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과 대답
상태바
질문과 대답
  • 김선
  • 승인 2020.11.25 0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㉚뫼르소 심문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칼럼니스트)’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Mon interrogatoire a commencé aussitôt.

곧 심문이 시작되었다.

 

  신문기자들은 벌써 만년필을 손에 들고 있었다. 쓰고 싶은데로 쓸려고 기본 자세를 잡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무심하고 약간 비웃는 태도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기자스럽다. 그러나 그들 중 회색 플란넬 옷을 입고 푸른 넥타이를 맨 아주 젊은 청년 하나만은 만년필을 앞에 놓은 채 뫼르소를 바라 다 보고 있었다. 항상 예외는 있는 법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호기심과 사실사이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약간 좌우 균형이 잡히지 않은 듯한 얼굴에서 뫼르소에게는 매우 맑은 두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눈은 이렇다 할 아무 표정도 드러내진 않은 채 물끄러미 뫼르소를 뜯어보고 있었다. 아직은 그의 마음에 확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자 뫼르소는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야릇한 인상을 받았다. 어쩌면 기자 눈에 비친 뫼르소 자신만이 온전한 뫼르소일지도 모른다. 눈에 갖힌 뫼르소는 그곳의 관습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뫼르소는 뒤이어 일어난 모든 일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해하려고 그다지 애쓰지도 않았지만 그래서 일어날 모든 일은 뫼르소와 무관할 수 있는 것이다.

  배심원들의 추첨과 변호사 검사 배심원을 향한 재판장의 질문, 기소장의 빠른 낭독 그리고 다시 뫼르소의 변호사에 대한 질문 등이 있었다. 순서대로 재판은 진행되고 있다. 재판장이 증인 호출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증인들이 뫼르소에게 어떤 증언을 할지 아직은 모른다. 서기가 이름들을 불렀다. 그 이름들은 뫼르소의 주의를 끌었다. 여태까지 불분명한 모습이었던 그 방청객들 속으로부터 한 사람 한 사람씩 일어서서 옆문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사라진 증인들이 증인이란 모습으로 등장할 때 뫼르소에게 그들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양로원 원장, 문지기, 토마 페레스 영감, 레몽, 마송, 살라마노, 마리. 익숙하지만 낯선 이름들이다.

  마리는 뫼르소에게 조그맣게 걱정스럽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를 뫼르소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뫼르소는 아직도 그들이 진작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끝으로 호명된 셀레스트가 일어섰다. 그의 곁에는 언젠가 식당에서 보았던 키가 자그마한 여자가 재킷 차림에 분명하고 단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뚫어지게 뫼르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왜 뫼르소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그러나 재판장이 또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뫼르소는 생각을 해 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재판장은 이제부터 정식 심리가 시작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나서 방청석의 정숙을 새삼스럽게 요청할 필요조차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청석은 이미 정숙하다 못해 삭막한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건의 심리를 공명정대하게 진행하는 것이 자기의 직분이며 자기는 객관적인 눈으로 사건을 검토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재판관은 그래야 하지만 얼마나 그렇지 못할지 스스로 염려되어 많은 방청객 사이에서 다짐을 하는 거이다. 배심원들이 내리는 판정은 정의의 정신에 입각해서 취해질 것이며 어째든 조그만 불상사라도 생기면 방청객들에게 퇴장을 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심원들을 신뢰하는 듯 하지만 최종 결론은 항상 그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점에 스스로의 다짐을 다시 다짐했으면 좋겠다.

  더위는 점점 심해져서 방청객들이 신문지로 부채질하는 것이 보였다. 그 때문에 나직하게 종이 구겨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나는 것이었다. 재판장이 손짓을 하자 서기가 짚으로 엮은 부채 세 개를 가져왔고 세 사람의 판사는 즉시 그것을 사용했다. 집중력이 흩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곧 심문이 시작되었다. 재판장은 뫼르소에게 부드럽게, 다정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어조로 질문을 했다. 처음이라 그런 것이다. 또다시 뫼르소에게 신분을 대라고 했는데 뫼르소는 짜증이 나기는 했으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름 합리적 판단이 빠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잘못 알고 재판을 한다면 그건 너무나 심각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가 있을 법도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짜증을 스스로 진정시키는 이유로는 부족해 보인다.

  재판장은 뫼르소가 한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두서너 마디 하고는 매번 그렇지요?’ 하고 뫼르소에게 다짐을 하게 했다.

 

혼토르스트(Honthorst, Gerrit van. 1590~1656), 안나스 법정 앞에 서신 예수, 1617
혼토르스트(Honthorst, Gerrit van. 1590~1656), 안나스 법정 앞에 서신 예수, 1617

 

안나스 법정에서 선 예수님의 태도와는 다르게 뫼르소는 재판장의 질문에 대답을 강요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분명한 의도를 확인하려는 과정이다. 그럴 때마다 뫼르소는 변호사의 지시에 따라 , 재판장님하고 대답했다. 변호사가 그의 변호사이길 바랄 뿐이다. 재판장은 뫼르소의 이야기의 매우 세밀한 부분들까지 따졌으므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재판장이 더 열정적인 듯하다. 그동안 줄곧 신문기자의 시선과 그 키가 자그마한 자동인형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서로를 의식하지 않은 듯 무심한 척하는 전차의 좌석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사람들처럼 일제히 재판장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재판장은 기침을 하고 서류를 뒤적이고 나서 부채질을 하며 뫼르소에게로 눈을 돌렸다. 의식해야 할 확실한 시선이다.

  재판장은 뫼르소에게 이제부터 겉으로는 뫼르소의 사건과 아무 관계도 없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아마 밀접한 관계가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문제들을 다뤄야겠다고 말했다. 묘한 뉘앙스다. 관계없는 밀접함은 다루기가 만만치 않을 듯 싶지만 다룬다고 하니 지켜보자. 뫼르소는 또 엄마 이야기를 하려는 것임을 알아차렸고 동시에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를 깨달았다. 엄마의 죽음은 이 재판정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묘한 뉘앙스를 간파한 뫼르소에게 왜 엄마를 양로원에 보냈냐고 재판장이 물었다. 엄마를 부양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뫼르소는 대답했다. 기대한 대답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뫼르소 개인에게 부담이 되는 일이었느냐고 묻기에 엄마도 자신도 이미 서로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었다고 답했다. 또 누구에게도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으며 그리고 각기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져 버렸다고 대답했다. 뫼르소의 대답은 엄마와 자신의 관계를 명료하게 정립하고 있다. 그러자 재판장은 그 점에 관해서는 더 캐묻지 않겠노라고 말한 다음 검사에게 다른 질문이 없느냐고 물었다. 일단 뭔지 모르겠지만 통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