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의미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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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의미 없는 것들
  • 김선
  • 승인 2020.03.31 0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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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⑬파리, 사랑 그리고 결혼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칼럼리스트)’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que cela ne signifiait rien mais que sans doute je ne l’aimais pas.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레몽이 회사로 뫼르소에게 전화를 한다. 그의 친구가 뫼르소를 일요일에 자신의 별장으로 초대한다는 것이었다. 레몽의 친구가 왜 초대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 법이다. 뫼르소는 애인과 약속이 있다며 거절한다. 그러자 레몽은 친구의 부인이 혼자 온다며 뫼르소와 애인이 함께 가 오면 부인이 좋아할 것이라고 말한다. 역시 레몽은 끈질긴 데가 있다. 벗어나려는 뫼르소는 사장이 오래 전화하는 걸 싫어한다며 수화기를 내려 놓으려고 한다. 핑계일 것이다. 레몽은 조금 기다리라고 하더니 다른 것 한 가지를 알려 두고 싶다고 한다. 역시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는 기술이 있다. 자신이 하루 종일 먼저 정부의 오라비가 낀 아랍인 패거리에게 미행당했다는 것이다. 기분 나쁘고 뭔가 두렵기까지 한다. 레몽은 저녁에 퇴근할 때 집 근처에서 그놈들을 보거든 자신에게 알려 달라고 말한다.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담담하게 뫼르소는 알았다고 답한다.

  조금 뒤 사장이 뫼르소를 부른다. 사장의 핀잔을 예상했던 뫼르소는 파리 출장소에 갈 의향이 있는지를 듣게 된다. 파리 출장은 모든 이들의 로망인데 뫼르소는 아닌가 보다. 사장은 파리에서 생활하며 일 년에 얼마 동안은 여행할 수도 있을 거라며 뫼르소가 갔으면 한다. 역시나 큰 변화를 싫어하는 뫼르소는 이러나 저러나 자신에게는 마찬가지라며 거절한다. 그러자 사장은 생활의 변화에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생활의 변화를 갈구하고 있는가? 늘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렇게 여행을 꿈꾸고 있지 않는가? 뫼르소의 일상은 누구보다도 변화가 필요한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변화를 거부한다. 사람이란 결코 생활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어떤 생활이든지 다 그게 그거고 또 이곳에서의 자신의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뫼르소다운 말로 답한다. 사장의 제안은 실패다 사장은 불만스러운 눈치를 내보이며 하는 말이 뫼르소는 언제나 자신의 말에 딴전이고 야심도 없는데 그것은 사업하는데 좋지 못한 점이라고 말한다. 사장의 말은 뫼르소의 귀 언저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무 느낌도 없이 뫼르소는 일을 하려고 자리로 돌아온다. 사장의 비위를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생활을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이유는 만들면 있는데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도 자신은 불행하진 않았다.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이 뫼르소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뫼르소도 학생 때에는 야심이 있었지만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너무 일찍 모든 것을 알아 버린 것이 그에게 불행은 아니었을까?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는지 묻는다. 마리는 뫼르소를 정말 좋아하나 보다. 전에 한번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는데도 또 묻는다. 뫼르소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그래도 좋다고 말한다. 애매모호하고 답답한 말이다. 마리는 자신을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고 다시 뫼르소에게 묻는다. 뫼르소는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한다. 우리도 그렇듯이 뫼르소는 어쩌면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Erich Fromm, The Art of Loving
Erich Fromm, The Art of Loving

  흔히들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으로 알고 있는 사랑에 대해 기술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말한 분석처럼 뫼르소의 사랑은 다른 차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고 솔직히 말한 그의 대답은 마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럼 왜 자신과 결혼을 하는지 마리는 묻는다. 뫼르소는 그런 건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정 원한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결혼을 요구한 것은 그녀 쪽이고 자신은 그저 승낙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자 마리는 결혼은 중대한 일이라고 나무라는 투로 말한다. 뫼르소는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마리를 배려하지 않는, 그러나 자신에게 충실한 답변이다.

  마리는 말없이 뫼르소를 쳐다보다가 자신과 같은 관계로 맺어진 다른 여자로부터 청혼이 있어도 승낙했을지 묻는다. 뫼르소는 물론이라고 대답한다. 뫼르소에게 결혼은 중요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녀는 잠시 묵묵히 있다가 뫼르소는 이상스러운 사람이고 아마도 그러한 이유로 뫼르소를 사랑하고 있지만 그 점 때문에 싫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뫼르소는 할 말이 없어 잠자코 있노라니까 마리는 웃으며 뫼르소의 팔을 붙들고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마리도 참으로 이상하다. 사랑은 어쩌면 이상한 것 그 자체이리라. 뫼르소는 그녀가 원한다면 곧 결혼을 하자고 대답한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지 본인은 원하지 않는 것이기에 바로 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사장의 파리 출장에 관한 제안을 마리에게 얘기하니 그녀는 파리를 알고 싶다고 말한다. 여자들은 파리를 동경하고 사랑한다. 뫼르소는 결혼해서 함께 가자는 뜻은 아닌데 마리에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는 파리에서 잠시 살았다고까지 말한다. 그의 의중도 모르고 마리는 어떠냐고 물어본다.

Mary Mcauliffe, 파리는 언제나 축제
Mary Mcauliffe, 파리는 언제나 축제

 

  파리는 언제나 축제라는 책 제목처럼 일 우리에게 파리는 '파리스러움'이 있다. 그러나 '더럽고 비둘기와 컴컴한 안뜰이 있고 사람들은 모두 피부가 하얗다'라고 대답한 뫼르소의 파리에 대한 상이한 기억이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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