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업무 때문에 1박 2일 일정으로 안면도엘 다녀왔다. 두어 번 다녀온 곳이기는 하지만, 태안반도 일대는 풍광이 수려해 전날 밤 잠을 설쳐가며 소풍 가는 기분으로 출장길에 올랐다. 여행을 할 때마다 겪는 감정이지만, 그곳에서는 또 어떤 식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콩닥거린다.
둘째 날 새벽 부터 산자락을 다 잡아먹어 버린 해무가 도무지 걷힐 기미가 보이질 않아 서둘러 일정을 마친 뒤 소나무 구경이나 하려고 일부러 안면읍까지 6km 정도를 걸어나왔다. 도로변에 즐비하게 도열해 하늘로 치솟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의 위용은 대단했다. 도로변에 핀 갖가지 꽃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길가에 붙은 어느 펜션 대문 앞에 화단이 잘 꾸며져 있었는데 거기 보니 개양귀비가 무더기로 피어 붉은 꽃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개양귀비는 유럽 원산의 두해살이풀이다. 길고 뾰족한 잎은 마주나기로 달리며 가장자리에 굵은 톱니가 있다. 1m에 조금 못 미치는 줄기 전체에 털이 나 있다. 5월에 피는 꽃은 줄기 끝에서 한 송이씩 달린다. 여러 장의 꽃잎이 서로 겹쳐 둥근 형태를 이루며 만개하면 하늘을 향해 넓은 꽃부리를 펼친다. 꽃 빛은 붉은색이 주를 이루나 원예종이 많아 주황색이나 흰색 꽃도 있다. 서양에서는 개양귀비 꽃을 전사자를 추모할 때 쓴다고 한다. 초나라 장수 항우의 애첩인 우미인의 무덤에 이 꽃이 피었다 해서 중국에서는 개양귀비를 ‘우미인초(虞美人草)’라고 부른다고 전해진다.
마약의 원료를 채취하는 양귀비의 열매는 가운데가 볼록한 타원형인데 개양귀비의 열매는 좀 더 길고 날씬하다. 양귀비 같은 마약 성분은 없으며 서양에서는 줄기는 채소로, 꽃잎은 술을 담는 데 쓴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개양귀비를 복통, 설사 치료제로 쓴다고 알려졌다. 개양귀비는 공원 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꽃이 아름다워 일반 가정에서도 최근 많이 심는다.
가끔 양귀비를 불법으로 재배하다가 적발돼 입건되는 사례가 뉴스에 보도되곤 한다. 적발되는 사람 대부분이 촌로들이던데 아름다운 꽃을 보겠다는 순수한 의도라 하더라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처벌받게 되니 주의해야겠다. 굳이 꽃을 완상하고 싶다면 합법적으로 심을 수 있는 개양귀비를 심고 가꾸면 좋을 것이다.
훗날 언젠가 내 정원을 갖게 된다면 심고 싶은 식물 명단에 개양귀비도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안산의 옛 수인선 철로변과 서울 올림픽공원 등에 올해 개양귀비 꽃밭을 대규모로 조성하였다던데 지금쯤은 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글/사진 : 정충화(시인, 생태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