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과 달리 뚜렷하지 않은 장마가 지나가자 몸도 마음도 꼼짝하기 싫게 만드는 무더위가 한동안 엄습했다. 한낮 폭염의 열기는 녹지와 습지가 사라진 회색도시에 눌어붙어 그늘에 들어가도 숨이 턱턱 막혔다. 입추가 지났지만 열대야가 아침을 여전히 힘겹게 일으킨다. 이런 날 무얼 먹고 집을 나서야 하나.
지중해 주변 국가들은 대체로 점심시간이 길다고 한다. 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늦게 회사로 돌아오는데, 열기가 심한 여름이면 식후에 낮잠으로 시간을 보내는 ‘시에스타’가 이어진다고 한다. 오랜 습관일 텐데, 여름 열기가 폭염으로 변해가는 우리나라도 삼복더위 기간에 참고하면 어떨까? 복날 점심은 삼계탕? 흔히 이열치열이라 말하지만, 국물 뜨거운 음식으로 더위를 이기는 것은 아니다. 여름에는 그저 몸속 열기를 식히는 음식이 좋다.
복날이면 우리는 으레 삼계탕을 즐긴다. 국물 뜨거운 음식을 먹고 밖에 나서면 복날 무더위도 시시하게 느끼는 걸까? 그냥 습관일 뿐, 몸은 더 데워지니 냉방한 공간으로 피해야 한다. 더위는 고기가 책임지지 않는다. 무엇이 좋을까?
농경사회에서 고된 모내기를 마쳤을 때 더위가 엄습했다. 꽁보리밥에 지친 농군은 고기를 먹고 싶지만 잡아먹을 가축은 많지 않았겠지. 계란이 귀한 시절에 씨암탉도 엄감생심이니 동네의 늙은 개를 희생시켰을지 모르지만, 요즘은 아니다. 회색도시가 농경사회를 압도하는 요즘, 고기가 흔하고 계란도 닭도 널렸다. 그런 상황에서 개까지? 환경이 바뀌면 습관도 바꿔야 옳다.
최근 영국의 한 유명한 대학에서 쇠고기를 메뉴에서 퇴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영국은 여름철에 고기를 더욱 즐기는 국가는 아니다. 축산업이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기 때문이라고 언론은 밝혔다. 전문가들이 강조해왔듯, 식물 기반의 음식과 지속가능한 동물성 식품이 이산화탄소의 발생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한다. 석유를 가공해 만드는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재배하는 농산물을 되도록 회피하고 그런 농작물을 사료로 먹이는 공장식 축산을 외면해야 지구온난화를 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대학은 주목했으리라.
말복과 입추가 지났으니 우리나라의 개와 닭도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으려나. 곧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질 텐데, 우리의 이번 여름은 작년에 비해 참을만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른다. 올해 유럽의 여름은 호되게 더웠다. 인도는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감당해야 했는데, 내년 이후 우리나라는 안전하리라 장담할 수 없다. 푹푹 찌는 더위는 당장 에어컨으로 숨길 수 있지만 이산화탄소 증가로 심화되는 폭염은 미리미리 대비해야만 한다.
아직은 아침부터 덥다. 이럴 때 고기는 피하고 싶다. 아침은 오이지 곁들인 간단한 비빔밥이 좋다. 특이체질이라 그런지 몸을 데우는 고기는 점심으로 어울리지 않기에 콩국수를 찾거나 집이라면 시원한 오이냉채에 소면으로 열기를 피한다. 언뜻 둘러보니 대부분 채식이다. 유기농산물이라면 더욱 좋겠지. 예전 우리 조상이 즐기던 여름식단이다. 한여름에 가장 자연스러운 음식이다. 여름폭염을 이렇게 보내는데, 내년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