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이방인-㊱정신적인 살인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은 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명상활동가)’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글: Jacob 김 선
Les gens qui tuaient leur mère mentalement étaient comme ceux qui tuaient leur père avec leurs mains.
정신적으로 어머니를 죽이는 사람은 자기의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를 등지는 것이었다.
검사는 뫼르소의 영혼을 들여다보았으나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다고 배심원들에게 말했다. 영혼을 들여다봤다는 검사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사실상 뫼르소에게 영혼 같은 것은 있지도 않고 인간다운 점도, 인간들의 마음을 지켜 주는 도덕적 원리도 찾아볼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영혼이 없으니 인간다움도 도덕적 원리도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될 것이다. 검사는 그렇다고 해서 뫼르소를 비난할 수도 없을 것이며 그가 얻을 수 없는 것이 그에게 결여되어 있다고 해서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관여가 불가능한 영역임을 인정하면서도 이 법정에 있어서는 관용이라는 소극적 덕목은 그보다 더 어렵기는 하지만 더 고귀한 덕목 즉 정의라는 덕목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관용으로 받아들인 뫼르소의 결핍은 정의라는 영역에서는 불관용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뫼르소에게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심리적 공허가 사회 전체를 삼켜 버릴 수도 있는 구렁텅이가 될 경우에는 더욱이 그러하다고 말했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심리적 공허가 뫼르소에 대해서는 특별한 의미로 해석되어 사회악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것을 확증하려고 검사가 엄마에 대한 뫼르소의 태도 이야기를 꺼낸다. 심리 중에 한 말을 그는 다시 되풀이했다. 배심원들에게 자신의 논리를 각인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뫼르소가 저지른 범죄를 이야기할 때보다 훨씬 더 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찌나 길던지 뫼르소는 결국은 그날 아침의 더위밖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적어도 차석 검사가 말을 멈출 때까지는 그랬다.
검사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어 다시 매우 낮지만 매우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이 법정은 내일 가장 가증스런 범죄,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을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잔학한 범죄 앞에서는 상상력조차 뒷걸음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위해 먼저 분위기를 잡아가는 검사의 퍼포먼스가 탁월하다. 그는 인간 사회의 율법이 가차 없는 처단을 내리기를 감히 기대해 마지않는 것이었다.
더욱 분위기를 고조할 요량으로 그 범행이 불러일으키는 전율감은 뫼르소의 무감각함 앞에서 느끼는 전율감보다는 차라리 덜할 정도라는 것을 자신은 서슴지 않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본래의 뫼르소의 모습은 검사에게는 가차없는 처단감인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어머니를 죽이는 사람은 자기의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를 등지는 것이었다. 어쨌든 전자는 후자의 행위를 준비하는 것이며 말하자면 그러한 행위를 예고하고 정당화한다는 것이었다. 정신적 살인이 실제 살인의 정당화 논거로 제시되는 순간이다.
러시아의 이콘화가 류블로프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로 러시아 정교회의 교리를 표현한 것처럼 검사는 뫼르소의 살인죄 성립요건을 무감각한 주체, 정신적 살인행위, 자신이 해석한 고의로 제시하고 있는 듯 하다.
검사는 피고석에 앉아 있는 뫼르소에게 살인죄에 대해서도 유죄라고 말한다 해도 자신의 생각이 과장되다고 배심원들은 여기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덧붙였다. 검사는 번들거리는 얼굴을 닦으며 끝으로 그는 자신의 의무는 괴로운 것이지만 단호히 그것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의무에 대해 괴로워한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소임을 사명감으로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뫼르소는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율법을 무시하고 있으므로 그 사회와는 아무 관계도 없으며 인간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기본적인 반응도 보일 줄 모르는 사람이므로 인정에 호소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는 뫼르소 본연의 모습을 자신의 생각대로 재단하면서 결론을 강요하고 있다. 뫼르소의 목을 요구하며 사형을 요구해도 자신의 마음은 가볍다고 말하면서 짧은 재임 기간 중 여러 번 사형을 요구한 일이 있지만 이 괴로운 의무가 신성한 지상명령이라고 결론짓고 이에 따른는 의식에 검사는 도취되어 있다.
검사가 자리에 앉자 상당히 오랜 침묵이 흘렀다. 뫼르소는 더위와 놀라움으로 어리둥절해졌다. 재판장이 잔기침을 하고 나서 아주 낮은 목소리로 뫼르소에게 덧붙여 할 말은 없느냐는 물음에 이야기하고 싶었으므로 일어서서 그저 생각나는 대로 아랍인을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모처럼 뫼르소는 자신을 드러냈지만 재판장은 그건 하나의 의사표시라고 대답하고 지금까지 자기는 뫼르소의 변호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변호사의 말을 듣기 전에 뫼르소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동기를 분명하게 말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재판장도 뫼르소의 입을 통해 그를 확실히 단죄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것도 모르고 뫼르소는 빨리 뒤죽박죽이 된 말로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말인 줄 알면서도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장내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 웃음은 법정이 원하는 결론을 확인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뫼르소의 변호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뒤이어 즉시 그에게 발언권이 주어졌으나 그는 시간도 늦었고 자기의 진술은 여러 시간을 요하는 것이므로 오후로 미루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정은 이에 동의했다. 모두가 뫼르소의 사형에 동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