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 홈페이지에서는 단체장의 공약이행 추진사항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취재:이병기 기자
인천시내 10개 기초자치단체 중 절반인 5곳의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주민과의 약속인 공약이행 추진상황을 전혀 공개하지도 않을 뿐더러, 심지어 법률 핑계를 들며 '안 해도 된다'는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한국매니페스토)가 지난 달 13일 발표한 '민선4기 기초자치단체장 공약이행 평가 발표'에 따르면 인천시 중구를 비롯해 동구, 남구, 연수구, 계양구 등 5곳이 매니페스토 웹 소통평가 결과 '불통'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매니페스토는 민선4기 230개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자료를 확보한 160개 지자체의 7701개 선거공약을 대상으로 지자체가 스스로 작성해 공개하는 공약이행 자체평가서와 홈페이지를 통한 웹 소통현황 등을 평가했다.
이 발표에서는 민선4기 매니페스토 활동 우수 지자체 5곳(시·군·구, 총 15곳)과 매니페스토 '불통' 지자체 42개를 선정했다.
한국매니페스토 관계자는 "평가에서 반드시 지적돼야 할 점은 기초자치단체장의 공약이행과 정보공개의 공적 책임성이다"라며 "공약이행 정보는 주민과의 공적 약속인데도 공약이행 의지보다는 차기 선거에 공천을 받는 것에 더욱 관심을 두거나, 정보공개에 인색하면서도 그 결과가 치적처럼 홍보되는 것은 성숙한 지방자치 구현을 위해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런 문제의 출발은 지역주민의 눈높이에 맞춰 주민들과 호흡하며 선거공약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으며, 정보공개의 책임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데 있다"며 "당선 이후 선거공약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뒤 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이행하기보다는 그 실적을 치적처럼 홍보하기 위해 부풀려 제공하는 관행에도 있다"고 덧붙였다.
자치단체, "공약사항 공개는 법적 의무사항 아니야"
뒤늦게 단체장 공약사항을 게재한 중구와 연수구 홈페이지
그러나 자치단체를 책임지는 구청장 이하 담당 공무원들은 시민과의 약속인 공약이행 추진사항 공개에 대해 별로 달갑지 않아 하는 분위기다.
성진모 남구청 기획감사실 기획팀장은 "그 사람들(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이 말하는 것은 (공약이행 추진현황을)공개적으로 해야 한다고 하지만, 법률에서 정해 놓은 것은 아니다"라며 "남구의 경우 1년에 1~2번 정도 공약 이행 현황을 보고하기 때문에 수시로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을 조정할 수 없어 공개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성 팀장은 "누구든지 정보공개를 요청하면 공약이행 추진사항을 제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홈페이지에 공약이행 사항을 공개하는 것은)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구와 연수구는 한국매니페스토 발표 이후 28일과 22일 구청 홈페이지 '열린구청장실' 안에 '구민과의 약속' 명칭으로 그 동안의 공약이행 추진상황을 게재했다.
중구청 기획감사실 기획팀 박력씨는 "내부 게시판에서는 공약이행 추진상황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외부 홈페이지에서는 하지 않고 있었다"며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며칠 전 구청장 지시로 사후약방문이기는 하지만 외부 홈페이지에도 공개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연수구 역시 내부적으로는 분기별로 공약이행 추진상황을 보고하고 있었지만, 시민들이 보는 구청 홈페이지에는 공개하지 않았던 상황이다.
동구청도 두 사례와 비슷하게 취재진이 전화를 건 28일께야 주요정책자료란에 '2009년 4/4분기 구청장 공약 추진상황'을 게재했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구청장 공약사항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사업 추진현황을 정리한 것으로,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서둘러 실은 흔적이 확연히 드러났다.
계양구청의 경우 홈페이지 정책실명제 → 주요사업 진행상황을 따라 들어가면 진행되고 있는 사업 자료들이 올라와 있다. 그러나 각각의 사업에 대해 구청장의 공약 사항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클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시민들이 찾아보기 쉽지 않다.
원희정 계양구청 기획감사실 기획팀 담당은 "공약이행 추진현황의 공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언론에서 매니페스토 결과를 통보해 방침을 받아 준비 중"이라며 "주요사업 진행상황을 보면 공약 사항도 들어 있지만 하나하나 들어가봐야 하기 때문에 공약사항만 묶어서 나타낼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한국매니페스토는 "지역주민과의 약속들을 책임지고 마무리하겠다는 단체장의 의지보다 중앙정당이나 중앙의 유력 정치인들에게 줄을 서서 재선을 보장 받으려는 단체장들이 많다"며 "따라서 소중한 지역주민과의 공적 계약이 파기되거나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도 무책임한 약속남발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행태는 과거를 살펴봐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가공된 정보로 부풀려진 공약성과를 발표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런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사회적 노력도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가다.
한국매니페스토는 "성숙한 민주주의 가치 실현과 참다운 지방자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서부터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아울러 "사회적 신뢰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상시적으로 평가해야 하며, 평가는 단체장의 일방적 활동이 아닌 주민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