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신촌’은 부평역 서쪽의 2001아울렛 부평점과 백운역 북쪽 산곡동 현대아파트 주변을 일컫는 지명이다. 쉽게 말하자면 부평역과 백운역 사이다. 일제강점기 부평 지역에 공업, 군사 시설이 들어서면서 새롭게 정착한 주민들이 많았다. 그렇게 한 백 년 부평의 역사를 고스란히 적신 공간으로, 길 건너 현대가(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자부심은 여기서 연유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캠프마켓 부지 반환에 따라 신촌공원 조성이 준비 중이다. 다만 환경오염에 따른 토양정화작업이 관건이다.
대학 시절, 서울 신촌은 좀 낯선 공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중간지대 경험 없이 맞닥뜨려야 했던 차가움이 크게 작용했을 터이다. 강렬한 빨강과 파랑의 격랑 속에서 호주머니 사정이 빈약했던 나로서는 대체로 좋은 인상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촌은 그렇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특별한 공간으로 구석에 자리 잡게 되었지만, 당대의 키워드가 적잖이 녹아 있어 가끔은 끄집어내어 회상하곤 한다. 전국적으로 신촌이라는 지명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니, 본의 아니게 기존의 신촌 분위기에 젖어 들게 된다. 서울의 신촌뿐만 아니라 인천 신촌, 전주에도 신촌이 있다. 한자 풀이로 보자면 곧이곧대로 ‘새마을’이다.
주변의 허름함에는 아랑곳하지 않을 교회의 높은 첨탑은 무엇을 몰래 수신하고 있었던 것일까? 미군 기지의 오랜 동거가 만들어낸 풍경일 탓으로 마을 기름집의 석유는 미제일 것만도 같고, 슈퍼에는 초콜릿과 통조림이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을 것도 같다. 모텔의 붉은 네온사인(영문)은 그냥 지나치려 해도 수상한 기분이고 어느 세탁소의 이름은 ‘현대사’이다. 순간 역사를 잘 정리해 다려 놓은 곳은 아닐까 엉뚱하게 주목한다. 가만히 지켜 서서 투시하니 집들은 각종 사연을 포용했을 부피감으로 작용해서인지 겉은 초라해도 속은 참 넓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이곳에는 숨바꼭질하듯 여기가 맞나 싶은 두 군데 국숫집이 있는데 수제비와 칼국수를 파는 가게로 5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옛날’을 전한다. 같은 집으로 맛이 일품이며 값도 싸다. 대신 영업시간이 5시, 8시로 짧아 미리 숙지하고 살펴야 한다. 빵집 위 인천문고도 오랜 시간 신촌을 증언해 주고 있으며, 동네 자랑의 기준에 빠지지 않는 ‘L’ 패스트푸드점은 학생들의 단골집이다. 근래 들어 부평공원 가장자리를 따라 1층에 카페가 많이 생겼다. 그 끄트머리에는 강화의 맛을 맛볼 수 있는 주점이 즐비한 쌍굴 입구가 있다. 또한 ‘백운’의 탓은 분명 아니겠지만 부평3동 행정복지센터는 1층이 아닌 빌딩 2층에 자리한다. 군데군데 공방과 음악 연습실도 눈에 띄어 감성에 점수를 더한다.
깜짝깜짝 놀라는 것은 어제 봤던 부피가 오늘은 사라진 상황과 대면하는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났다 싶으면 어김없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고, 지난한 시간을 보내다 철거되고 새 건물이 올라오곤 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인상은 다소 사악해져 간다. 알다시피 주택 앞 화분은 더 이상의 미적 감동이 아닌 경비용이 된 지 오래다. 의자, 물통 하나조차 건드리면 안 된다. 곳곳에 설치된 CCTV는 전 국민을 배우로 등극시키고 있으며, 담벼락 낙서는 사랑의 테마보다는 투쟁 격으로 쓰레기 투기범에게 건네는 손편지인 경우가 다반사다. 부평공원에는 낮에도 많은 사람이 산책과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갈수록 높아지는 주변의 건물에 묻히고 낯선 관계의 유입과 경계, 개발계획에 따른 혼선에 따라 굳어지는 공기로 이곳에서 정녕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지 염려가 없지 않다.
신촌에는 재개발 단계별 과정을 알리는 현수막이 동네의 현재 시계를 대변하고 있다. 한편 미군이 떠난 부평공원에는 인천 평화의 소녀상과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과거의 시계를 말해 준다. 길 가는 시민들의 보살핌으로 여름이나 겨울이나 동상에서 평화를 되새겨 보게 된다. 건너 캠프마켓이 신촌공원으로 완전히 탈바꿈하면 평화의 기지로 미래의 시계가 될 것이다. 부평공원 옆 신촌공원. 캠프마켓의 새로운 이름이 될 신촌공원에 구는 대중음악자료원과 평화박물관, 예술촌 등을 조성하여 다각도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나도 덩달아 신촌의 이미지를 들춰 봐야 하나 싶다. 오늘 하늘에서 눈이 펑펑 쏟아지니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