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서상희 / 꿈공작소 모모 책방지기
“책방 같은 가게 하면 가장 큰 어려움이 뭔 줄 알아?”
“뭐...... 수익성이겠죠”
한 창업 선배님 말씀에 바로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탓이랄까. 책방지기를 꿈꾸는 사람도 은근 많고요. 책방은 퍽이나 낭만적인 공간으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창업을 반대하는 분들은 다들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까요.
그건 바로 ‘기다림’이라고.
그 막연함이 지치게 한다고 말씀하더라고요. 성향마다 가게마다 다 다르겠지만 유독 이 말이 남는 건 작년 7월 8일 코로나19 상황 속 시작한 책방창업이라 더 그랬을 겁니다. ‘모이자 모여라 꿈공작소’를 외치며 함께 하는 소모임 활동의 구심점이 되고자 했지만, 그 또한 코로나19 상황이 격상되면서 모임 자체가 어려워졌으니까요. 실제로 강화 성공회 성당 가는 길, 골목 안 작은 동네 책방 꿈공작소 모모는 입구도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책방지기 멘탈 보호차원에서 예방주사처럼 시작한 일이 ‘채움’ 활동입니다. ‘비움’의 시간을 채우며 책과 소통하는 방법인 필사하기, 책리뷰 올리기, 모닝독서 이렇게 셋.
우선 필사하기. 책 그대로 ‘필사의 힘’을 실감하며 지난 1년 동안 4권의 책을 필사했어요.첫 번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8월 22일 시작해서 11월 3일까지 70일 여정으로 끝냈어요. 다음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까뮈의 ‘이방인’, 그리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완성했습니다. 대략 두어달 정도 걸리더라고요. 주변을 보면 성경 필사부터 필사의 고수들이 꽤 계신데요. 저는 필사가 처음이다 보니 아무래도 끝까지 지치지 않고 쓰기에는 책과 공책이 하나로 되어있는 책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하루 1장 필사를 강조하기도 하는데요. 전 아무래도 매일 쓰는 것은 힘들더라고요. 책방일이 들쭉날쭉이라 대략 횟수를 정해두고 시작했어요. 필사는 첫 번째 한 권을 해내는 게 관건인 듯 보여요. 한번 완성이라는 자족감에 부풀어보면 다음은 수월하게 자발적으로 손이 가거든요.
필사의 장점이라면 ‘문장력을 키운다’, ‘자존감을 높인다’, ‘마음을 다스린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 작품의 여운이 깊어지는게 제일 좋아요. 어떤 책이든 최소 두 달 동안 마음에 품게 되니까요. 눈으로 읽는 것보다 한결 느린 필사의 속도가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되뇌이며 음미하게 해요. 백문이 불여일행. 직접 해보니 더 좋아서 책방 한 곳 손님을 위한 릴레이 시 필사를 하고 있어요. 얼마 전부터 ‘어린 왕자’ 소설 필사도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저는 다섯 번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시작했어요. 사실 처음엔 선택을 망설인 책인데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키운다는 말에, 관계 속 자신의 태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한번 해볼만 하다는 말에 혹해서 시작했어요.
실제로 필사하며 선입견이 많이 깨진 책은 ‘이방인’인데요. 그런 유명한 책들은 너무 어릴 때 읽기도 했고, 사전 지식으로 얻어들은 게 많아서 오히려 잘못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다시 필사하며 천천히 읽는 ‘이방인’은 곱씹으며 공감할 여지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채움 두 번째 활동은 ‘낙비의 책수다’라고 명명한 책 리뷰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 책을 읽고 저만의 감상을 간단히 올리는 일인데요. 매번 별그램 양에 맞춰 줄이는 게 일인 만큼 길지 않은 분량으로 쓰고 있어요. 그래서 본격적인 작가나 상황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전문적 리뷰는 아닙니다. 편하게 친구와 책 이야기를 수다로 풀 듯이 쓰는 겁니다. ‘낙비’란 무더운 한 여름날 시원하게 내리는 소낙비 같다는 별칭에서 온 것인데요. 책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고 여름날 소낙비처럼 시원하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을 담으며 쓰고 있어요. 내용이 궁금해지고, 읽고 싶다면 금상첨화겠지요.
그리고 소소한 채움 마지막은 ‘모닝독서'인데요. 모닝독서는 평소 잘 읽혀지지 않는 책으로 정해서 하고 있어요. 해보니 사실 가장 실천이 어렵긴 해요. 아침은 왜 이리 바쁜 건지. 그래도 목표를 정해두면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끝내긴 하니까요. 잘 안 읽히는 책들, 정독해야 할 책들을 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끝내고 지금은 ‘시간을 찾아서’ 시리즈 도전하고 있어요.
어느 선배 책방지기분이 하신 말씀, 책이 좋아 책방을 열었는데 책을 읽을 시간이 더 없다고요. 제법 충격적이었던 말씀이어서 책방을 시작하며 나름 다짐을 했답니다. 책과의 거리를 좁히는 책방지기의 소명을 지키며 살겠노라고. 시간은 늘 없는 것 같아요. 시간은 나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
누구라도 책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나를 어루만지는 시간, 즐거운 ‘채움’으로
필사부터 함께 해 보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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