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고전을 읽고 함께 대화하는 형식을 통해 고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그 문턱을 넘습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에는 김경선(한국교육복지문화진흥재단인천지부장), 김일형(번역가),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등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고전읽기 연재는 대화체로 서술하였는데요, ‘이스트체’ 효모의 일종으로 ‘고전을 대중에게 부풀린다’는 의미와 동시에 만나고 싶은 학자들의 이름을 따 왔습니다. 김현은 프로이드의 ‘이’, 최윤지는 마르크스의 ‘스’, 김일형은 칸트의 ‘트’, 김경선은 니체의 ‘체’, 서정혜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베’라는 별칭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시학 17장
“플롯을 구성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함에 있어서 (1) 시인은 될 수 있는 한 그 장면을 눈앞에 현전시켜야 한다. (2) 또 가능한 한 시인은 작중 인물의 거동을 스스로 해 볼 필요가 있다. (3) 그리고 스토리에 관해서 말한다면 이미 있었던 것이든 시인 자신의 창작이든 간에 시인은 그 대체의 윤곽을 소묘한 다음 삽화를 삽입하여 연장시켜야 한다.” 112~113쪽
체: 시인의 탁월한 능력을 요하는 부분인데,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능력은 아무나 할 수 없겠죠.
스: 요즘 고화질 TV는 그 생생함이 상당해서 실물보다 더 진짜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베: TV광고를 보면 화면 속의 상황에 보는 이가 압도되면서 그런 화질을 만날 준비가 되었는지 반문하는 걸 보면 ‘현전’(現前; 바로 눈앞으로 드러냄)이라는 의미가 그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이: 그런데 언어로 표현된 스토리의 한 장면을 현전하게 드러내기란 쉽지 않을 듯 한데요.
체: ‘현전’이라는 말이 주는 어려움이 조금 있는데요. 데리다라는 철학자는 말과 글의 갈등을 플라톤부터 현대 구조주의 소쉬르에 이르기까지, 문자에 대한 말의 우월성을 ‘로고스 중심주의(음성중심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문자 뒤에 남겨진 마음, 의도를 파악해야만 한다는 갈등적 상황을 ’해체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론을 전개하고 있어요.
출처: www.youtube.com/jacques-derrida
스: 철학자 나오니까 더욱 어려운데요. ‘현전’이라는 글과 말의 관계가 역전된 건가요?
체: 우리는 현전된 글의 내용 이면을 다시금 파악해야 하며 결국 글을 말에 기생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기존의 인식론에 저항해야 한다는 거죠.
트: 설명이 더 어려운데요. 그러니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겠지요. 호메로스 정도 되어여 하지 않을까요?
체: 최근에 판문점으로 귀순한 ‘오청성’씨가 어떤 프로에 나와서 하는 얘기를 듣는데 빠져 들었어요.
<span style="font-family:;" -0.3px;"="" sans-serif;="" neo",="" gothic="" sd="" "apple="" gulim,="" 굴림,="" dotum,="" 돋움,="" gothic",="" "nanum="" 나눔고딕,="" "malgun="" 고딕",="" 맑은="">출처: JSA를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 오청성의 귀순 당시 장면이 담긴 CCTV 스틸컷. 매일신문 DB
베: 우리는 영상으로만 봤을 때도 그 긴장감과 긴박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데요.
체: 그런데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니 영상으로 우리가 추측했던 여러 부분이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었어요. 그 분이 얘기 할 때 영상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의 묘사나 그 당시의 심리묘사는 한 편의 첩보영화를 보는 듯 하고 실제 일어난 사건을 더 세밀하게 설명, 묘사함으로써 시나리오 한편을 듣는 것 같았어요.
스: 생생하게 드러내는 언어를 시인이 표현해야 한다고 볼 때 오청성씨는 이미 시인이네요.
체: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기 전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이나 블로그 등을 통해 미리 탐색하잖아요. 유경험자들의 생생한 글과 사진을 보고 가기도 전에 다녀온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이: 그럼에도불구하고 직접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끼는 그 인상들은 사뭇 다른 것 같아요.
체: 저는 얼마 전에 베트남 다낭을 다녀왔는데요. ‘걸어서 세계속으로’나, 홈쇼핑에서 소개하는 다낭과는 많이 달랐어요.
베: 베트남은 국토가 길어서 지역에 따라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이: 베트남 다낭은 볼 것이 정말 많은데 제 인상에 남았던 ‘바나힐’에 대해 얘기해 보면 높은 산 정상에 유럽의 성을 옮겨 놓은 이색적인 모습이에요.
출처: https://banahills.sunworld.
트: 커다란 손모양의 다리가 있던 곳 아닌가요?
스: 인스타에 많은 사진 올라온 그곳이군요.
체: 프랑스 식민지 시절 침략자들의 휴양처를 산꼭대기에 만들기 위해 베트남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아름답지만 슬픔이 어려있는 곳입니다.
베: 베트남 다낭을 실제 갔다 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 해 주세요.
이: 프랑스 식민지의 문화같은 것으로 보이는데 베트남 성인들이 작은 의자에 앉아 먹는 모습이 특이해서 가이드에게 물어 보니 식민지민이 정복자보다 높으면 안된다고 해서 작고 낮은 의자에 앉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스: 그런 문화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니 베트남인들의 심리가 궁금해지네요.
체: 시인은 작중 인물의 거동을 스스로 해봐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스: 작중 인물에게 몰입해서 시인과 작중 인물이 하나가 된 것처럼 표현해야 한다는 뜻 같아요.
베: 그래서 시인은 천재이거나 광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군요.
이: 천재여야 쉽게 그 기분이 될 수 있고 광기가 있어야 쉽게 무아지경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트: 일본 만화 중에는 작가가 등장 인물에 너무 빠져서, 또는 독자들의 열의가 너무 강력해서 스토리의 전개가 누구 한사람에 의해서 결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도 있다고 합니다.
체: ‘김영하’ 작가도 말하기를 플롯 전개를 어느 단계부터는 본인이 결정 할 수 없었던 적도 있다고 하던데 이런 경우는 독자의 힘이 강력해서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베: 우리는 아직 그런 독자수준은 아닌 것 같지만 완전한 작시술을 위한 시인의 능력에 경탄할 뿐입니다.
체: 오늘도 이런 저런 얘기로 나누다 보니 벌써 정리할 시간이네요.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여기서 마칠께요.
참고문헌:
아리스토텔레스, 손명현역(2009). 시학. 고려대학교출판부.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역(2017). 수사학/시학. 도서출판 숲.
Aristoteles, Manfred Fuhrmann(1982). Poetik, Griechisch/Deutsch, Philipp Recl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