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족발 그 옆에 뜨끈이 닭강정집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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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족발 그 옆에 뜨끈이 닭강정집 있고
  • 최일화
  • 승인 2020.12.18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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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허문태 시집 『배롱나무꽃이 까르르』 - 최일화 / 시인

허문태 시인은 인천에서 40여 년 문학 활동을 해온 중견 시인이다. 등단 절차를 미루고 있다가 2014년에야 계간 리토피아를 통해 등단하여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16달을 끌고 가는 사내, 올해 두 번째 시집 배롱나무꽃이 까르르를 발간했다. 한 저명한 시인은 한 시인의 시 한두 편 읽고 시평을 쓰거나 시인을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위험한 것이라고 했다. 최소한 시집 한 권은 통독하고 그 시인을 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필자도 한 시인에 대해서 글을 쓸 때 꼭 한 권의 시집을 다 읽고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집 배롱나무꽃이 까르르를 다 읽었을 때쯤 시집 속에서 시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교류를 해오면서도 잘 몰랐던 시인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시인의 일상이 보이고 생각이 보이고 지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글은 곧 사람이라는 세간의 말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럼 시인의 시집 속 시 몇 편 함께 읽으며 시인이 가꾸어 놓은 시의 정원을 함께 거닐어 보기로 한다.
 


자연산

광대뼈가 나오고 눈이 작은 아줌마 자연산 외친다.
시장 입구 미꾸라지 통을 펼쳐놓고 자연산 외친다.

손가락이 짧고 손이 두툼한, 배가 봉긋하고 허리에 군살이 없는, 벙글벙글 웃을 때마다 뻐드렁니가 드러나는, 까무잡잡 번들번들 구릿빛 얼굴, 파마는 해본 적 없는지 생머리 찰랑이는, 눈빛 반짝이는 아줌마.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하루 종일 자연산을 외친다.
버스 광고판 성형외과 의사 고개를 빼고 쳐다본다.
                                         -허문태 시 <자연산> 전문

화장기가 없어 꾸밈이 없고, 시장에서 미꾸라지를 파는 한 아줌마의 모습을 해

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 속의 자연산은 양식 미꾸라지가 아니라 자연산 미꾸라지라는 것이지만 실은 그 장사하는 아줌마가 자연미인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의미의 중첩이 일어난다. 광고판 성형외과 의사가 바라보고 있다는 지점에서 시인의 의도가 드러난다. 성형은 세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시대의 트랜드가 되었다. 시의 화자가 자연산을 외치는 걸 보니 미꾸라지도 양식 미꾸라지 보다 자연산 미꾸라지가 더 인기 있는 모양이다. 이 시엔 세태풍자가 있고 허영과 가식으로 가득한 세상에 대한 경종이 있고 인간 본연의 순수한 모습을 동경하는 시인의 취향이 드러나 있다. 시 속 아줌마의 모습은 바로 우리나라 보통 아줌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야말로 순수 자연산인 셈이다.

바다

너 같은 것이 뭘 할 수 있어 라고 할 때도 그냥 웃고 있었지.
널 만난 것이 실수 중에 실수야 할 때도 그냥 웃고 있었지.
가만히 있지 말고 항상 흘러 봐 할 때도 그냥 웃고 있었지.
흘러 흘러서 도착한 곳이 너였구나, 해도 그냥 웃고 있지.
                                         -허문태 시 <바다>전문

이 시를 두세 번 읽으니 눈물이 날 것 같다. 중견 시인이 아니면 도달하기 어려운 시적 세계다. 비록 4행의 짧은 시이지만 시인의 전 생애가 투영되어 있는 작

시인 허문태

품이다. 종교적 심상이 드러나 있기도 한데 구약의 욥기에서 욥의 모습이 얼비치기도 한다. 굳이 신앙으로 읽지 않더라도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고난과 역경의 삶을 살아온 삶에서 그 인품의 향기가 천리향 만리향으로 퍼져나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바다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고 영원의 상징, 자비로운 어머니의 현신이다. 삶이 결코 평탄하지 않음을 날마다 체험하며 우리는 삶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그러나 시 속의 바다는 고해가 아니다.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비로소 당도하는 평화와 사랑, 대 화합의 세계다. 온갖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하느님을 저버리지 않은 욥처럼 시의 화자가 바다에 이르러 바다가 되는 과정이 경건하고 장엄하다.

잡곡 할머니

인도 히말라야 산자락 어느 강가에 평생 오른손을 하늘로 올리고 고행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밥 먹을 때도 걸어갈 때도 화장실 가서도 오른손을 하늘로 올리고 산다는데, 하늘로 올린 오른손이 굳어진 채로 살다 죽는다는데, 고행이 끝나고 저 세상에 가면 좋은 몸으로 환생하여 만복을 누린다는데, 그 지방에는 해괴한 자세로 평생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우리 동네 시장 입구 버스정류장 앞에서 잡곡 파는 할머니 있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잡곡 담긴 자루 몇 개 놓고 잡곡 팔고 있는데, 잡곡 이것저것 섞어 죽처럼 끓여 먹는 것도 보았는데, 그 할머니 잡곡 팔아 근근이 연명하며 사는 주변머리 없고 불쌍한 할머니라고 생각했는데, 보름이 넘어도 나오지 않는다.
                                       -허문태 시 <잡곡 할머니>
전문

히말라야 산자락의 고행하는 사람과 우리 동네 시장 입구 잡곡 할머니를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배치하여 감동적인 시 한 편을 얻고 있다. 고행하는 사람은 고행이 끝나면 환생하여 만복을 누린다고 했으니 온갖 고난과 역경으로 오랜 세월 고행을 했으니 할머니에게도 미래세계엔 만복이 깃들리라. 그런데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할머니는 이슬 더불어, 노을빛 함께 하늘로 돌아가셨나보다. 가서 이 세상 소풍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 시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엔 항상 서민들이 있다. 가난하기는 하지만 소박하고 순수하게 순명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낙원을 보고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시인이 보여주는 풍경이 인정이 있고 따뜻하다.
 

정서진 중앙시장·3

정서진정육점 옆에 호남생선 있고, 그 옆에 신현야채 또 그 옆에 가정건어물 있고, 그 옆에 명가떡집 그 옆에 고려왕족발 또 그 옆에 뜨끈이닭강정집 있고, 그 옆에 총각네과일 그 옆에 전라도반찬 그 옆에 진미순대국 있고, 또 그 옆에 천지건강원 그 옆에 다모아 신발 그 옆에 중앙잡곡 있고, 또 그 옆에 시아네꽃집 있고 그 옆에 달빛 지짐이 있고...

민들레꽃 옆에 토끼풀꽃 있고, 그 옆에 쑥부쟁이꽃 또 그 옆에 개망초꽃 있고, 그 옆에 개미취꽃 그 옆에 꽹이밥꽃 또 그 옆에 며느리밑씻개꽃 있고, 그 옆에 씀바귀꽃 그 옆에 패랭이꽃 그 옆에 엉겅퀴꽃 있고, 또 그 옆에 닭이장풀꽃 그 옆에 구절초꽃 그 옆에 애기똥풀꽃 있고, 또 그 옆에 찔레꽃 그 옆에 달맞이꽃 있고...     

                                -허문태 시 <정서진 중앙시장·3> 전문

시집엔 5편의 <정서진 중앙시장>연작시가 있다. 연작시 중 한 편인 시는 앞의 <잡곡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데칼코마니 회화 기법을 시에 적용한 경우다. 1연에선 아무런 시적 장치 없 시장에 들어선 점포 이름을 차례로 호명하고 있다. 2연에선 우리나라 토종 꽃 름을 나열해 놓은 것이 전부다. 점포수가 15개고 꽃 이름의 수도 15개다. 시인 의도적으로 점포 수에 맞춰서 꽃 이름을 호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뿐만 아니라 점포와 꽃 이름에 붙어 있는 조사와 쉼표, 말줄임표도 똑같다. 시인은 점포 하나하나에 꽃 이름을 붙여 점포의 번영을 기원하고 축복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활짝 핀 봄 동산의 꽃들로 하여 점포가 늘어선 시장 골목도 환하다. 낙천적고 긍정적인 메시지로 서민들의 삶을 응원하는 모습이 귀하고 아름답다.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다사다난했던 경자년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2021년 신축년 소띠 해에도 건강과 행복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시인 최일화>

*허문태 시인: 호는 우범. 2014리토피아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달을 끌고 가는 사내』 『배롱나무꽃 까르르가 있고, 리토피아문학상을 수상했다. 계간 아라문학부주간직을 맡고 있으며 막비시동인으로 활동 중다. e-mail : herwb1956@hot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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