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전주에서 사는 아들이 아들을 낳았다. 나이 쉰셋에 할아버지가 되고 보니 여간 쑥스럽지가 않다. 진작부터 아들이 이름을 지어 달라 청하였기에 손자 이름을 짓느라 고심을 많이 했다. 이름을 짓는 데에는 고려해야 할 게 많았다. 이름자에서 아버지와 숙부님, 나와 동생들, 아들의 이름자가 포함된 글자는 일단 배제하였다. 그다음 부를 때 걸림이 없는 글자, 길한 의미를 지닌 글자를 추리고 추려 여러 날 장고 끝에 손자 이름을 결정하였다. 아들 내외와 사돈 댁에서도 다 흡족해 하였으니 할아버지로서의 첫 역할을 무난히 치른 셈이다.
식물의 이름에는 재미있는 게 많다. 꽃이나 잎, 또는 줄기의 특성을 드러내는 게 있는가 하면 생태적 성상을 고스란히 묘사한 것들도 있다. ‘금낭화’, ‘광대나물’, ‘도깨비가지’, ‘까치수염’, ‘미선나무’, ‘쥐꼬리망초’ 처럼 닮은 사물의 이름이 붙기도 하고 ‘노루오줌’, ‘생강나무’처럼 냄새 때문에 이름을 얻은 경우도 있다. ‘며느리배꼽’, ‘며느리밑씻개’, ‘개불알풀’처럼 다소 민망한 이름도 있다. 어떤 식물은 이름과 특징의 조화가 절묘하지만, 어떤 것들은 생뚱맞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번 회차에는 외양의 특성이 잘 드러난 이름을 얻은 ‘꽃마리’라는 식물을 소개하려고 이름 이야기로 말머리를 열었다.
꽃마리는 원산지가 우리나라로 알려진 지치과의 두해살이풀이다. 양지바른 곳에서 무리지어 서식하며 줄기는 대략 10~30cm 정도까지 식물 전체에 털이 많이 나 있다. 양 끝이 좁고 긴 타원형인 잎은 어긋나기로 달린다. 4~7월 사이에 피는 꽃은 지름이 2mm 내외로 아주 작다. 꽃부리는 다섯 개로 갈라졌으며 꽃빛은 연한 하늘색이다. 이른 봄 채취한 꽃마리의 어린순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 사촌격으로 줄기가 옆으로 뻗는 덩굴꽃마리, 꽃 크기가 꽃마리보다 큰 좀꽃마리와 잎겨드랑이에서 한 송이씩 피는 참꽃마리가 있다. 꽃줄기 끝에서 둥글게 말린 꽃들이 펴지면서 핀다 하여 ‘꽃마리’라는 이름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따뜻함과 푸름일 것이다. 이 계절에 피어나는 꽃과 나뭇잎의 연초록빛 물결은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황홀한 선물이자 축복이다. 굳이 멀리 갈 것 없이 집 주변의 야산이나 공원에만 나가도 식물이 내뿜는 싱그러움을 만끽할 수 있다. 식물과 만나는 시간을 가장 행복하게 여기는 내게 올 봄은 주말과 휴일이 아주 괴로운 날이 되고 말았다. 주말이면 가족을 만나려고 집에 갔다가 휴일 오후에 다시 내려오다 보니 정작 쉬는 날엔 식물을 대하기가 어려워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터에서 조석으로 풀꽃을 만나며 그들이 안겨주는 에너지로 절간 같은 적소에서의 고독을 달래고 있다.
글/사진 : 정충화(시인, 생태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