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검단사거리역 일대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의 문턱을 넘어 온 기분이다. 초록의 벼가 조금씩 노랗게 변신하는 시즌으로, 곧 추석 명절이다. 한편 정부는 또다시 대면을 제한하기 위해 분주하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만남을 제지당한 적이 없는데 요즘은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사춘기 학창 시절 형하고 대판 싸운 적이 있다. 지금까지도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게 싸운 것인데, 이후 형과의 대면은 어색해졌다. 상황이 다르긴 해도 지금은 그보다 더한 정색의 국면이 아닐 수 없다. 어서 빨리 코로나와의 긴 대면을 마치고 싶을 따름이다.
서구에 거주하면서 지역에 정체 모를 공간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구는 땅덩어리가 크다. 남북을 가르는 수로가 있고, 수도권쓰레기매립장까지 갖춘 넓은 구역이다. 섬도 있고 마천루 스카이라인은 점점 높게 늘어나고 있다. 개발 광풍은 이전의 나대지나 소규모 공장지대처럼 조용히 묻혀 지내던 공간을 그냥 두지 않고 파헤쳐 놓았다. 그 공간의 중심으로 검단이 거론되었고 현재 검단사거리역은 많은 사람들의 통행과 함께 ‘×’자 교차로를 따라 확장되고 있다.
검단사거리역 인근에는 서구 검단출장사무소가 있다. 원래 검단면사무소 시설인데 지금도 이용되는 곳이다. 이전엔 검단이 김포군에 속해 있었다. 광역시로 인해 1995년 서구로 편입되면서 김포와의 이상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검단사거리역은 인천지하철 2호선 라인의 북쪽 거의 끝 역인데 2호선 라인 이용률이 두 번째로 많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바로 위 김포시와 인천을 오가는 인파가 많다는 것이다. 평소 우리가 모르는 외진 곳에서 검단사거리역은 인천과 김포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고 있던 중요한 길목이었다.
면 소재지 분위기답게 주변엔 오래된 상점과 아파트, 골목이 많다. 한창 영광을 누렸을 대형 유흥시설만이 폐업의 분위기지만 복작복작한 모습은 여느 인천 시가지 모습과 다르지 않다. 역 출입구에서는 어르신들이 노상에서 농산물을 팔고 계셨다. 패스트푸드점 창 너머로 유독 병・의원 간판이 많은 걸 보면서 인근 공업 노동자들의 검진사례가 많은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내국인뿐만이 아닌 외국인들의 거리 활보가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많기도 했다.
오래되어 간판 색이 바랜 김밥의 천국에서 김밥 두 줄을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 팔랑팔랑 흔들며 골목을 걸어 올라갔다. 목화아파트 내 어르신들은 단지 끝자락에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는데, 집값이니 개발이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시는 걸 보니 단지의 미래가 조금 염려스럽게 느껴졌다. 이름도 친근한 장미아파트가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고 더는 오르기 힘든 높이에도 빌라가 오래된 모습으로 보초를 서고 있었다.
지금이야 지하철도 있고 자동차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시절에도 번성했을 그 비밀스러운 재미는 무엇이었을까? 금강다방, 촛불다방, 경다방, 아람다방에서는 어떤 불그스레한 시간이 그려졌을까? 더 가까이 보고 걷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1번 버스가 안내자가 될 수도 있겠다. 아직도 남아 있는 KTF 광고판 ‘016 Na’ 슬로건이 문득 이런 기대를 대신하는 것 같다. 「세상을 다 가져라!」라며. 코로나에 빼앗기지 않을 원래 우리 세상, 중심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