하여 면밀히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이걸로는 아직 부족하다. 앞서 말했듯이 고인 병폐를 도려내고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작업이 반드시 뒤따라야만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빙상계 성폭력을 지적한 여준형 젊은 빙상인 연대 대표는 “선수든 학부모든 다들 메달에 목을 매고 있다. 신유용 선수 등 최근 미투 운동에 동참한 선수들이 ‘현역’이 아닌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아직 지도자를 고발한 현역, 무명의 선수가 아직 나오지 않을 걸 보면 얼마나 병폐가 더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도록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것이 10년도 넘게 이 문제를 방치한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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