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같은 보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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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 같은 보물관
  • 은옥주
  • 승인 2020.12.1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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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 가족의 세상살이]
할머니와 손주의 국립중앙박물관 탐방기 - 은옥주 / 공감심리상담연구소 소장

 

"에게게, 엉망으로 만들었네. 이게 칼이 라구요? 후후 훗

 

구석기 시대 도구들을 둘러보며 손자가 낄낄거렸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다음은 잘 다듬어지고 정교한 돌도끼 와 돌칼들이 진열되어 있는 신석기 시대 유물관이었다.

 

"할머니 이거 정말 돌로 만든 거예요?

"엄청 열심히 갈아서 만든 거야."

"이걸로 사과도 깍아 먹어요?“

 

딱딱한 돌을 예쁘게 갈아 만든 돌 도끼나 돌칼을 보고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 쓰는 좋은 칼을 안쓰고 왜 하필 돌로 만드는지 이해가 안되는 모양이었다. 청동기와 철기시대 유물도 순서대로 이해하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천천히 돌아보며 원시시대의 시대적 상황을 손자는 조금씩 이해하는 것 같았다. 하루에 다 감상하기에는 벅찰 정도로 많은 보물들이 우리를 기다렸다. 휴게실의 따끈따끈한 핫초코가 우리의 피로를 싹 가시게 해주었다.

 

영상관은 움직이는 입체 영상을 바닥과 천장에 비춰주는 곳이었다. 영상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손자는 천장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신기해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무대가 움직이며 사방에 환상적인 아름다운 모습들이 펼쳐졌다. 우리는 긴 소파에 편안히 누워 살아 움직이는 옛날 그림들을 감상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약제가 운영 중이었기 때문에 관람객이 적어서 여유롭게 볼 수 있었다.

 

VR체험관에서는 병풍처럼 생긴 곳에 민화가 가득 그려져 있었다. 그림판을 누르니 그림들이 갑자기 살아 움직였다. 아이는 신이 나서 그림판을 누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쌀가마니를 높이 던져 올리는 방앗간 그림 앞에서서 쌀가마니 숫자 세느라 열중했다. 딸아이 어렸을 때와 지금의 박물관과 지금은 참 많이 달랐다. 그냥 보기만 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곳곳에 흥미로운 테마가 가득한 곳이었다.

 

어린이 박물관에는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만큼의 놀잇감이 가득 있었다. 철기시대 대장간에 풀무불도 있어서 망치로 두드리며 대장장이가 된 듯 한참을 놀았다. 이조백자와 고려청자 빗살무늬 토기 등이 판위에 산산조각이 난 채 널 부러져 있었다. 손자의 발이 그곳에서 딱 멈춰버렸다. 평소에 퍼즐놀이를 좋아하니 자기 적성에 딱 맞는 코너 였던 것이다. 아이는 얼른 고려청자앞에 서서 이것 저것 맞추어 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백자 맞춰요. 할머니도 해야죠."

"그래, 한번 해볼까?"

"내기해요. 누가 먼저 맞추나."

"응 내가 이길껴!"

 

나는 조각난 이조백자를 좀 맞춰 보려고 애를 썼다. 정말 어떤 것이 맞는 조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안 맞춰져서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손자는 집중해서 열심히 하더니 어느새 고려청자를 뚝딱 완성하는 것이 아닌가!

 

"다 했어요. 할머니 내가 완성했어요."

"우와! 벌써 다 했어? 정말이네!

"에게, 아직도 하나도 못했네. 이거 내가 할께요."

 

아이는 만족스러운 듯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다섯 명의 가족이 빙 둘러서서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고 있었다. 엄마 아빠와 세명의 아이들은 조각을 이리 저리 맞춰보다가 잘 안되니까 짜증을 내며 그냥 가버렸다. 옆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손자는 얼른 뛰어가더니 어느새 뚝딱 만들어 버렸다. 나한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인데 손자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놀이가 되니 그것참 신기한 일이었다.

 

빗살무늬 토기 조립하기
빗살무늬 토기 조립하기
토기안에 얼굴도 넣어보고..
토기안에 얼굴도 넣어보고..

 

숙소로 돌아오자 손자는 침대위에 무엇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뭐 만들어?"

"이거 무덤이에요. 옛날 무덤만드는 거예요."

"천마총 만드는 거야?"

", 여기 안에 보물이 가득 있어요.“

 

아이는 쿠션을 쌓고 베개를 켜켜이 받쳐서 그 위에 이불을 덮고 무덤모양을 만들더니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할머니도 들어와도 돼요."

"그 안에 보물 많이 있어?"

"여기 임금님 왕관도 있고 금도 잔뜩 있어요."

 

손자는 다리만 쏙 내밀고 이불속에 한참을 누워 있었다. 아마 오늘 박물관에서 유물들을 구경하자 전에 다녀왔던 경주가 생각났던 모양이었다. 밤늦게까지 무덤을 만들었다 부쉈다 하더니 피곤했는지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잠이 들었다.

 

요즘 손자는 돌을 보면 돌칼이나 돌도끼를 만들 궁리를 한다. 또 찰흙으로 토기를 만들어 빗살무늬를 찍느라 야단법석이다. 다 만든 토기에다 음식물을 저장한다고 간식거리를 집어 넣어 보관하기도 한다. 견학을 하고 오면 무심히 있다가도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어느 순간 현실에서 재현해 내는 아이의 기억력이 참 놀랍다.

 

아이가 만든 빗살무늬 토기에 보관 중인 '밤톨'
아이가 만든 빗살무늬 토기에 보관 중인 '밤톨'
아이가 만든 돌도끼
아이가 만든 돌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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