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쥐띠 새해가 밝았다. 지난 1년을 돌아보고 한 해를 계획하는, 조금은 어수선하고 설레는 시점이다. 유례없는 겨울 폭우 속에서 이 감정은 더욱 휘감긴다. 이럴 적에 멀리 떠나고 싶기도 하지만 공항 옆에서 서성이며 살피는 곳이 있으니, ‘용유’가 바로 그곳이다. 용유는 섬이었지만 인천국제공항의 건설로 인해 육지화 되었다.
인천국제공항에는 자기부상열차가 오간다. 조용하고 날쌘 열차인데, 용유역↔(T1)을 무료로 운영 중이니 이용해 보면 좋을 것이다. 용유역 앞 잠진도 선착장에서 배 타고 가던 무의도도 이젠 다리가 놓여 좀 더 빠르고 편리하게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간혹 용감한 몇몇 연인은 다리를 직접 건너기도 한다. 용유역까지 오는 것만으로 절반은 온 느낌이니 내리자마자 도로 옆으로 즐비한 식당에 들러 해물칼국수 한 그릇 비우고 걸음을 시작해도 좋다. 푸짐한 양과 깊은 맛에 눌러앉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고 말이다.
섬을 제외하고 보면 용유도에는 인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해수욕장, 백사장이 많다. 육지에서 가깝게 또는 먼 기분으로 접할 수 있으니 많이 찾는 모양인데 공항증설로 유입된 관광객들이 용유도 인근을 일일 코스로 방문하면서 좁은 옛길은 차들로 넘쳐나고 있다. 마시안해변은 명사십리로 알려져 갯벌 체험으로 유명했는데, 언제부턴가 커다란 빵집이 속속 들어서면서 명소로서도 빵빵해졌다. 빵집에 가면 늘 단팥빵과 크림빵을 두고 고민이 되는데 둘 다 사랑스러운 국민 간식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조금씩 위로 가면서 거북사랑바위도 만나고 선녀바위도 만난다. 섬이어서 그런지 바위에 얽힌 설화가 많다. 제2 터미널 옆 오성산은 용유도에서 가장 큰 산이었지만 공항 건설에 내어 준 흙과 바위로 인해 산의 2/3가 깎여 평탄한 정상이 되었다. 뾰족한 정상 봉우리를 기대했다면 재빨리 접어야 할 것이고, 산 아래 맛있는 쌈밥 집에서 그 마음을 달래면 그나마 나아질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은 현재 네 번째 활주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그 옆은 용유도 바닷가였던 것인데 그곳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서 있다. ‘비포 장군바위’라 하는 커다란 바위는 임진왜란 때 바위에 앉아 있던 갈매기를 병사로 착각해 왜적이 놀라 후퇴했다는 이야기로 전해져 내려온다. 믿거나 말거나 그럴 법도 한 재미난 이야기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바위이건만, 이젠 도로 사이에 끼어 습지형의 저지대 속에서 비행기 소음 진동을 견디고 있으니 장군님이 어찌 될까 사뭇 걱정이다.
이 시대로 보자면 서툰 관광유원지의 흔적을 바닷가 따라 찾아볼 수 있다. 한 예로 선녀바위 옆 솔밭 나무 사이사이에는 검은 차양 아래 너른 평상이 줄지어 있다. 지금이야 방부목이 해결해 주지만 예전에는 모노륨 장판을 깔아 방 분위기를 자아냈다. ‘편히 쉬어 가시라~!’는 아날로그 시설인 셈이다. 식사하고 춤도 추면서 시름을 잠시나마 날려 보냈던 시대를 생각하게 된다. 평상은 판자로 덮여 있는데 친절(?)하게도 핸드폰 연락처가 정자로 쓰여 있다. 아무나 앉지 못한다는 것과 파라솔 꽂이가 있어 옵션도 가능하다는 정보를 주고 있다. 서해 풍경과 함께 파도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었을 터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을왕리와 왕산해수욕장에 대한 추억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좁은 길목이 걱정이지,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찾아 드는 사람들은 각자의 특별한 낭만을 낚으러 온 것이 틀림없다. 서울에서도 여차하면 갈까 하는 곳이 을왕리해수욕장인 만큼 로맨스 못지않게 시린 기억도 많았을 것을 안다. 한때의 걸음과 기억이 나중에 큰 양분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개인적으로는 을왕리해수욕장 옆 갯바위 산책로를 좋아한다. 바위가 많고 구불구불한 탓에 험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탁 트인 풍경과 바위, 언덕 등에서 맛보는 바다의 맛이 일품이다. 시작하는 연인이라면 길이 좀 더 길게 나 있지 않음을 원망할지도 모른다.
왕산해수욕장은 을왕리보다 좀 더 운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서해 낙조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기에 딱 좋다. 캠핑 가족이 늘어나서 그런지 차량을 이용한 아지트 조성과 부엌을 통째로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캠핑 조리대의 모습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좋은 곳에서 싸우게 된다면 해파리 못지않게 조심할 일이다. 실제 한 프렌차이즈 커피숍 주차장에서 오래도록 대치하던 연인 한 쌍을 우연히 바라보게 된 적이 있다. 결국 홀로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여성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의 파고가 높게 일었다. 두 남녀의 심정이 오죽했겠느냐 만은, 두 사람의 마음에는 왕산에서의 상처가 깊이 남아돌 것이 뻔하다. 마음이 그러하면 속이라도 채우고 가면 어떨까. 인자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인인 이 근처 막국숫집의 명태 식해는 시린 마음을 뻥 뚫어줄 것이다. 그리고 지나서 온 길을 되돌아 다시금 자신의 일상으로 복귀하면 될 일이다.
요렇게 써진 사진 설명 글이 두 번 반복되니 살펴 보시구랴
1월1일 아무 생각없이 가서 그림 하나 그렸는데 ... 이렇게 보니 또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