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34년 최일화 시선집 『마지막 리허설』중에서
오늘 금요시단은 새로 나온 최일화 시선집에서 몇 편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지난 달 말 저는 시선집 『마지막 리허설』을 상재했습니다. 1985년 첫 시집 『우리 사랑이 成熟하는 날까지』부터 2016년 10번째 시집 『그의 노래』 까지 10권의 시집에서 100편의 시를 골라 선집을 낸 것입니다. 시집을 내고 살펴보니 이번 선집엔 몇 가지 주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첫째, 고향에 대한 시로 시작하여,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시, 여행에 관한 시, 죽은 이들을 생각하며 쓴 시,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깨달은 것을 시로 옮긴 시가 여러 편 실려 있었습니다. 그럼 그 주제별로 시 한 편씩을 골라 함께 읽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겠습니다.
해와 달보다도 먼 곳
천만리 먼 더운 나라의 조그만 창문 옆에 앉아 생일의 아침을 맞고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언어도 풍습도 다른 곳으로 달려 왔는데 해와 달보다도 멀리 계신 어머니가 어떻게 이곳을 아시기나 할까요. 나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오랜 옛날 아주 작은 씨앗으로 맺히었지요. 그 조그만 씨앗의 어린 새싹을 남겨두고 미운 아기 젖 안주고 밀어내듯이 경전 속의 전설보다도 먼 나라로 어머니는 떠나시었습니다. 그 까만 씨앗의 봄의 텃밭에 작은 싹을 처음 틔운 날이 나의 생일입니다. 그 어린 새싹과 그날의 봄볕을 어머니는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어머니의 기쁨인 그날이 오늘인데 어머니는 해와 달보다도 먼 곳에 계십니다. 저녁 무렵 지친 몸으로 돌아와 낯선 나라의 창문 곁으로 다가앉으니 어머니는 저녁 잔광으로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나의 방을 둘러보시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시고는 부엌으로 가 생일상을 들고 오셨지요. 생일상을 물리고 나니 어머니는 떠나시었습니다. 고요한 밤의 이불을 내 곁에 놓아두시고 저녁 잔광과 함께 해와 달보다도 먼 곳으로 어머니는 다시 떠나시었습니다.
*산티니케탄: 인도 동북부 서벵골주의 도시로 ‘평화의 마을’이란 뜻을 가졌다. 동양 최초의 노벨문학 수상자인 R. 타고르가 세운 대학도시로 타고르는 이곳에 머물며 교육 사업을 펼치고 많은 작품을 집필하였다. 필자는 2012년 2월부터 4월까지 70여 일간 이곳에 머물렀었다.
이 시는 제가 인도 여행을 하면서 산티니케탄의 한 숙소에서 제 생일을 맞아하여 쓴 시입니다. R. 타고르는 세계인들로부터 시성(詩聖)으로 추앙받는 시인이지요. 인도인들에게 그분은 각별하여 수많은 인도 국민들이 시인의 삶의 터전이었던 산티니케탄으로 사시사철 성지순례를 다녀가곤 합니다. 그곳 2층 하숙집에 머물며 뉘엿뉘엿 해가 기울 무렵 객창에 비치는 저녁 햇살을 받으며 이 시를 썼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한 시입니다. 어머니는 결혼 초기에 시앗을 보시고 청상과부처럼 사시면서 자식들을 기르셨습니다. 오래 사시면서 호강 한 번 하시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신 것이 제겐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태초의 아버지
세파에 깎여
모서리가 날카로워진 아버지가 아니라
본질로서의
당위로서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연미사를 신청한다
갈기갈기 속이 찢어진 아버지가 아니라
태초의 아버지
사명을 부여받고 지상으로 추방된
아담의 후예로서의 아버지를 위하여 제물을 올린다
세파에 찌들어 굽어지고 뒤틀린
고유명사로서의 아버지가 아니라
온전한 모습을 갖춘
보통명사로서의
온 세상에 편재하는 보편으로서의
원초적 부성으로서의
불변으로서의, 우주생성의 근원으로서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시는 아버지에 대한 풀길 없는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시가 됩니다. 아버지는 무척 선량하신 분이지요. 그러나 아버지의 운명은 아버지를 선량한 분으로 평탄하게 살도록 놓아두질 않았습니다. 해방과 6.25의 한 복판을 뚫고 나오는 과정도 고난의 연속이었고 조강지처를 두고 객지 생활 중에 젊은 여성을 만난 것은 평생 아버지를 따라다니는 족쇄가 되었지요. 그 당시엔 흔한 일이었지만 나중엔 마음을 돌려 조강지처에게 돌아오는 게 보통인데 아버지는 두 번째 부인과 평생을 함께 했습니다. 그쪽에 자식이 여섯이나 있었으니까요. 물론 두 어머니 모두 피해자이지만 아버지도 굴곡진 역사의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위 시는 삶의 질곡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은 온전한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본 시입니다. 찢어지고 상처 난 고유명사로서의 아버지가 아니라 보편으로서의 부성, 태초의 온전한 모습, 보통명사로서의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본 것입니다. 아버지는 나에게 총체적으로 역할에 미흡한 부모로 나는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미 떠나신 분이지만 저는 지금도 화해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고향에 대한 시를 한 편 같이 읽겠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금방이라도 다녀올 수 있지만 칠팔십 년대, 내가 처음 인천에 올라올 때만 해도 고향은 아득히 먼 고장이었습니다. 완행버스를 타고 국도를 따라 구불구불 고향엘 다녀오곤 했습니다. 그때의 고향 풍경은 전형적인 농촌이었고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고향의 모습은 바뀌었지요. 고향마을 앞뒤로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초중고 학교가 새로 지어지고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옛날의 모습이 아니라 고향의 요즘 풍경에 대한 시를 한 편 읽어 봅니다.
낮아지고 있다
높아지는 빌딩 옆에서
기와집들이 낮아지고 있다
종탑도 십자가도
주민센터도 태극기도 낮아지고 있다
고궁도 납짝 엎드려 낮아지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옹기종기 모여서 장기를 두는 사람들 옆에서
다닥다닥 붙은 간판들 옆에서
빌딩들이 높아지는데 혈안이 되고 있다
우뚝 솟은 고층아파트 옆에서
뒷동산도 초등학교도 낮아지고 있다
미루나무도 까치집도 낮아지고 있다
낮아지면서 제 높이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멱을 감던 웅덩이가 아파트 단지 속에서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시냇물과 참깨밭 코스모스와 논두렁이 모두
아파트를 바라보고 있다
고향에 오면 사람들은 제일 먼저 고층 아파트를 올려다본다
제 주변엔 돌아가신 분이 많습니다. 아버지 3남매가 모두 돌아가셨고 어머니 4형제도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일가친척 형제자매도, 함께 뛰놀던 죽마고우도 여러 명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 편의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시중에 한 편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알츠하이머
제일 친한 친구 제대할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악수하고 술을 마셨네
제일 친한 친구 죽으면
제일 친한 친구는 세상에 없네
제일 친한 친구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네
이제 어디 가서 제일 친한 친구와 점심을 먹나
이 늘그막에 어디 가서
제일 친한 친구를 새로 만나나
인천대공원에 가도 제일 친한 친구는 없고
소래포구 어시장엘 가도 제일 친한 친구는 없고
제일 친한 친구 없으니
나는 제일 친한 친구도 없는 사람
제일 친한 친구 없는 무더운 여름
해물 안주 한 접시로 혼자 소주를 먹네
중학교 고등학교 6년을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 이야기입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동창 중에 선두주자로 승승장구하던 친구였습니다. 50을 갓 넘었을 무렵 친구 소식이 뜸했습니다. 모임에도 안 나오고 누구하나 친구의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동창회 회장에게 알아보니 매우 조심스럽게 얘기하더군요. 알츠하이머라고요.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습니다. 한번은 어떤 결혼식에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참석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저를 알아보지 못하더군요. 결국 60을 갓 넘기고 친구는 떠났습니다. 친구의 고향집이 생각납니다. 친구의 책상, 친구 할아버지의 수염도 생각납니다. 친구는 떠나고 소래포구 어시장에서 나는 혼자 소주를 먹곤 했습니다. 친구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다시 시 한편을 읽어봅니다. 이번엔 여행에 관한 시 한 편 골라 봤습니다. 저는 인도 배낭여행을 세 차례 다녀왔습니다. 처음엔 30일(2005년 1월), 두 번째는 72일(2012년 2월~4월), 세 번째는 23일(2019년 1월) 체류했지요. 처음 갔을 때는 여러 도시를 두루 관광을 했지요. 두 번째 세 번째 여행은 주로 콜카타와 산티니케탄에 머물렀습니다. 콜카타는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시인이 태어나 자란 곳입니다. 타고르는 1913년 동양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탄 시인입니다.
또 콜카타는 마더 테레사 수녀가 <사랑의선교수녀회>를 설립하여 빈민 구제 사업을 펼친 곳입니다. 저는 수녀님이 세운 임종의 집에서 닷새 동안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었습니다. 산티니케탄은 타고르 시인이 황무지를 개척하여 학교를 설립하여 자연친화적인 교육활동을 펼치던 곳입니다. 타고르 박물관,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원까지 학교 건물, 그가 가꾸던 장미밭 등등 많은 유적이 있어 수많은 인도인들이 성지 순례를 하는 곳입니다. 그만큼 시인은 인도 국민들로부터 성인으로 추앙 받고 있습니다. 산티니케탄에서 쓴 시 한 편 같이 읽겠습니다.
난디니
난디니가 학교를 다녔는지 물어볼 수가 없다
벵골어가 능숙한 유학생에게 겨우 나이를 물어봤을 뿐이다
브라더와 씨스더, 땡큐를 알아듣는 난디니는 루띠 가게 막내딸
샨티니케탄 우체국 옆 작은 골목엔
과일가게와 자전거포, 그리고 난디니네 루띠 가게가 있다
대나무로 숭숭 엮어 지은 가게 안으로
지나가던 소가 불쑥 머리를 들이밀기도 하는
한 시인은 그 아이를 일곱 살 때 보았다고 했다
열네 살이 된 지금까지 짜이와 루띠를 팔며 잔뼈가 굵은,
이곳에선 염소와 오리, 개와 소까지도 저절로 자란다
코를 뚫거나 고삐를 매어 끌고 다니지 않는다
소를 방해하는 건 나무를 심고 씌워놓은 철망
개의 낮잠을 방해하는 건 무수한 보행과 경적뿐이다
난디니도 그렇게 자랐을 것이다
루띠를 담아 나르며 짜이 잔을 부시며
열아홉 살 언니의 어린 두 남매에게 빽 소리를 지르며
손님들 얘기 어깨 넘어 들으며 세상 물정 익혔을 것이다
몇 살까지 맨발이었을까, 샌들 밖으로 삐져나온 발가락이 나무 등걸 같다
난디니의 미래와 나의 귀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가 건넨 작은 선물에 환하게 웃으며 눈빛 반짝일 뿐
웨스트벵골 산티니케탄엔 열네 살 소녀 하나 살고 있다
언니들과 오빠, 억세고 부지런한 어머니와 함께
스스로 목숨 끊은 아버지의 기억을 세월에 삭히며
오래, 아주 오래 맛 좋은 루띠 가게 막내딸이기를
다우리를 요구하지 않는 남자 만나
언니처럼 예쁜 아이들의 엄마 되기를 바랄 뿐
입을 다물라고 해도 난디니는 웃는다, 내가 치이이즈 하지도 않았는데
카메라 앞에선 웃어야 한다는 걸 언제 배웠을까
타골 시인의 옛집 옆에 들꽃 같은 소녀 하나 짜이를 팔고 있다
내가 자주 가서 밥을 먹던 허름한 식당의 14살 된 막내딸이 난디니입니다. 70여일 머무르며 자주 가서 인도 차 짜이를 먹고 수시로 루띠라는 서민 음식으로 식사를 하던 곳입니다. 언니가 둘, 오빠가 둘, 그리고 난디니는 막내딸입니다.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식당이라고는 하지만 대나무로 대충 엮어 지은 식당으로 지나가던 소가 불쑥 머리를 들이밀기도 하는 허름한 가게이지요. 타고르 시인의 다섯 채 집필실 옆에 있어서 이 식당이 더 의미가 있습니다. 이 14살 난디니도 올 1월 7년 만에 다시 찾았을 땐 딸 둘을 낳아 기르는 아기 엄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들 고향의 가난한 여동생 같은 난디니, 남편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다음은 일상생활 속에서 깨달은 것을 시로 지은 작품이 꽤 여러 편이 됩니다. 두 편만 같이 읽고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설명은 생략합니다.
자전거 도둑
사진 한 장에 제 모습을 남겨 놓고 사라졌다. 내가 자전거를 타는 걸 지켜보다가 침을 꼴깍 삼키며 저 건 꽤 값이 나가겠는 걸 눈독을 들였을 것이다. 복도에 쇠사슬로 묶여 있는 걸 확인하고 식은 죽 먹기로 쇠사슬을 끊었을 것이다. 습관의 힘이 양심을 밀어내고 눈먼 욕심에 인정사정 볼 것 없었을 것이다. 자식 같은 남의 자전거를 유괴해 놓고 눈물 흘리는 자전거 옆에서 짜장면 곱빼기를 시켜 먹었을 것이다. 분통이 터지는 것도 잠시 이제 자전거를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 들 때쯤 차츰 도둑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도둑이 참 불쌍하다고 얘기하니까 옆에 있던 일곱 살 된 막내딸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 날 쳐다본다. 팔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나이를 먹어 그 자전거도 자주 병에 시달릴 것이다. 얼굴엔 여기저기 저승꽃이 피고 건강하던 두 다리는 골다공증으로 자주 주저앉을 것이다. 십여 년 고된 노동에 만신창이가 됐을 몸뚱어리, 지금은 어느 구석진 담 밑에 몸져 누워 있을까. 도둑의 얼굴에도 주름 몇 개 더 늘었을 것이다. 한밤중 별빛 아래 나의 자전거는 이웃 자전거에게 오래 전에 있었던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을 것이다. 묵묵히 듣고 있던 이웃 자전거도 옛 주인을 생각하며 눈물을 펑펑 쏟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아무런 죗값 묻지 않고 같이 점심이나 한 끼 하겠지만, 나는 멀리 이사를 했고 그 동네엔 어쩌다 한 번 들리기나 하는 것이다. 그 동네 옆을 지날 때면 여러 가지 즐거운 추억과 함께 아직도 자전거에 대한 기억이 하나 또 쓸쓸하게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그림자
많은 그림자 어른거려야 어린이는 잘 자란다
엄마 아빠의 그림자가 있어야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림자가 하늘 그림자처럼 드리워야 하고
고모, 이모, 외삼촌의 그림자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그림자가
오곡백과처럼 풍성해야 무럭무럭 자란다
언니, 오빠, 누나 그림자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그 그림자를 밀고 당기고
뒤집어쓰고 밟고 뭉개고 껴안으며 놀아야 한다
그 그림자와 때리고 싸우고 미워했다가 화해하고
다시 악수하고 나란히 앉아 밥을 먹어야 한다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떨어져 나와
혼자 즐겁게 다시 고독을 견디며 자라야 한다
엄마 아빠의 그림자는 있어야 하는데
엄마 아빠 그림자가 없는 아이들이 있다
어떤 아이는 엄마의 그림자가 없고
어떤 아이는 아빠의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가 없으면 아이들은 무서움을 타고
외로움을 타고 밤에 오줌을 싸기도 한다
여러 가지 그림자 속에서 자라 어린이는 또 다른 그림자를 찾아나선다
어떤 아이는 아인슈타인의 그림자를 찾아가고
어떤 아이는 박수근의 그림자와 어울린다
엄마 아빠 그림자 같이 꼭 필요한 그림자가 없을 땐
누가 그 그림자를 대신해야 한다
내게 아버지의 그림자가 없을 때
할아버지 그림자가 대신하여 위기를 모면했다
할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은 선생님이라도
그 그림자를 대신해야 하는데
선생님의 그림자마저 없는 아이들도 있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그림자 구하기가 여의찮을 때도 있다
그럴 땐 책을 이용하면 된다
어떤 책 속엔 사랑의 그림자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그림자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면 된다
두 작품 모두 아무런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쉽게 읽히는 시입니다. 우연히 오늘 골라서 소개한 시가 길이가 좀 긴 시들이 많습니다. 시선집엔 짧은 시부터 다소 긴 시까지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열 권의 시집에서 100편을 뽑아 수록했습니다. 어떤 시를 선별할지 고심이 많았습니다. 두 명의 시인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고 출판사 대표의 의견을 받아들여 몇 작품은 교체하기도 했습니다. 인천문화재단의 문예기금을 지원 받아 경제적 부담 없이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 기관의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모든 인천시민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인천의 문학이 날로 발전하여 대한민국 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찬란한 문화예술의 도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