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편 자장(子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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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편 자장(子張)
  • 이우재
  • 승인 2010.12.2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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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편 자장(子張)
  
  이 편은 모두 제자들의 말을 기록한 것으로, 공자의 말은 한 장도 없다. 자장의 말이 제 1장에서 2장까지, 3장에서 13장까지는 자하의 말, 14장과 15장은 자유의 말, 16장부터 19장까지는 증자의 말, 20장부터 마지막 25장까지는 자공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논어에 대한 후기(後記)의 의미로 제자들의 말을 모아 편찬한 것으로 추측된다.

1, 子張曰 士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
  자장이 말하길 “선비가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보게 될 때 목숨을 내놓고, 이득을 보게 될 때 의(義)를 생각하며, 제사를 지낼 때 공경함을 생각하고, 장례에 슬픔을 생각한다면 괜찮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설> 위(危)는 나라의 위급함이요, 치(致)는 바치는 것이다.
  선비는 나라가 위태로울 때 마땅히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불의의 재물을 바라지 않아야 하고, 제사에는 공경심을, 장례에는 슬픔을 다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족히 선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헌문 13에 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는 표현이 있다.  

2, 子張曰 執德不弘 信道不篤 焉能爲有 焉能爲亡.
  자장이 말하길 “덕을 지니고 있어도 크지 못하고, 도를 믿고 있어도 돈독하지 못하다면, 어찌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어찌 없다고 할 수 있으랴.”

  <해설> 덕을 지니고 있어도 크지 못하며, 도를 믿어도 돈독하지 못한 사람은 그 덕과 도가 있다, 없다고 말할 만한 대상이 되지 못한다.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3, 子夏之門人問交於子張. 子張曰 子夏云何. 對曰 子夏曰 可者與之 其不可者拒之. 子張曰 異乎吾所聞. 君子尊賢而容衆 嘉善而矜不能. 我之大賢與 於人何所不容. 我之不賢與 人將拒我 如之何其拒人也.
  자하의 문인이 벗을 사귀는 것에 대해 자장에게 물었다. 자장이 말하길 “자하는 무어라고 하더냐?”
  대답하여 말하길 “자하께서는 ‘좋은 사람과는 사귀고 좋지 못한 사람은 거절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장이 말하길 “내가 듣던 바와는 다르구나. 군자는 어진 사람을 존경하고 뭇사람을 포용하며, 착한 사람을 칭찬하고 무능한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내가 크게 어질다면 사람들에게서 용납하지 못할 것이 어디 있겠느냐? 내가 어질지 못하다면 사람들이 장차 나를 거절할 것인데, 어찌 남을 거절할 수 있겠느냐?”
 
  <해설> 교(交)는 벗과 사귀는 것(交友)이다. 거(拒)는 거절하는 것이다. 所聞은 공자로부터 들은 것이다. 我之大賢與, 我之不賢與의 여(與)는 가정(假定)형의 어조사이다.
  자하의 말은 소극적으로 자신을 지키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자장이 그런 자하의 소극적인 면을 비판하고 나섰다. 누구와는 사귀고 누구와는 사귀지 못할 것이 어디에 있겠느냐? 문제는 나에게 달린 것이라고. 자장의 말이 자하에 비해 진취적이고 호방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주자는 자장의 말이 너무 지나치게 고원한 폐단이 있다고 지적한다. 현명하던, 그렇지 못하던, 큰 잘못이 있는 자나 손해를 끼치는 자와는 거리를 멀리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주자는 말한다. 선진 15에서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師也過 商也不及)고 말하고 있다. 자장은 지나치게 진취적이고, 자하는 지나치게 소극적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기질 차이가 여기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過猶不及)고, 두 사람의 기질에 따른 차이일 뿐,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차원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4, 子夏曰 雖小道必有可觀者焉. 致遠恐泥. 是以君子不爲也.
  자하가 말하길 “비록 작은 도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볼 만한 것이 있으나, 멀리까지 가는데 발이 묶일 우려가 있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배우지 않는 것이다.”

  <해설> 소도(小道)를 하안(何晏)은 이단(異端)이라고 하고 있으나, 주자는 농사일이나 의술, 점술과 같은 것(農圃醫卜)이라고 한다. 공문(孔門)의 가르침 이외의 여러 잡학(雜學)을 가리키는 말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致遠은 멀리까지 도달하는 것, 즉 도(道)를 이루는 것이다. 니(泥)는 진흙탕에 발이 빠져 꼼짝달싹 못하는 것이다.  

5, 子夏曰 日知其所亡 月無忘其所能. 可謂好學也已矣.
  자하가 말하길 “날마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고, 다달이 그 아는 바를 잊지 않도록 한다면, 가히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설> 망(亡)은 알지 못하는 것이고, 능(能)은 할 수 있는 것이니 아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계속 배우고, 또한 그 아는 것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면 진정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가의 여러 경전(經典)들이 대부분 자하로부터 전수되었다고 전해지는 것도 자하의 이러한 학문 태도와 깊이 관련지을 수 있을 것이다.
  황간(皇侃)은 『논어의소』에서 이 장(章)을 풀이하기를 위정 11의 온고지신(溫故知新)과 같은 뜻이라고 하고 있다. 즉 날마다 모르는 것을 알아 가는 것(日知其所亡)은 새로운 것을 아는 것(知新)이요, 다달이 그 아는 바를 잊지 않는 것(月無忘其所能)은 옛것을 찾아 익히는 것(溫故)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지신온고(知新溫故)로 온고지신(溫故知新)과는 어순(語順)이 반대일 뿐이다. 다산은 새로운 것을 아는 것이 급하기 때문에 지신(知新)을 먼저 쓴 것이라고 한다.
  청(淸)의 고염무(顧炎武)는 여기에서 본 따 자신의 책을 『일지록(日知錄)』이라고 이름지었다.

6, 子夏曰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자하가 말하길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가지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서부터 생각한다면, 인(仁)이 그 가운데 있으리라.”

  <해설> 切問은 절실하게 묻는 것이고, 近思는 가까운 데서부터 생각하는 것이다. 공자는 자기와 가까운 것에서부터 터득하여 멀리 남에게까지 미루어 가는 것(能近取譬)을 인(仁)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보고 있다(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옹야 28). 주자가 쓴 『근사록(近思錄)』은 여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7, 子夏曰 百工居肆以成其事 君子學以致其道.
  자하가 말하길 “모든 장인(匠人)들은 작업장에서 그 일을 하고, 군자는 학문으로써 그 도를 이룬다.”

  <해설> 사(肆)는 점포를 말하며, 여기서는 장인이 일하는 작업장이다. 치(致)는 극(極)으로, 궁극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군자가 학문에만 전념할 것을 가르친 말이다.

8, 子夏曰 小人之過也 必文.
  자하가 말하길 “소인이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꾸며댄다.”

  <해설> 문(文)은 꾸미는 것이다.
  소인은 잘못을 범할 경우 그것을 고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잘못을 은폐하기 위하여 온갖 변명을 꾸며댄다. 그럼으로써 잘못은 더욱 커져 갈 뿐이다.

  <참고> 학이 8에서는 잘못이 있을 경우 고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있으며, 위령공 29에서는 허물이 있는 것을 고치려 하지 않는 것, 이것이 허물이라고 하고 있다.
  또 본편 21에는 군자의 잘못은 일식이나 월식과 같아, 잘못을 저지르면 모두가 보게 되고, 고치면 모두가 우러러본다는 말이 있다.
 
9, 子夏曰 君子有三變. 望之儼然 卽之也溫 聽其言也厲.
  자하가 말하길 “군자는 세 가지 변함이 있다. 멀리서 보면 의젓하며, 가까이 다가가면 온화하고, 그 말을 들으면 엄정하다.”

  <해설> 엄(儼)은 의젓한 모양이다. 온(溫)은 온화한 모양, 려(厲)는 말이 엄정(嚴正)한 것이다.
  황간의 『논어의소』에 인용된 진(晋)의 이충(李充)의 해설에 의하면, 군자는 전혀 변하는 것이 없으나, 남들이 그렇게 일컫는 것이라고 한다. 또 다산은 여기서의 군자란 공자를 일컫는 말이라고 하고 있다.

10, 子夏曰 君子信而後勞其民. 未信 則以爲厲己也. 信而後諫. 未信 則以爲謗己也.
  자하가 말하길 “군자는 믿게 한 연후에 백성을 부린다. 믿게 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자기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한다. 신망을 얻은 뒤에야 임금에게 간하니,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비방한다고 여긴다.”

  <해설> 노(勞)는 백성에게 노역을 시키는 것, 려(厲)는 병(病)으로 백성을 괴롭히는 것, 방(謗)은 비방하는 것이다.
  위로 임금을 섬기고, 아래로 백성을 다스리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그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군대나 식량은 없어도 되지만 신뢰가 없어서는 안 된다(안연 7)고까지 말하고 있다.

11, 子夏曰 大德不踰閑 小德出入可也.
  자하가 말하길 “큰 덕이 법규를 어기지 않는다면, 작은 덕이 조금 어긋나는 것은 상관없다.”

  <해설> 한(閑)은 법(法), 출입(出入)은 조금 어긋나는 것이다. 대덕(大德), 소덕(小德)이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고주와 신주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고주의 공안국, 황간의 『논어의소』는 대덕(大德)을 매우 어진 사람(上賢이상), 소덕을 그보다 못한 사람(中賢이하)으로 보고 있다. 즉 대덕은 공자와 같은 성인, 소덕은 그보다 못한 학자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다산도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주자는 대덕을 큰 규범(大節), 소덕을 작은 규범(小節)으로 풀이한다.
  고주에 의하면, 공자와 같은 성인은 법도를 추호도 어기지 않지만, 그보다 못한 사람들은 조금 어긴다고 해도 다시 법도로 복귀할 수 있다면 무방하다는 뜻이다. 즉 사람들이 비록 작은 잘못을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널리 포용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주자의 해석에 의하면 중요한 윤리 규범만 제대로 지킨다면 사소한 예절 따위는 조금 어겨도 상관없다는 뜻이 된다. 큰 규범(大德)에 어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고주보다는 주자의 신주가 보다 읽는 맛이 깊게 느껴진다. 그러나 주자는 오역(吳棫)의 말을 인용하여 자하의 이 말에 폐단이 있을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자칫하면 소덕(小德)이라고 하여 많은 일상 규범을 무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12, 子游曰 子夏之門人小子 當洒掃應對進退 則可矣. 抑末也. 本之則無 如之何. 子夏聞之曰 噫 言游過矣. 君子之道 孰先傳焉 孰後倦焉. 譬諸草木 區以別矣. 君子之道 焉可誣也. 有始有卒者 其惟聖人乎. 
  자유가 말하길 “자하의 제자들은 물을 뿌려 청소하고, 손님을 접대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나는 일은 잘한다. 그러나 그것은 말단의 일일뿐이다. 근본이 없으니 어찌하겠느냐?”
  자하가 그 말을 듣고 말하길 “아아, 자유의 말은 잘못되었다. 군자의 도를, 어느 것을 먼저라고 하여 전하고, 어느 것을 나중이라고 하여 게을리 하겠는가? 초목에 비유한다면, 종류에 따라 구분하여 따로 심는 것과 같다. 군자의 도를 어찌 속일 수 있겠느냐? 처음과 끝을 겸비한 사람은 오직 성인뿐이다.”

  <해설> 쇄소(洒掃)는 청소할 때 물을 뿌리고 비로 쓰는 것이다. 응대(應對)는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요, 진퇴(進退)는 손님을 모시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다. 모두 일상의 작은 예절이다. 따라서 자유가 말단적인 일이라고 하였다.
  言游過矣의 言游는 자유다. 孰先傳焉 孰後倦焉은 주자에 의하면 그것이 말단이라고 하여 먼저 전하고, 근본이라고 하여 나중으로 미루어 전하는 것을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譬諸草木 區以別矣는 학문의 깊고 얕음에 따라 가르침을 달리하는 것을, 초목을 종류에 따라 각기 따로 심는 것에 비유한 말이다. 즉 군자의 도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초목을 종류에 따라 심는 곳을 달리하듯이, 배우는 자의 성취 여하에 따라 먼저 가르칠 것이 있고, 나중에 가르칠 것이 있다는 뜻이다. 君子之道 焉可誣也의 무(誣)는 속이는 것이다. 군자의 도를 가르치는 것이 위와 같은데, 어찌 함부로 하여 군자의 도를 왜곡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有始有卒者는 처음과 끝(本과 末)을 겸비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이 공자 사후 그 제자들에 의해 각기 분파로 나뉘어져 가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주는 글이다. 이 글로 미루어 본다면 자하는 주변의 작은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가르침을 시작하였고, 자유는 보다 근본적인 학문의 도리에 중점을 두었던 것 같다. 자유가 자하의 제자들을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하의 제자들이 일상 예절에는 밝으나 그것은 말단의 일일 뿐, 학문의 근본 도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자하가 반론을 전개한다. 학문은 사람에 따라 가르치는 순서가 있다. 이제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심오한 도리를 말할 수는 없다. 우선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말단의 일부터 가르치는 것이지, 학문의 근본 도리를 가르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초목을 그 종류에 따라 구분하여 심는 것과 같다. 말단의 일과 근본 도리를 처음부터 꿰고 있는 사람은 성인뿐이라고. 

13, 子夏曰 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
  자하가 말하길 “벼슬을 하면서도 남음이 있으면 학문을 하고, 학문을 하면서도 남음이 있으면 벼슬을 해야 한다.”

  <해설> 사(仕)는 벼슬을 하는 것이고, 우(優)는 남음이 있는 것이다.
  자하는 학문과 벼슬을 함께 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일찍이 공자는 제자인 칠조개로 하여금 벼슬길에 나아가게 하였으나, 칠조개가 아직 자신이 없다고 사양하는 것을 보고 기뻐한 바 있다(공야장 5). 또 자로가 자고를 비(費)땅의 읍재를 시키려고 한데 대해, 남의 자식을 망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선진 24). 공자에게는 벼슬보다 학문을 쌓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정 정도 학문을 쌓은 연후에 벼슬길에 올라야지 그렇지 않다면 자칫 나라와 백성에게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이런 연유로 주자는 『주자어류(朱子語類)』란 책에서 仕而優則學에 대해 당시 세족(世族)의 자식들이 학문에 의하지 않고 세습에 의해 벼슬길에 올랐기 때문에, 이처럼 말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4, 子游曰 喪致乎哀而止.
  자유가 말하길 “장례는 슬픔을 다하는 데서 그칠 것이다.”

  <해설> 치(致)는 극(極)으로 끝까지 다하는 것이다. 지(止)는 그치는 것이다.
  장례를 치를 때, 형식적으로 예를 갖추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하라는 말이 있다(喪與其易也寧戚―팔일 4). 또 장례를 보면 슬퍼할 것을 생각하라는 말도 있다(喪思哀―자장 1). 상(喪)을 당했을 때는 무엇보다 가슴 속 깊이 슬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상은 주자의 신주를 따랐다.
  그러나 고주의 공안국의 해석은 다르다. 공안국은 이 장(章)을 풀이하여 말하기를 몸을 훼손하여 성명(性命)을 상실해서는 안된다(毁不滅性)라고 하고 있다. 즉 슬픔이 지나쳐 몸을 훼손할 정도가 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신주보다는 깊은 맛이 덜 느껴진다.

15, 子游曰 吾友張也爲難能也 然而未仁.
  자유가 말하길 “나는 자장의 벗이 되기에는 재주가 모자라니, 아직 그의 인(仁)에 미치지 못하였다.”

  <해설> 고주의 포함(包咸)에 의하면 난능(難能)은 용모(容貌)가 당당하여 남이 미치기 어려운 것이다. 고주에 의하면 나의 벗인 자장은 용모는 남이 미치기 어려울 정도로 당당하지만, 아직 인(仁)은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다.
  난능(難能)에 대하여 유월(兪樾)의 『군경평의(羣經平議)』, 황식삼(黃式三)의 『논어후안(論語後案)』, 다산(茶山)의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는 남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자장이 능력은 뛰어나 남이 하기 어려운 일은 잘하지만, 그 뜻과 행동이 지나치므로, 아직 인(仁)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상의 해석은 모두 선진 15에 나온 자장은 지나치다(師也過)는 공자의 말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여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다. 동문들끼리 서로 비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스승된 입장에서 제자의 결점을 지적하고 훈계할 수 있다고 하지만, 과연 동문들끼리 그러는 것도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 입각하여 청(淸)의 왕개운(王闓運)은 『논어훈(論語訓)』에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왕개운에 의하면 우(友)는 벗이란 명사가 아니라 벗한다는 뜻의 동사로 읽어야 한다. 吾友張也는 자장과 벗이 되는 것이고, 난능(難能)은 재주가 능히 그에게 미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미인(未仁)은 자장의 인(仁)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왕개운은 이 장(章)을 자장의 어질지 못함을 비판하는 뜻이 아니라, 그의 재능이 고원함을 칭찬한 뜻으로 읽고 있다. 동문(同門)간의 돈독한 정(情)을 생각할 때 왕개운의 해석이 좀더 인정(人情)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16, 曾子曰 堂堂乎張也 難與並爲仁矣.
  증자가 말하길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인(仁)을 행하는 데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가 어렵도다.”

  <해설> 당당(堂堂)은 그 풍채가 당당함을 말하는 것이다.
  앞 장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학자들은 자장이 재주가 고원하고 용모는 당당하나, 더불어 인(仁)을 행하기는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왕개운은 앞 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장의 인(仁)에 어깨를 나란히 하기가 어렵다는 칭찬의 뜻으로 풀이한다.
 
17, 曾子曰 吾聞諸夫子 人未有自致者也 必也親喪乎.
  증자가 말하길 “내가 선생님으로부터 듣기를 ‘사람이 스스로 진심을 다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굳이 있다면 부모의 상을 당했을 경우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해설> 자치(自致)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궁극에까지 다하는 것이다. 필야(必也)는 굳이 한다면의 뜻이다.
  부모의 상만큼 사람의 마음 속에 절절히 와 닿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18, 曾子曰 吾聞諸夫子 孟莊子之孝也 其他可能也. 其不改父之臣與父之政 是難能也.
  증자가 말하길 “내가 선생님으로부터 듣기를 ‘맹장자의 효(孝)는 다른 것은 다 할 수 있지만, 아비의 가신과 정치를 바꾸지 않은 것만은 행하기 어렵다.’라고 하였다.”

  <해설> 맹장자(孟莊子)는 노나라 대부 중손속(仲孫速)이다. 그의 아비 맹헌자(孟獻子)는 어진 사람으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삼 년 동안 그 아비가 하던 바를 바꾸지 말아야 효(孝)라고 할 수 있다(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학이 11)고 하였다. 맹장자가 아비의 좋은 점을 본받아 고치지 않은 것은 가히 효라고 할 만하다.
    
19, 孟氏使陽膚爲士師 問於曾子. 曾子曰 上失其道 民散久矣. 如得其情 則哀矜而勿喜.
  맹씨가 양부를 사사(士師)로 삼았다. 양부가 증자에게 물었다. 증자가 말하길 “위에서 도를 잃어 백성이 흩어진지 오래다. 만일 그 범죄의 실상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슬퍼하고 불쌍히 여길 일이지 기뻐하지 마라.”

  <해설> 맹씨(孟氏)는 노나라의 대부 맹손(孟孫)씨다. 양부(陽膚)는 증자의 제자이다. 사사(士師)는 사법관(司法官)이다. 민산(民散)은 잘못된 정치 때문에 백성이 생업에 전념하지 못하고 흩어진 것이다. 자연히 각지를 떠돌다가 도적이 되기 십상이다. 정(情)은 범죄의 실상이다.
  양부가 사법관이 되어 앞으로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어 왔다. 증자가 대답하였다. 위에서 정치를 잘못하여 백성이 흩어지고 그에 따라 범죄가 만연하게 되었다. 따라서 혹 범죄자를 적발하더라도 기뻐하지 마라. 위에서 정치를 잘못하여 백성을 범죄의 길로 내 몰은 것이다. 그런 백성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라고. 유가(儒家)의 정치 사상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형벌을 높이는 것으로 증가하는 범죄에 대처하려고 하나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나라에 정의가 살아 있다면 범죄는 자연히 줄어든다. 깊이 명심해야 할 일이다.
 
20, 子貢曰 紂之不善 不如是之甚也. 是以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皆歸焉.
  자공이 말하길 “주(紂)임금의 악함이 이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하류(下流)에 처하기를 싫어하는 것이니, 천하의 악이 모두 그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해설> 주(紂)는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 주(紂)왕이다.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桀)왕과 더불어 폭군(暴君)으로 이름이 높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멸망당했다. 하류(下流)는 낮고 비속한 자리로, 도덕적으로 평판이 나쁜 곳을 일컬은 말이다. 낮고 비속한 자리에는 온갖 천하고 악한 것들이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듯 모여들기 마련이다.
  주왕이 악하다고 하나 지금 전해지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번 폭군으로 악명(惡名)이 세상에 퍼지고 나니까 온갖 나쁜 일들이 전부 그의 것으로 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한 번 세상에 오명(汚名)이 나면, 온갖 나쁜 일들이 모두 그의 탓으로 돌려지기 마련이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오명(汚名)이 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황간의 『논어의소』에서 진(晋)의 채모(蔡謨)는 악(惡)을 악인(惡人)으로 풀이한다. 주왕이 악하기 때문에 천하의 악인들이 모두 그의 밑으로 모여들어 악행이 더욱 심해졌다는 뜻이다.
 
21 子貢曰 君子之過也 如日月之食焉. 過也 人皆見之. 更也 人皆仰之.
  자공이 말하길 “군자의 잘못은 일식이나 월식과 같아, 잘못을 저지르면 모두가 보게 되고, 고치면 모두가 우러러본다.”

  <해설> 군자는 만인이 주시하는 대상이다. 따라서 군자의 잘못은 일식이나 월식과 같아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군자는 소인처럼 자신의 잘못을 굳이 변명하려고 하지 않는다(小人之過也 必文―자장 8). 또한 군자는 자신의 잘못을 고치기를 꺼려하지 않는다(過則勿憚改―학이 8).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또한 잘못이기 때문이다(過而不改 是謂過矣―위령공 29). 군자가 잘못을 고칠 경우 사람들은 그를 더욱 우러러본다. 그의 덕행이 나날이 높아져 더욱 빛나기 때문이다.

22, 衛公孫朝問於子貢曰 仲尼焉學. 子貢曰 文武之道 未墜於地 在人. 賢者識其大者 不賢者識其小者. 莫不有文武之道焉. 夫子焉不學 而亦何常師之有.
  위나라 공손조가 자공에게 묻기를 “중니께서는 어디에서 배우셨습니까?”
  자공이 말하길 “문왕과 무왕의 도가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아 사람에게 있습니다. 현명한 자는 그 큰 것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자는 그 작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문왕과 무왕의 도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어디선들 배우지 않은 곳이 있겠으며, 또한 어찌 정해진 스승이 있겠습니까?”

  <해설> 공손조(公孫朝)는 위(衛)나라의 대부다. 문무(文武)는 주(周)나라를 건국한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다. 문왕과 무왕의 도는 주나라의 문물 제도이다. 공자는 자신의 학문의 뿌리를 이 주나라의 문물 제도에서 찾았다(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팔일 14).

23, 叔孫武叔語大夫於朝曰 子貢賢於仲尼. 子服景伯以告子貢. 子貢曰 譬之宮牆 賜之牆也及肩 窺見室家之好. 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 百官之富. 得其門者或寡矣 夫子之云 不亦宜乎.
  숙손무숙이 조정에서 대부들에게 말하기를 “자공이 중니보다 더 현명하다.”
  자복경백이 이 말을 자공에게 알리자, 자공이 말하길 “궁실의 담장에 비유하여 말한다면, 나의 담장은 겨우 어깨에 미치는 것으로 집 안의 좋은 것을 다 엿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담장은 몇 길이나 되어 그 문을 통해 들어가지 않고는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의 화려함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문을 찾아 들어간 사람이 적으니 그 분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해설> 숙손무숙(叔孫武叔)은 노나라의 대부로 이름은 주구(州仇)다. 자복경백(子服景伯)도 노나라의 대부로 헌문 38에 나온 바 있다. 장(牆)은 담장이다. 인(仞)은 한 길로, 고주의 포함에 의하면 7척(尺)이다.
  오직 현자(賢者)만이 현자(賢者)를 알아 볼 수 있다. 숙손무숙이 자공이 공자보다 낫다고 공자를 폄하(貶下)하였다. 자공이 그 말을 전해 듣고 범인(凡人)이 공자를 알기는 쉬운 일이 아니니, 그 분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24, 叔孫武叔毁仲尼. 子貢曰 無以爲也. 仲尼不可毁也. 他人之賢者丘陵也 猶可踰也. 仲尼日月也 無得而踰焉. 人雖欲自絶 其何傷於日月乎 多見其不知量也.
  숙손무숙이 공자를 헐뜯자, 자공이 말하길 “그래도 소용없습니다. 선생님은 감히 헐뜯을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다른 현명한 사람이라면 언덕과 같아 넘어갈 수 있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해와 달과 같아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끊으려고 하나 해와 달에 무슨 손상이 있겠습니까? 바로 자신이 분수를 모른다는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해설> 훼(毁)는 헐뜯는 것이다. 無以爲는 그렇게 해 봐야 소용없다는 말이다. 구릉(丘陵)은 작은 언덕이다. 유(踰)는 넘는 것이다. 自絶은 헐뜯으면서 관계를 끊으려고 하는 것이다. 其何傷於日月乎는 사람들이 해와 달로부터 관계를 끊으려고 아무리 애써 봐야, 해와 달에게는 아무 영¥ 其없다는 뜻이다. 다(多)는 지(祗)로 다름아니라, 바로라는 뜻이다. 량(量)은 분수(分數), 지각(知覺)을 뜻한다. 不知量을 황간은 공자의 도량(度量)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으나, 주자처럼 자신의 분수를 헤아리지 못하는 것으로 읽는 편이 보다 맛이 깊다.
  앞의 23장과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다만 여기서는 앞의 장보다 자공의 어조가 좀 더 강하다. 해와 달과 같은 존재인 우리 스승을 당신이 아무리 헐뜯으려 해 봐야 소용없는 짓이다. 그래봤자 당신이 지각없는 사람임을 나타낼 뿐이지, 우리 스승에게야 무슨 손상이 있겠느냐고. 자공은 공자를 해와 달에 비유하고 있다. 말년의 스승을 봉양하고 임종까지 지켜 본 자공에게 공자는 하늘과 같은 존재였으리라.   
 
25, 陳子禽謂子貢曰 子爲恭也. 仲尼豈賢於子乎. 子貢曰 君子一言以爲知 一言以爲不知. 言不可不愼也. 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 夫子之得邦家者 所謂立之斯立 道之斯行 綏之斯來 動之斯和. 其生也榮 其死也哀. 如之何其可及也.
  진자금이 자공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겸손하십니다. 중니께서 어찌 당신보다 더 현명하겠습니까?”
  자공이 말하길 “군자는 한마디 말로 지혜로운 사람도 되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도 됩니다. 말은 신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선생님께 미치지 못하는 것은 마치 하늘을 계단을 밟고 오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만일 나라를 다스리게 되신다면, 이른바 ‘세우면 서고, 이끌면 따르며, 편안하게 하면 오고, 고무하면 화목해진다. 그 살아 계심은 영광이며, 돌아가심은 슬픔이다.’라는 말 그대로입니다. 어찌 가히 그 분께 미칠 수 있겠습니까?”

  <해설> 진자금(陳子禽)은 학이 10, 계씨 13에 나오는 진항(陳亢)이다. 공자의 제자다. 자공의 제자라는 설도 있다. 階而升은 계단을 밟고 오르는 것이다. 방가(邦家)의 방(邦)은 제후의 나라, 가(家)는 대부의 집안을 뜻하는 말이나, 다산(茶山)은 방가가 국가(國家)라고 한다. 夫子之得邦家者는 만일 공자가 나라를 얻어 다스릴 수 있게 된다면 하는 가정의 말이다. 소위(所謂) 이하의 立之斯立 道之斯行 綏之斯來 動之斯和 其生也榮 其死也哀는 공자가 정치를 한다는 가정 하에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이다. 소위(所謂)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당시 유행하고 있던 관용어(慣用語)였으리라.
  立之斯立의 입(立)은 백성의 삶을 세우는 것이다. 사(斯)는 즉(卽)이다. 백성의 삶을 세우면, 백성의 삶이 세워진다는 뜻이다. 道之斯行의 도(道)는 백성을 가르쳐 인도하는 것이다. 행(行)은 따르는 것이다. 백성을 가르쳐 인도하면 그 인도하는 대로 백성이 따른다는 뜻이다. 綏之斯來의 수(綏)는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백성을 편안하게 하면 먼 백성들이 귀의한다는 뜻이다. 動之斯和의 동(動)은 백성을 고무하는 것이고, 화(和)는 옹(雍)으로 화목한 것이다. 백성을 고무하면 백성이 화목해진다는 뜻이다. 其生也榮 其死也哀는 그 임금이 살아 있는 것은 영광이고, 죽는 것은 슬픔이라는 말이다. 이상은 주자의 신주에 의거했다.

  <보충> 인류가 태어난 이래 그만한 사람이 없다(子貢曰 … 自生民以來 未有夫子也―『맹자』 「공손축상」 2)는 공자가 생전에 벼슬다운 벼슬 한 번 못해 봤다는 사실은 공문(孔門)의 제자들에게 당혹스러운 문제였다. 덕이 있는 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유가(儒家)의 정치 철학은 이 세상 최고의 성인인 공자가 임금은 고사하고 벼슬 한 번 제대로 못했다는 사실과 분명 모순이 될 수밖에 없었다. 농사꾼 출신인 우(禹)도 천하의 임금이 되었는데(禹稷躬稼而有天下―헌문 6), 공자는 어찌하여 임금이 될 수 없었을까?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등장한 것이 소위 소왕론(素王論)이다. 소왕(素王)이란 임금의 지위가 없는 왕이란 뜻으로, 임금이 될 만한 덕이 있는 성인(聖人)이 천명(天命)을 받지 못해 임금이 되지 못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맹자는 공자가 천하를 얻지 못한 것은 천자(天子)의 추천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匹夫而有天下者 德必若舜禹而有天子薦之者 故仲尼不有天下―『맹자』 「만장상」 6). 맹자가 보기에 공자는 천하의 임금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공자가 『춘추(春秋)』를 쓴 것을 천자의 일이라고 하였다(孔子懼作春秋 春秋天子之事也―『맹자』 「등문공하」 9). 맹자는 공자가 비록 현실의 천자는 아니었지만, 그가 고대 성왕(聖王)의 도(道)를 전한 것 자체가 천자로서의 일이었다고 본 것이다. 맹자는 무관(無冠)의 공자에게 소왕(素王)의 지위를 부여하였다. 맹자의 이러한 행위는 조사(祖師)에 대한 존경심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유가의 정치 사상 자체에 내포되어 있던 모순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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