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헌책방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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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헌책방거리
  • 김희중
  • 승인 2019.08.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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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배다리 헌책방거리 / 김희중






배다리 헌책방거리
                               
                       김 희 중

 
용돈 몇 푼이 아쉬워
학기가 끝나면 보던 책들을 싸들고
기웃거리던 이 거리
 
프랑스제 향수보다
더 깊은 향기를
물씬 풍기는
 
조그만 다락방
곰팡이 냄새 추억의 향기에 취해
기억들의 무덤 앞에서
 
소주인양
커피 한 잔을 음복한다.
한 보따리 책과 바꾼 지전 몇 장으로
 
독쟁이 고개 대포집에서
한잔 걸치고
그 시절의 싱싱한 시를 흐느적거렸지
 
가난에 찌든 세월이어도
정이 후했던 시절
마음속에 담고 계시는지
 
이 자리를 마련해주시는 분
다정(多情)도 다과(茶菓)도
듬뿍 내어 내신다
 
주인어른께 감사한 마음
치부해 놓는다

 

배다리는 동구 금곡동을 중심으로 창영동과 송현동의 수도국산, 중구 동인천역을 아우르는 장소이다. 6.25 전쟁 때는 피난민들이 이 지역 산비탈로 모여들어 살기 시작했고, 그 전 시기인 일제 강점기에는 500여 명의 직원이 성냥을 만들던 조선인촌 주식회사가 자리잡았던 곳이기도 하다.
 
수문통은 송현파출소와 화평파출소 사이의 수로로 300미터까지 물이 들어오던 곳인데 1970년대 까지도 이 수문통 갯골로 바닷물이 들어와 이 일대에서 갯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배다리가 낙후된 도시라고 해서 인천시는 도시 재생사업을 위해 이 지역을 관통하는 도로공사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 모임’을 만들어 이에 반대하여 왔다.
 
이 지역의 서점, 사진관, 스페이스 빔 같은 공간에서 문화예술 행사를 하거나 작은 전시회를 갖는 등 배다리 책방거리 사람들은 그들의 문화와 역사 유적을 지켜 나가는 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다행히 최근 인천시는 유동 삼거리에서 송림로를 지나는 중·동구 관통도로 3구간을 양방향 4차선 지하차도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화물트럭의 통행을 제한하는 등 8개 항의 합의안을 금창동 쇠뿔마을, 배다리 주민들 앞에서 서명하였다. 이 지역을 문화지구로 가꾸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현재 책방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지는 않다. 그러해도 과거와 근래의 책들이 이 곳의 헌책방에 켜켜이 쌓여있고 오래된 책에서 뿜어 나오는 구수한 냄새가 오롯이 살아 있어, 이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이 시의 화자처럼 '프랑스제 향수'보다 물씬 추억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현란한 전자 미디어에 뒤처져 종이책이 인기없는 시절이 되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사 본다. 인터넷 서점이나 대형 서점에 밀려 동네 작은 서점도 영업이 안되는 마당에 헌 책방은 오죽할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배다리에 존립하는 헌책방들은 이 곳의 환경이나 문화에 맞게 자신의 정체성을 살려가고 있다. 저만의 특색을 갖춘 행사와 전시회를 열어 이 지역이 인천의 고유한 문화지구가 되는데 일조하고 있다.
 
글쓴이는 배다리 헌책방에서 열리는 시 낭송회에 참가하여 다른 기성 시인들을 대면하고 그들의 시를 감상하면서 시심을 교류한다. 차츰 시인 지망생이 된 자신이 쓴 시를 직접 낭독하기도 한다. 직선으로 뻗어가는 시간을 구부려 아름다운 자리를 마련해 준 이 지역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런 시도 쓰게 되었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배다리 오래된 서점가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도심 한가운데를 달려가는 대형 트럭 대신 낭창낭창 시가 흘러나오는 헌책방거리가 어김없이 그들을 부르기 때문이다.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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