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양육태도, 아이의 기질과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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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양육태도, 아이의 기질과 성격
  • 장현정
  • 승인 2020.07.15 0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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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 가족의 세상살이]
(107) 영화(케빈에 대하여)와 책(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을 통해 바라보는 부모에 대해서 -
장현정 / 공감미술치료센터장

 

이십대에 나는 세상의 모든 일에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 때 원인을 찾아 해결하면 그 일은 깨끗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조금 더 살아보고 나니 세상의 이치가 꼭 인과율로 움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겠고,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다는 것도 알겠다. 그 사실을 체득하고 나니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금 덜 당황하고 조금 덜 화가 난다.

 

아가씨 미술치료사 시절, 나는 부모의 양육태도가 원인, 자녀의 문제가 결과라고 생각했다. 자녀의 문제는 부모가 촉발시키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결국 문제해결을 위해 부던히 엄마의 양육태도 문제를 지적하고 더 노력하시도록 촉구했다. 당시에는 명백하게 부적절한 양육 전략을 쓰는 부모님들이 상당히 많았고, 아동 인권에 대한 개념도 지금과 많이 달랐기 때문에 그러한 진단과 제언이 필요했을 것이다.

 

내가 현장에 나온 지 이십여년이 되어 간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고 세대도 달라졌고, 나도 아기엄마가 되었다. 지금의 부모님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충분한 교육을 받았으며 넘치도록 많은 정보 속에 살아가고 있다. 미술치료실에 방문하는 분들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부모-자녀 관계의 형태도 달라져서 이전보다 섬세하고 복합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하나의 원인으로 정할 수 없는 여러 고민들이 존재한다.

 

때문에 최근 심리치료분야에서 중요하게 보는 것 중의 하나는 기질이다. 기질은 성격의 타고난 특성과 측면들을 의미' 하는데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개인의 특성을 만들어 낸다. 최근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라는 검사에서는 타고 태어난 기질과 살아가며 형성된 성격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기도 한다. TCI에서는 기질이 성장하면서도 쉽게 변하지 않는 특질이기 때문에 부모의 수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더욱 기질론에 동의하게 되기도 했지만, 최근에 케빈에 대하여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기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케빈은 어려서부터 조금 남다른 부분이 있었다. 케빈의 엄마는 출산으로 완전히 달라진 자신의 삶에 적응하느라, 까다롭고 반항적인 케빈을 키우느라, 늘 우울하고 지쳐있었다. 엄마는 난폭하고 공격적인 케빈의 모습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만, 남편에게 공감받지 못하고 막연하게 아이를 두려워하며 거리를 두게 된다. 결국, 독특한 케빈의 기질과 애정 결핍이 상호작용하던 어느 날, 케빈은 자신이 가진 내면의 폭탄을 가장 공격적이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폭발시켜 버린다.

 

이 영화의 여운이 강렬히 남아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한 가지 더 알게 된 책이 있었다. 수 클래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이다. 미국 최악의 총기사고로 알려진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학살자 딜런 클래볼드의 엄마가 쓴 책인데, 이 책을 손에 잡자마자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이 책을 읽으며 놀라운 사실은 콜럼바인 이전의 그들의 삶이 너무 평범하다는 점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힘들지 않은 가정, 전문직의 부모, 평범한 고등학생이던 딜런은 친구인 에릭과 함께 13명을 총으로 사망하게 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을 잃었지만 애도조차 조심스러웠을 그녀는, 딜런을 무한히 사랑했고 사랑하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십수년동안 속죄하며 딜런이 벌인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더 분명하게 밝혀내려고 노력했다.

 

수 클래볼드의 아들 딜런은 우울증이었으나 그녀는 딜런이 심리적으로 악화되어가는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괜찮지 않은 아이가 괜찮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 청소년에게 마음을 숨기는 일이 얼마나 빈번하고 쉬운 일인 지를 몰랐다는 것이 가장 돌이키고 싶은 일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지라도, 청소년을 키우고 있는 많은 부모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용기 내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오래 전의 나였다면, ‘분명 딜런의 부모에게 문제가 있었을 거야! 문제를 감추었을 거야!’ 라고 생각 했겠지만 지금은 인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있어날 수 있음을 안다. 자식은 부모가 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부모가 제공하는 각종 환경을 자양분으로 스스로 성장하는 존재이다.

 

오늘 날처럼 복합적인 환경에서 사회문화, 기질, 병리 등의 다양한 요인들을 배재하고 모든 문제를 부모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다.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 부모는 비난받았다고 느끼거나 절망하거나 좌절하거나 자신감과 효능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내가 부모가 되어서 그런가 케빈의 엄마도 딜런의 엄마도 남 같지가 않다. 그 고난을 버텨내고 살아가는 부모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부모라는 압도적인 아이덴티티가 주는 엄청난 책임감과 압력을 잘 알고 있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부모로서 만족스러울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부모를 단순히 자녀문제의 원인 제공자로 보는 관점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그저 부모로서 자녀와 함께 살아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어떤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를 어떻게 형성하기 위해서도 아니라, 자양분이 되기 위해서.

 

영화 '케빈에 대하여'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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