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boomer remover, 미국 SNS에서 발원한 젊은이들의 극단적 증오
코로나19로 인해 전에 볼 수 없었던 여러 새로운 현상을 보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세대 갈등이다. 청년층과 베이비붐 세대 간 갈등은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쟁 직후 태어난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그 숫자가 월등히 많은 것이 특징이다. 미국에서 흔히 부머(boomer)라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에서 1964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지칭한다. 이들은 미국 전체 인구의 23%를 차지하고 있고 많은 숫자만큼이나 미국 내에서 영향력을 크게 발휘한 세대이다. 종전 이후 미국이 가장 풍요롭던 시기에 성장하고 온갖 혜택을 누린 세대이기도 하다.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부머 리무버(boomer remover)라고 부른다는 언론 기사를 보니, 섬뜩하기까지 하다. 베이비붐 세대를 선별해서 죽이는 바이러스라는 의미인데, 젊은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에게 느끼는 거의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증오심의 밑바탕에는 이들 부머들이 사회가 제공하는 혜택을 모두 누렸으면서 기여는 하지 않고, 젊은 세대의 희망조차 앗아갔다는 기본 인식이 깔려있다. 이들이 누린 풍요는 그 이전 세대가 고생하고 힘들게 쌓아 올린 결실이었고, 부머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 풍요의 과실을 따먹고는, 그 뒤치다꺼리는 무책임하게 다음 세대로 떠 넘겨서 현재 젊은 세대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는 인식이다. 얌체 같은 세대라고 느끼고 있었는데, 마침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제 나이 들어 건강이 취약한 부머들의 사망률을 높이고 있으니, 고소하다는 의미로 부머 리무버라는 조롱 섞인 명칭을 붙인 것이다.
이웃 일본에서도 코로나19로 노인 사망률이 높아지면 노인부양 부담이 줄어든다는 내용의 글이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코로나19가 주로 노인들에게 치명적이니,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일이라는 반응도 많다. 해당 글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가며 곧 노인 혐오로 이어지는 모양새이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높고 건강한 젊은이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크게 위기의식을 느끼거나 신경 쓰지 않고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느낌이다. 곧 코로나 바이러스는 노인들 문제이고 자신들은 해당이 없다는 태도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젊은이들이 모이는 클럽이나 술집이 바이러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붐비는 것은 전 세계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젊은이들의 이런 태도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책임의식을 촉구하는 보도가 많은 나라에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젊은이들이 건강에 대해 갖는 자신감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고 나이 든 사람들에 비해 활동량도 많기에 이런 현상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지만, 그 기저에 베이비 부머에 대한 분노가 자리하고 있는 것도 상당 부분 사실이다. 신자유주의 이후 심화된 양극화가 만들어낸 태도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신중한 태도를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베이비 부머에 대한 불만은 여느 나라와 다름없이 똑같거나 어쩌면 더 심하게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말하자면 한국 젊은이들이 아마도 가장 심각할 수도 있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보편적일 정도로 한국 젊은이들은 박탈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다. 한국의 베이비 부머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인데, 이들은 한국이 한참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풍요를 누린 세대이다. 언제나 내일은 오늘보다 더 풍요로울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았고 또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이후 급격하게 사회적 역동성을 잃고 양극화가 심화된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볼 때, 한국의 베이비 부머들은 자신들은 누릴 것 다 누리고 나서 후대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고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들이다.
부머 리무버와 같은 극단적이고 조롱 섞인 비아냥까지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베이비 부머 즉 한국 꼰대들에 대한 반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안정적인 직장이 귀하다 보니, 공무원 시험에 몰두하는 공시족이 보편적 용어가 될 정도로 한국 젊은이들은 박탈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고 이런 박탈감이 베이비 부머에 대한 원망 내지 증오로 이어지는 것은 외국의 사례를 봐도 필연적인 일이다.
그래도 아직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젊은이들이 극단적 혐오까지 표출하지는 않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고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빠른 시간 내에 정착되지 못하고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외국과 똑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한국의 꼰대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하고 시급히 해법을 모색해야 할 시점임을 코로나 바이러스가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