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내가 엄마 보물이잖아" - 장현정 / 공감미술치료센터장
나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 엄청난 일중독자였다. 그때는 무언가 계속 배우고 일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쫓기듯 살았다. 촉박하게 시간 맞춰 이동하던 어느 날 속도를 내며 커브길을 달리다가, 문득 이대로 확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병들어 있었던 것 같다.
출산 이틀 전까지도 근무를 했다. 출산휴가 3개월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일을 하지 않았던 기간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에도 나는 종종 전화를 받고 메일로 업무처리를 했다.
나는 공공연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다녔다. 스스로 다짐하듯. 그래야 한다고 나 자신을 몰아치듯.
“나는 일이 중요해. 나는 사람보다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야.”
그랬었다. 그랬는데 얼마 전 아들이 내게 물었다.
“엄마는 보물 1호가 뭐야?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었다.
”너지. 우리아들 돌돌이지.“
”그럼 보물 2호는 뭐야? 3호는? 4호는? 5호는?“
질문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아들 덕분에 내 삶의 보물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딱 10호까지 보물을 찾았는데 모두 사람이었다.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중요하던 일도, 쉼 없이 쌓아놓은 경력도, 열심히 모아둔 돈도 아니었다. 이루고 싶었던 꿈, 야망, 갖고 싶었던 어떤 물건도 그들보다 소중하지 않았다.
고작 몇 년 사이에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아들 덕분에 주말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자연에서 뛰어놀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아들 덕분에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나누는 즐거움도 알았다.
잠든 아들의 코고는 소리가 못 견디게 귀여워서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벗어놓은 아들의 신발에서 발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데 그마저 재미있고 사랑스러웠다.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뻔한 진리를 아이를 통해 배웠다.
오늘도 아이에게 내 마음을 고백한다.
”엄마의 보물이 누구인지 알지?“
”응, 나잖아. 내가 엄마 보물이잖아.“
당당히 이야기하는 네 모습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