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경이 / 인천 노인종합문화회관 회원 석의준
질 경 이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회원 석의준
늘 길섶을 지켰다고 옛날에는 길경이라고 했지
똥지개 마주쳐도 참고 또 참았지
철 구루마 바퀴에 제 한 몸 찢겨질 때
우마차에 길 내어주고 요리조리 피해 살았어
오랜 세월 용케도 잘 버텼지
숱한 벌레에 온 몸 맡겨 중생은 구했지만
전신이 흙탕물에 안길 때는 일상이 싫어지네
험하다 못해 몹쓸 시간 그토록 모질 수가 없었네
반짝이는 별 바라보다 그만 웃었지
내가 만든 길 따라 한 아이가 다가오네
새벽이슬로 단장하고 다소곳 앉아있네
내 끈질긴 이력을 다 알았나 보네
내 한 몸 쪼개놓고 푸성귀로 구색 맞추더니
둥그런 식탁에서 난생 처음 칭찬을 받았네
남은 찬밥 순돌이 먹게 보자기로 덮어두고
뒷동산에 할미꽃 지면
세발자전거 탄 아이와 빗겨가는
질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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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길섶을 지키는 풀은 질경이었다. 그런데 도시화 되면서 질경이를 흔하게 볼 수 없게 되었고 질경이가 어떤 식물인지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알지 못한다. 사실 예전에 질경이는 똥지개와 마주치고 철 구루마에 제 몸 찢기고 우마차에 길 내어주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하지만 지금은 약초로 혹은 좋은 화장품으로 귀하게 쓰인다. 씨앗의 속껍질인 차전자피로 부드러운 식빵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비타민이 가득한 산야초 음식으로 재탄생한 것이 질경이다.
이 시를 쓴 시인은 숱한 벌레에 온 몸 맡기고 전신이 흙탕물에 안기던 질경이의 생태와 자신의 삶을 비유한다. 질경이와 같이 모진 삶을 반추하면서 허전하고 쓸쓸한 웃음을 내비친다. 질경이를 생각하면 왠지 ‘질기다’라는 어휘가 떠오른다. 질긴 울음, 질긴 수명, 쉽게 끊어지지 않고 쉽게 헤지지 않는 끈덕진 목숨….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 떠오르는 순간이지만 곧 시인은 자신이 만든 길을 따라 한 아이가 다가온다고 진술한다. 이는 아마도 자신을 닮은 자식인 듯하다.
순환하는 삶에서 성장한 아이는 나이 든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흙탕물 속에서 자라는 질경이를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도 이제는 질경이로 구색을 맞춰 식탁을 차린다. 둥그런 식탁에 차려지는 질경이 반찬은 한참 씹으면 본연의 향이 살아나면서 맛이 있다. 난생 처음 칭찬을 받는 것이 질경이 음식이듯 아버지는 가족들로부터 받아들여진다.
산과 들에서 나는 모든 풀과 꽃인 산야초는 이제 음식으로 한약재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질경이, 냉이, 민들레, 오이풀, 취나물, 곰취, 참나물,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우마차에 길 내어주고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질경이… 세상 낮은 곳에 버려지고 소외된 존재들은 언제든지 재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