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따라 찾아드는 책방의 완벽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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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따라 찾아드는 책방의 완벽한 하루
  • 김보름
  • 승인 2021.06.11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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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59) 연꽃빌라의 사계 - 김보름 / 연꽃빌라 책방지기

 

정남향에 위치한 연꽃빌라는 추운 겨울에도 히터를 틀지 않아도 낮 시간 내내 따뜻합니다. 의자에 앉아 가게 앞의 버석버석 마른 풀의 빛바랜 노랑과 잎을 다 떨어트린 나무의 색을 감상하며 차를 마시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딸랑”하는 문 종소리와 함께 두꺼운 코트에 목도리를 칭칭 감은 손님들이 “따뜻하다”라고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들어옵니다.

김이 폴폴 나는 따끈한 커피로 몸을 녹이고, 실내에서는 조금 무겁게 여겨지는 외투를 벗어놓아 한결 가벼워진 어깨, 그렇게 노곤노곤해진 상태로 독서를 하거나, 사부작사부작 각자의 할 일을 하는 자기만의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 사적인 시간을 위해 매서운 추위를 뚫고, 사람들은 연꽃빌라에 찾아옵니다.

 

연꽃빌라에서 바라보는 눈 내린 풍경

 

겨울이 지나 찾아온 봄의 연꽃빌라는 온통 연두빛입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8차선의 큰 길 건너에는 벚나무들이 줄서있어서 굳이 멀리 꽃놀이 명소를 찾아가지 않아도 되지요. 봄바람이 불어 꽃잎이 떨어져 꽃비가 내릴 때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계절에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손님을 자주 목격합니다. 물론 손님의 시선을 좇아 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저희도 멍을 따고는 합니다.

여름의 연꽃빌라는 진한 초록 속에 있어요. 가게 앞이며 뒤며 가득한 나무들도 여름에 가장 크고 진한 초록의 이파리를 갖고, 햇빛을 많이 쬐는 계절이라 그런 건지 방문하는 손님들도 활력이 넘치고, 식물처럼 싱그러워요. 무더위에 지쳤을 때 벌컥벌컥 마시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는 늘 좋지만, 여름에만 마실 수 있는 연꽃빌라의 금귤차, 청귤차, 땡모반, 무화과 주스는 정말 인기가 많습니다. 시원한 공간에서 알록달록한 색의 청량감 있는 음료를 마시며 여름이면 특히 재미있게 느껴지는 추리소설을 집중하며 읽는 시간은 한여름의 더위를 잠깐이나마 잊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연꽃빌라의 인기 음료 땡모반

 

가을의 연꽃빌라는 그저 좋습니다. 따뜻한 볕이 그대로 눈에 보입니다. 곡식을 익게 하는 가을볕은 아직 여름처럼 뜨겁지만, 앞문과 뒷문을 활짝 열어두어 부는 선선한 바람에 천정에 걸어 둔 나무풍경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소리가 귀에 듣기 좋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가을은 그 소리를 들으며 느릿느릿 시를 읽거나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둔 매거진을 읽기에 딱 좋은 계절입니다.

이렇게 연꽃빌라의 사계절은 어느 한 계절을 고를 수 없을 만큼 모두 적당하게 완벽합니다. 그렇기에 오래오래 이 공간에서의 즐거운 일상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연꽃빌라를 찾아주는 다정한 이에게 계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가을의 연꽃빌라

 

- 공간과 손님은 닮는다

‘손님들은 공간을 닮는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평화로운 연꽃빌라를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느긋하고, 차분한 성격을 가진 듯합니다. 마중 인사와 배웅 인사, 그리고 주문을 하고 받으며 나누는 잠깐의 대화에서 우리 공간이 갖는 느낌과 같은 결의 인상을 손님에게 받습니다. 지기와 손님은 책 취향도 비슷한 지 <지기가 고른 책들>이라는 작은 코너에 진열한 책들은 신기하게도 금방 주인을 찾아갑니다. 이런 순간의 기쁨들이 모여 책을 고르고, 감상을 적어두는 원동력이 되지요. 우리는 특히 책을 고를 때 볼륨은 작지만 덮었을 때 가슴에 큰 울림을 주고, 긴 여운을 남기는 책을 좋아합니다. 연꽃빌라 역시 작지만 큰 울림을 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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