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이방인-㉑판사의 질문과 뫼르소의 답변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은 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칼럼니스트)’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글: Jacob 김 선
심문이 시작되었다
변호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는 뫼르소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뫼르소는 사실이 아니라며 대답한다. 눈치없이 솔직한 뫼르소다. 그러니 변호사는 뫼르소가 밉살스럽다는 듯이 이상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다. 양로원 원장과 직원들이 증인으로 나와 심문을 받을 때 뫼르소에게 골치 아픈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며 쌀쌀맞은 어조로 말한다. 법원 판결의 생리를 아는 염려다. 뫼르소는 그런 이야기가 자신의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지적했으나 변호사는 뫼르소가 재판부를 상대한 경험이 없다는 게 눈에 빤히 보이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다.
변호사는 화가 난 얼굴로 나가 버린다. 뫼르소는 좀 더 그를 붙잡아 두고서 그의 호감을 사고 싶다는 것, 그런데 자기를 잘 변호해 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라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다.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되는 뫼르소다. 여전히 자신에게 솔직할 뿐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그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 법도 한데... 그는 뫼르소를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있었다. 뫼르소는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그에게 딱부러지게 말하고 싶었다. 혼자만의 생각이다. 그래서 결론도 혼자만 생각한다. 모든 것이 소용없는 일이고 또 귀찮기도 해서 단념하고 만다.
얼마 뒤 뫼르소는 예심판사 앞으로 불려 갔다. 그의 사무실은 얇은 커튼을 뚫고 새어 드는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빛이 은총의 빛이 되길 바란다. 판사는 뫼르소를 앉힌 다음 퍽 정중하게 뫼르소의 변호사가 갑작스런 일로 오지 못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때까지 기다릴 권리가 있다고도 말했다. 자신의 권리에 큰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뫼르소는 혼자서라도 대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판사는 손가락으로 책상 위의 벨을 누른다. 젊은 서기가 들어오더니 뫼르소 등에 자리 잡고 앉는다.
뫼르소와 서기는 둘 다 안락의자에 편안하게 앉는다.
영화처럼 주인공의 살인의 대상은 다르지만 묻고 답하는 그 둘의 관계는 언제나 무겁고 묘하다. 그 분위기로 심문은 시작된다. 판사는 먼저 사람들이 뫼르소가 말이 적고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뫼르소는 별로 할 말이 없어 말을 안한다고 대답한다. 거짓없는 답변이다. 판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지당한 이유라고 말한 다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덧붙인다. 판사는 말을 뚝 그치고 뫼르소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자세를 바로 하면서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은 뫼르소 자신이라고 빠른 어조로 말한다. 뫼르소의 답변이 판사를 힘들게 하는 것 같다.
뫼르소는 판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수 없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판사는 이어서 뫼르소의 행동에는 자신이 이해하기 곤란한 점들이 있는데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한다. 판사는 자신이 듣고자 하는 말을 어떻게든 듣기 위해 뫼르소를 압박한다. 뫼르소는 모두 지극히 간단한 일들뿐이라고 대답한다. 압박이 조금은 통한 듯 하다. 그날 있었던 사건을 다시 이야기해 보라고 재촉한다. 뫼르소는 판사에게 이미 한 번 이야기한 것을 다시 요약해 되풀이했다. 레몽, 바닷가, 해수욕, 싸움, 다시 바닷가, 조그만 샘, 태양, 그리고 다섯 방의 총격. 뫼르소는 깔금하게 상황을 그려내는 재주가 있다.
한마디 할 때마다 판사는 호응해 주면서 시체 이야기에 미치자 좋다며 뫼르소의 이야기를 확인한다. 판사는 진실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같다. 뫼르소는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 하는 것이 지겨웠으며 여태껏 그렇게 말을 많이 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반복되는 이야기에 지칠 법 하다.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던 판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뫼르소를 도와주고 싶고 흥미를 느낀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도움을 얻어 뫼르소를 위해 뭔가 해 주고 싶다고 말한다. 진심인지 의심스럽다.
판사는 먼저 뫼르소에게 몇 가지 더 물어보고 싶다고 하며 다짜고짜 엄마를 사랑했느냐고 묻는다. 질문의 의도가 의문스럽다. 뫼르소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랑했다고 대답한다. 판사 질문의 의도를 의식하지 않은 채 답하는 뫼르소는 간단명료하다. 그 순간 그때까지 규칙적으로 타이프를 치던 서기가 키를 잘못 짚은 것 같다고 뫼르소는 생각한다. 서기를 의식하는 여유도 있어 보인다. 판사는 확연한 논리도 없이 이번엔 뫼르소에게 권총 다섯 발을 연달아 쏘았느냐고 묻는다. 중요한 질문이다. 그것을 감지한 것인지 뫼르소는 잠시 생각을 해 보고 나서 처음에 한 발을 쏘고 몇 초 후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고 설명한다. 그러자 판사는 첫 발과 둘째 발 사이에 왜 기다렸는지 묻는다. 뫼르소는 다시 한 번 붉은 바닷가 모래밭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고 이마 위에 타는 듯 뜨거운 햇살이 느껴졌다. 그 당시 기억의 조각들이 첫 발과 둘째 발 사이처럼 답변을 기다리게 만든다.
이번에는 뫼르소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 뒤로 침묵이 계속되는 동안 판사는 흥분해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더니 머리털을 헝클면서 책상 위로 팔꿈치를 괸 다음 야릇한 표정으로 뫼르소에게 왜 땅에 쓰러진 시체에다 대고 쏘았는지 묻는다. 무거운 질문이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법의학자에게도 이 질문은 유효할 것 같다. 왜 죽은 시체에다 또 쏘는지 그 심리가 궁금할 것이고 어쩌면 시체를 통해 답을 얻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전에 당사자에게 먼저 듣는 것이 궁금증을 해결하기가 빠르기에 묻지만 뫼르소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판사는 왜 그랬는지 까닭을 말해 달라고 되물었다. 질문의 무게가 뫼르를 짓누른다. 그래서 뫼르소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