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번아웃 증후군 극복기 - 공감미술치료센터 기획팀장
2018년 연말, 치열했던 박사과정을 마치면서 느꼈던 감정을 잊을 수 없다. 분명 홀가분한 느낌일 줄만 알았는데 불안감과 공허함이 동시에 나를 덮쳐왔다. ‘왜 이리 나는 불안한 걸까? 어째 나는 이렇게 허무함을 느낄까?’
반나절의 휴식과 진지한 물음 끝에 내렸던 결론은 그동안의 무리한 일정과 스트레스로 인한 번 아웃 증후군이었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이란 어떤 일에 몰두함으로 인한 과도한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불안감과 자기혐오, 분노, 의욕 상실 등을 불러오는 증상을 말한다.
또한, 완벽한 성과를 내기위한 강박관념 등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다가도 갑자기 아무런 의욕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되는 특징을 보여 소진 증후군이라고도 불리운다.
나의 경우에는 편안히 쉬려고 하면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불안이 올라오는데 막상 무언가 시도 하려고 하면 전혀 의욕이 생기지 않는 상태였다.
때마침 잡힌 연말모임에 참석하며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면 잊혀질 줄 알았지만 흥겹게 한잔 걸치고 돌아오면서도 마음은 더욱 쓸쓸해지는 느낌이었다.
‘안되겠다. 나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어.’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미치자, 버킷리스트 중에 상위 링크되었던 나홀로 배낭여행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렇게 떠나게 된 동남아시아의 보석 같은 나라 3개국, 한 번도 안 가본 낯선 두 나라와 친숙한 한나라가 선정되었다. 그곳은 바로 베트남, 라오스, 태국.
내가 계획했던 여행은 되도록 많은 곳을 도보로 여행하며 현지음식과 현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찐 경험을 하고 오는 것이었는데, 편도로만 4번에 걸쳐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며 단촐한 짐에 읽을 책들만 3권정도 넣어가는 10일간의 일정이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뭔가를 하기로 작정하고 일정을 잡자 무기력에 빠져있던 뇌는 급격히 활동을 재개하며 마구 상상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아.. 여기서는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저기 가서는 꼭 이걸 먹자..’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당일, 6시간을 날아 도착한 첫 나라는 베트남 다낭이었다.
너무너무 손꼽아 기다린 만큼 너무너무 좋았다. 자유를 만끽했으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2~3시간 정도 지나자 귓가에 계속 들리는 한국말들..
그렇다 그 당시 ‘꽃청춘’ 이란 TV프로에 소개된 뒤라 그런지 한국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던 것이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명소를 갈 때마다 나는 마치 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 흥미로운 점은 길거리에서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입고 다니는 사람은 전부 한국인이었다는 점이다. 현지인은 아오자이를 잘 안 입더라고;;
그곳은 한국으로 치면 마치 용인민속촌이나 전주한옥마을 같은 곳(외국인들이 한복입고 돌아다니는 풍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재미난 기억이다.
태국에서는 무에타이 클래스를 들었다.
이것은 정말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한국에서도 잠깐 배웠던 터라 현지 무에타이는 어떨지 정말 궁금했었다. 마침 숙소 근처에 무에타이 원데이 클래스를 하는 체육관이 있어서 시도해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무에타이를 경험하러온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너무나 흥미롭고 힘든 시간.. 10시간 같은 한 시간을 보냈다.(체력의 한계를 느꼈던 시간;;)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내가 갔던 체육관은 그냥 술렁술렁 다이어트 킥복싱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우리 부관장님을 통해 들은 얘기)
마지막 여행지인 라오스에서는 나홀로 생일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의 첫날, 생일을 그냥 보내기엔 아쉽고 해서 기억에 남는 식사를 하고 싶었다.
어딜 가면 좋을까 거리를 배회하다 나름 인테리어 깔끔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라오스스타일 전통요리를 시켰더니 출처를 알 수 없는 음식이 한상 가득 나왔다 '이건 뭐지.. 어떻게 먹는거지??'
나중에 알고보니 내가 시킨 메뉴는 생각보다 비싼 메뉴였는데 라오스를 온 첫날이라 환율에 대한 감이 없어서 비싼 요리를 막 시킨 것이었다.
물론, 어떻게 먹는지 몰라도 끝까지 다 먹었다. 요즘도 가끔 생일을 떠올리면 그날 먹었던 특별한 저녁식사가 생각나곤 한다.
타지에서 맞는 유니크한 생일상이라니!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에 따르면, 소진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뇌 안에 있는 감성-충전 시스템을 활성화 시켜야만 하는데 ‘단절’을 통해 치열한 삶에서 한 발짝 거리를 두고 과부화된 우리의 뇌를 이완시키고 충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단절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데 즉, 내가 나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되면 삶의 여유가 생기고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나홀로 여행은 자연스레 일상과의 ‘단절’을 통해 과부화된 뇌를 이완시키고 충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느리게 살아보는 경험은 충분한 휴식과 스스로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어려워졌으며 번아웃 증후군 극복을 위해 꼭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뇌를 이완시키고 충전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 하니 소개한다.
1. 세 번 깊게 호흡하며 그 호흡의 흐름을 느끼기 :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는 동안, 회의 시작 전 또는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호흡의 흐름과 함께 마음을 느껴봅니다.
2. 조용한 곳에서 음미하며 밥 먹기 : 음식의 색깔, 향 그리고 밥알의 움직임을 느끼며 먹는 천천히 밥 먹기(slow eating)도 자신의 생각에 집중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3. 하루 10분 산책하기 : 여유롭게 몸을 움직이면 뇌의 긴장감이 이완되며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4. 일주일에 한 번 친구 또는 지인과 힐링 수다하기: 마음이 지치고 불안하면 나 자신을 바라볼 여유를 가지지 못합니다. 공감되는 수다만큼 큰 위로가 없습니다.
5. 주 1회 슬픈 영화나 슬픈 작품 감상하기: 즐겁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마음을 조정하는 것을 기분전환이라 하는데 계속 기분전환만 하다 보면 내 마음의 슬픈 감정을 바라보는 능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6. 일주일에 3편의 시 읽기: 사람의 마음은 논리보다 은유에 움직입니다. 은유에 친숙해지는 것은 내 마음을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7. 스마트폰 집에 두고 당일치기 기차 여행하기: 기차에서 창 밖을 멍하니 보다 보면 자연스레 명상 효과가 일어나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윤대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