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 꽃자리가 불편해지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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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초 꽃자리가 불편해지는 계절
  • 정민나
  • 승인 2020.03.12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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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나의 시마을]
섬 여자 - 김 금 희

 

섬 여자

                                     - 김 금 희

 

섬에 살아 좋겠다고 말했더니

깽깽이풀꽃 뜯다가

축축이 젖어가는 그녀의 말

겹겹이 물인데요 뭘

하긴, 사방을 둘러봐도 바다밖에 없으니

소금에 절은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일까

 

마흔 중반의 진달래 빛 눈망울을 가진 여자

깽깽이처럼 몸이 유독 가냘픈 여자

출렁이는 자궁을 바다에 비웠는지

발끝이 축축해지며 연신 뒤돌아보는 여자

 

산수유 꽃그늘이 수척해지는 봄,

바람꽃 한 줄기 아찔하게 휘청이는데

발밑 복수초 꽃자리 불편해지는데

아름다운 섬을 노래 부르다 온 상춘객인 내가

섬 하나를 함부로 흐리게 한다

 

저 돌아보는 눈빛이 울음인 것을

 

*

은 사방이 수역으로 둘러싸여 고립된 곳을 말한다. ‘이라는 말에서는 주위와 단절되어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나 무인도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교통편도 발달하고 인터넷이나 SNS 같은 통신기기가 발달한 현재는 이 더 이상 고립된 장소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섬을 클릭하면 조개구이로 유명한 섬들이 곧장 떠오르거나 옛날엔 섬이었지만 길이 생겨 이제는 섬 이름만 가진 섬도 드러난다. 해물 칼국수가 맛있고 드라이브 코스가 좋은 섬들이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도시인들을 활달하게 부르고 있다. 한 마디로 섬은 더 이상 바다 한가운데 떠있어 외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시를 쓴 시인은 섬에 사는 어떤 여성을 묘사하면서 그 예전의 섬 이미지를 물씬 가져왔다. “섬에 살아 좋겠다고 말했더니” “겹겹이 물인데요라고 대답하는 섬여인은 사실 겹겹이 물인섬이라서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없고,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 슬픈 것은 아니리라. 그런데도 시인은 아주 고전적인 이미지를 묘사한다.

 

정부는 지난 2019섬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였다. 매년 88일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섬의 중요성을 부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섬 발전 종합 청사진 역시 이제 섬은 어디에 있든 더 이상 외로운 섬의 이미지를 갖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풀꽃처럼 가냘픈 여자가 외롭게 서 있는 것이 겹겹이 물로 둘러싸인 섬에 살아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사방이 물이라는, 물리적인 환경으로서의 섬은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그녀의 외로움은 아무래도 심정적인 이유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시인은 바람이 센 섬에 와서 이토록 풀꽃 같은 여자를 그리고 있을까. 그녀가 왜 출렁이는 자궁을 바다에 비웠다고 생각할까? “섬 하나를 흐리게한다고 스스로 실토하는 시인에게 혹시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시를 읽는 독자는 대개 시인보다 시 안에 나오는 시적 화자를 염두에 두고 읽는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 시를 쓴 시인이 가까운 사람을 사고로 잃었거나 혹은 본인이 수시로 병원에 입원하며 생사를 오고갈 때, 그런 틈새에서 시를 뽑아낸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 독자는 작품과 작가를 떼어놓는 평소의 독서법을 내려놓는다. 시 속의 화자나 시적 대상을 그 시를 쓴 시인에 투사를 하게 된다.

 

진달래 빛 눈망울을 가진 여자”, “깽깽이처럼 몸이 가냘픈 여자” “발끝이 축축해지며 자신이 그리는 곳을 연신 뒤돌아보는여자…… 섬에 사는 한 여인과 시를 쓰는 시인이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시인은 그녀라는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다.

 

어쩌면 시적 대상인 그녀는 시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온통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섬 여인의 삶이 어째서 불행한지 시에서 그 이유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순간 시인은 발밑 복수초 꽃자리가 불편해지는것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의적으로 섬 하나를 흐리게 했다는 그녀의 자각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내가 알기로 시인은 투병 중에 있다. 병이 위중하여 입·퇴원을 거듭하는 병실에서 창밖을 내다볼 때 그녀는 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출렁이는 자궁을 바다에 비운 여자는 더 이상 생명을 낳지 못한다.’ 그녀는 새로운 섬 재생 프로세스로 개발을 실현하는 이 세상에서 현재 함께 할 수 없다. 그런 자각에 이르러 홀로 고립감을 갖은 것은 아닐까. 사방을 둘러봐도 막막한 물결, 검은 바다밖에 없으니그녀는 축축이 젖어가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 생이 겹겹이 물이라고…… 고독한 섬이라고.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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