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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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품격
  • 안태엽
  • 승인 2020.12.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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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안태엽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회원

몇 해 전 EBS TV 한국 기행이라는 프로에 ‘경북 울진’ 편이 나왔다. 작은 마을을 소개하는데 계곡과 바다가 있는 위치에 여고 동창생 다섯 분이 남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귀촌하여 각기 예쁜 집을 짓고 한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예그리나’라는 마을 이름만 알고 몇 차례 그 곳을 향해 출발했지만 못 찾고 돌아왔다. 그 뒤 재방송을 본뒤 인터넷을 찾아 그곳이 울진이 아닌 속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알고 지내던 지인들과 그 마을을 찾아갔다.

2011년 조성 당시 고성군 예그리나 마을
2011년 당시 속초여고 동창생 5가구가 조성한 예그리나 마을(사진=연합뉴스)

 

산길을 따라 걸으면 맑은 새소리가 들리고 숲속에는 계곡물 소리가 들리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이런 곳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노크를 하였다. 외지 사람인 것을 알고 그들은 경계하는 눈치였다.

나는 우리 일행을 먼저 소개 했다. 그러자 안으로 들어오라며 그들은 서먹서먹한 분위기로 말했다. 그 집에는 여고 동창생 한 분이 같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어! 이분 TV에 나올 때 감자튀김을 가지고 나온 분이시죠?” 하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예. TV 프로를 보셨군요.” 하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나는 “TV에 나온 모습은 전형적인 주부의 모습이었는데 실물을 보니까 아주 젊으신 분이시네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집주인은 전화로 손님들이 오셨다며 동창생 친구들에게 모두 올라오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다과를 나누며 긴 시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인간관계에서 소통은 삶에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도 있고, 원치 않는 삶을 살 수도 있다. 자신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소통 능력이 부족하면 자신의 능력을 펼치는 데 한계가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인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에 벗어나면 아무것도 해나갈 수 없다. 소통이 잘 이루어지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도, 도움도 받을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많은 것을 배우게 되며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타고난 자질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세계적인 지휘자이며 음악 감독인 금난새는 자신이 속해있는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원만한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도 단원들에게 물을 때면 소속원들은 “선생님 그것도 모르세요?” 놀라는 표정으로 단원들은 그와 소통의 거리를 좁혀갔다.

진정성 있는 대화는 상대로 하여금 서서히 갑옷을 벗게 한다. 마음이 무장 해제를 하면 비로소 안에 있는 것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발견한다. 진실이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 되게 하는 마력을 지녔나 보다.

나는 소통을 한다면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더 많은 얘기를 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이 상대보다 말을 적게 하면 마치 상대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소통을 하는데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소통을 한다면서 상대도 알고 있는 지식을 알려 주려 했고 충고하고 조언하려는 마음과 가르치려는 경향도 있었다. 상대의 얘기를 들으면서 무슨 얘기를 해줘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니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할 때도 있었다.

말을 잘하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듣는 기술은 더욱 필요하다. 말을 청산유수로 잘 하지 못해 어눌해도 호감을 주는 사람이라면 소통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잘 전달되고 있다는 안정감을 갖게 되면 상대는 자신을 더욱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럴 때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마음에 햇볕을 쬘 일조권이 형성된다.

나는 “여고 동창생 다섯 분이 함께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덴데 남편들과 아이들까지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냐”고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그들이 좋은 분들과 함께 마을을 이루어 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심전심, 진정한 소통을 하게 될 때 말하지 못했던 것, 말하지 않은 것, 말할 수 없었던 것을 우리는 이미 알게 된다. 듣는 것이 귀로 듣는 차원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으며 상대의 ‘심정으로 들어가’ 같은 마음으로 느끼며 내면의 소리까지 들으므로 교감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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