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돌돌이와 함께하는 선택과 결정
- 은옥주 / 공감심리상담연구소 소장
우리 집에 ‘1박 2일 할머니 캠프’가 열린다. 나와 손자가 집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는 것이다. 여행도 의식도 자유롭지 않으니 손자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또 다른 목적으로 선택과 결정 훈련을 염두에 두었다. 매주 금요일 밤, 집에서 15분 거리의 대형서점으로 책방 산책을 나간다.
서점에서 책을 꼭 한 권만 골라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았다. 올해 7살이 된 손자는 여러 권을 골라서 잔뜩 쌓아 놓고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최종 결정을 할 때는 아주 결연한 표정을 짓는다.
“할머니, 이걸로 결정했어요.”
아이에게는 책 한권의 선택이 어른들 집 한 채 사는 것만큼 어려운 듯하다. 한참 동안 ‘어벤저스’에 빠져 있더니 요즘은 ‘겨울왕국’에 눈길을 준다. 비슷한 책을 몇 권째 사고 싶어 해서 같은 책을 여러 권 살 필요가 없다고 만류했다.
“할머니 이 책은 조금 달라요 똑같지는 않아요.”
나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돈은 필요한 것 사는데 써야 해. 천천히 더 생각하면서 골라봐.”
나는 아이가 생각을 바꿀 시간을 주려고 옆의 문구점을 천천히 둘러 보았다. 아이는 색상지 코너를 둘러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할머니 아무래도 겨울왕국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잡화 코너를 살펴보다가 다시 말했다.
“할머니 나는 그 책이 제일 좋고요. 또 필요해요.”
스티커 코너를 돌다가 또 다시 또렷한 어조로 말했다.
“할머니, 엘사가 나오는게 제일 좋아요.”
나는 마음이 약해지려는 걸 간신히 추스렸다. 한 번만 더 둘러보자고 달래며 둘러보다가 마침 ‘겨울왕국’ 메모리게임카드가 눈에 띄었다.
“와 이거좋다. 엘사도 나오고 겨울왕국 카드가 다 나왔네.”
아이는 말없이 훑어보더니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이것도 좋아요. 이걸로 결정할께요.”
그날 밤 우리는 밤늦게까지 카드놀이를 하며 즐겁게 놀았다. 아이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꽤 만족스러워했다. 그 다음 주에 아이는 사주기 조금 아까운 책들을 골라왔다. 나는 다른 책들도 아이 앞에 내밀어 보았다. 마침내 결정의 순간, 아이는 내가 고른 책 중에서 ‘색종이 접기’를 선택했다. 나는 속으로 내 작전이 성공한 듯해서 썩 기분이 좋았다.
“어머나, 좋은 책을 골랐어! 이것 참 재미있겠다!”
“이건 할마니가 좋아하는 거잖아요.”
물주가 권하는 책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섰을까, 아니면 자기도 그 책이 정말 마음에 들었을까 잘 몰겠다. 아무튼 우리는 색종이 한 묶음을 사와서 밤늦게까지 도면을 보며 접기에 열중했다. 아이가 어려운 지갑을 완성하자 재빨리 종이지갑에 천 원짜리 지폐를 넣어주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서 간식을 골랐다. 아이는 이것 저것을 고민하더니 또 결연한 표정으로 한 개를 골랐다. 어느새 캄캄한 밤이 되었다. 어두운 밤 문화예술회관 광장은 그림자놀이와 달리기를 하기에 좋은 광장 놀이터가 되었다. 공차기와 술래잡기를 하며 놀다가 잠시 벤치에 앉았다.
“돌돌이 과자 몇 개 먹을래?”
“여섯개요. 아니아니, 일곱 살이 되었으니까 일곱 개 먹을래요.”
계속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 힘들 법도 한데, 아이는 두손 가득 과자를 쥐고 행복한 표정이다. 맛있게 오물오물 먹으며 자신의 결정에 대해 만족스러워하는 아이를보는 내 마음도 흐뭇하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때로는 두려워 망설이기도 하고 여러 날 밤을 뜬 눈으로 지새기도 하였다. 이렇게 선택과 결정을 어려워 하는 마음상태를 흔히 ‘결정장애’라고 하는데,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해져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결정이 더 어려워진다. 과거에는 ‘햄릿증후군’이라고도 했다.
결정이 어려웠으면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한 짬짜면도 나오고, 볶음밥도 같이 나오는 볶짬짜면까지 나왔을까. 아무튼 할머니 캠핑을 통해서 아이의 선택과 결정 훈련이 조금씩 성과가 있는 듯해서 만족스러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