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마노 영감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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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마노 영감과 개
  • 김선
  • 승인 2020.01.21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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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방인 - ⑧애증의 관계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명상활동가)’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J’ai été heureux de revenir en marchant lentement le long des quais.”

저녁에 퇴근해 부둣가를 천천히 걸으며 돌아오는 것이 즐거웠다.

 

  회사에 출근 한 뫼르소에게 사장은 친절하게 대한다. 피곤하지 않은지, 엄마의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를 묻는다. 뫼르소는 대략적으로 한 예순 살이라고 엄마 나이를 말하고 나서 안심해 하는 듯한 사장의 시선을 느낀다. 뫼르소의 책상에는 검토해야 할 선하증권이 수북히 쌓여 있다. 선하증권에 관한 국제 규칙인 헤이그 비스비 규칙과 로테르담 규칙 중에 무엇을 보던지 선적에 관한 꼼꼼한 일을 뫼르소가 하고 있다고 하니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자신만의 느낌이 있는 뫼르소는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 전에 손을 씻는다. 이 시간을 좋아한다. 저녁때에는 회전식 수건이 완전히 젖어서 좋아 하지 않는다. 뫼르소 성격 상 이 점을 사장에게 지적하였지만 사장 본인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지엽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발송과에 근무하는 에마뉘엘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이글거리는 항구의 화물선들을 보느라 정신 이 없었다.

 

율목도서관에서 바로 본 인천 내항
율목도서관에서 바로 본 인천 내항

 

학창시절에 도서관 벤치에 앉으면 가까운 거리에 정박해 있는 화물선, 여객선들이 보여 저녁 석양의 풍경과 배들이 잠시나마 마음의 평온을 주던 시절이 생각난다. 뫼르소에게도 회사 앞 풍경이 그를 붙잡는 그 무엇일 것이다. 그러다 요란하게 지나가는 화물 자동차 한 대를 보고는 뫼르소는 집어타자고 말하고는 달음박질치기 시작한다. 뫼르소는 화물차 뒤를 쫓아 몸을 날린다. 소음과 먼지 속에 빠져든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다만 수평선 위로 춤추는 돛대, 옆을 지나치는 선체들 한가운데로 달리는 육체의 약동을 느낄 뿐이다. 잠시 멈춰선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지는 배경과 움직임처럼 말이다. 뫼르소가 먼저 차에 매달려 가면서 뛰어 오르고 에마뉘엘이 기어오르도록 거든다. 천진난만한 아이들 같다. 재미난 일에 신난 아이들처럼 힘들어도 즐거움이 가득하다. 나이는 어쩔 수 없나보다. 둘의 숨은 턱 끝에 닿을 정도다. 화물차는 부두의 고르지 못한 보도 위로 먼지 자욱한 햇빛 속을 덜컥거리며 달린다. 에마뉘엘은 숨이 넘어갈 듯 웃는다. 보는 우리도 웃음이 난다.

  두 사람은 땀에 젖은 채 셀레스트네 식당에 이른다. 셀레스트는 뫼르소에게 잘 지내냐고 묻고 뫼르소도 그렇다고 대답한다. 관례화된 인사가 심플하다. 뫼르소는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포도주를 많이 마셔 잠을 좀 자게 된다. 근무 중인데 이럴 수 있다니 놀랍다. 잠에서 깨고나서 담배를 피운다. 버릇이군. 늦어서 전차를 타러 뛰어간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술 마시고 잤으니 당연한 결말이다. 줄곧 일을 한다. 일은 하긴 하나보다. 사무실 안이 덥다. 일이 많아 심리적으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퇴근해서 초록빛 하늘을 보며 부둣가를 천천히 걸으며 돌아오는 것이 뫼르소에게는 큰 즐거움일 것이다.

  뫼르소는 컴컴한 층계를 올라가다 같은 층 이웃인 살라마노 영감과 부딪친다. 영감은 개를 데리고 있다. 팔년 전부터 개와 함께 한 영감은 개와 닮았다고 뫼르소는 생각한다. 지금은 이런 경우에 개닮았다고 말한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스패니얼 개는 피부병 때문에 털이 다 빠지고 온 몸이 반점과 갈색의 딱지투성이다. 영감도 불그스름한 딱지가 있고 털도 누렇고 드문드문하다. 개와 영감은 동일한 족속 같은데 서로를 미워한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것이다. 원래 비극은 가까운 관계일 때 더 비극적인 법이다. 그래도 하루에 두 번씩, 11시와 오후 6시 영감은 개를 데리고 산책한다. 산책 코스는 항상 같은 곳이다. 개가 영감을 끌고 가다가 영감의 발부리가 무엇에 걸리면 영감은 개를 때리고 욕지거리를 한다.

 

개와 인간의 재난소설
개와 인간의 재난소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존재의 타당성을 지닌다고 정유정은 자신의 책 28에서 말하는데 인수공통전염병으로 복수를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영감은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23.7%, 4가구 중 1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 시대에는 처벌감이다. 이번에는 영감이 개를 끌고 갈 차례다. 그런데 개는 금방 그것을 잊고 또 영감을 끌고 가다 매를 맞고 욕을 먹는다. 개는 개인 것인가? 영감이 개같은 것인가? 분간이 안된다. 그때 둘은 다 멈춰 서서 개는 공포에 떨며 주인은 미움에 떨며 서로 노려본다. 매일처럼 그 모양이다. 서로에게 길들여 진 상태인 것 같다. 셀레스트는 늘 가엽다고 말하지만 사실을 알 수는 없다.

  뫼르소가 층계에서 그를 만났을 때 살라마노는 개에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중이다. 개는 끙끙거리고 있다. 뫼르소가 인사를 해도 영감은 그냥 욕지거리를 계속하고 있다. 영감은 자신의 감정에 몰입된 무아지경의 상태인 것이다. 뫼르소는 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물었지만 영감은 대답이 없다. 다만 빌어먹을 놈이라고 말할 뿐이다. 자신에게 하는 말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영감은 개 위로 몸을 굽히고는 목걸이 속의 무엇인가를 고쳐 주고 있었던 것이다. 뫼르소는 소리를 높여 말을 해 본다. 그제서야 영감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북받치는 역정을 억지로 삼켜 버리듯 개가 늘 버티고 있다고 대꾸한다. 버티는 자와 꺽으려는 자 사이에는 늘 긴장이 흐르기 마련이다. 그것도 잠깐이다. 영감은 개를 잡아끌고 가버린다. 개는 네 발로 버틴 채 끌려가면서 끙끙거린다. 그것을 바라보는 뫼르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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