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과 함께한 외국인 묘지... 지금은 인천가족공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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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과 함께한 외국인 묘지... 지금은 인천가족공원에
  • 허회숙 시민기자
  • 승인 2021.11.16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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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기획]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생각을 일깨우는 곳
인천가족공원 내 외국인 묘지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온로 61 인천가족공원. 지난 11월10일 오전 인천가족공원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외국인 묘지를 찾았다.

 

울긋불긋 온 산을 붉게 물들인 단풍이 아직 가을의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 하는 가운데 한차례 차가운 바람이 몰려와 우수수 낙엽을 날려버리며 초 겨울 문턱임을 일깨운다.

 

130여년에 이르는 인천 외국인 묘지의 이력에 곡절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당초 인천의 외국인 묘지는 1914년 3월30일 북성동 1가 1번지에 자리하고 있었다.(이 일대 서양인 매장은 1887년 부터다) 1883년 인천항 개항과 함께 서양인들이 모여들었는데, 이들 중 먼 이국 땅인 개항도시 인천에서 영면했던 이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1950년 6.25 전쟁으로 북성동 묘역 일부가 파손되었다가 1965년 5월25일 인천 연수구 청학동 53번지로 이전 되었다. 이후 2017년 5월29일에 다시 이곳 인천가족공원내의 외국인 묘역으로 이전 복원되어 영원한 안식처가 됐다. 

인천가족공원에는 개항기 내동에 있다가 강점기 도원동으로, 다시 만수동으로(1959년) 이전했던 중국인 묘지(1981년 인천가족공원으로 이전)도 있으며, 1902년 율목동에 조성됐다가 1922년 숭의동 공설운동장 야구장 자리로 이전했던 일본인 묘지의 묘비도 이전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비스듬하게 산 쪽을 향해 몇 줄로 이어져 늘어선 묘비들이 늦가을 오전의 밝은 햇살 아래 고즈넉하다.

 

맨 왼쪽은 개항기 인천시 중구 개항장을 무대로 활동했던 미국 상인 월터 타운센트의 묘다.

개항기 중구 송학동에 있던 타운센트 상회는 성냥, 축음기, 전화기, 시계 등 서구의 신식물품들을 선보여 조선인들을 놀라게 했다.

 

두번 째 둥근 켈트 십자가는 미국 선교사 일라이 랜디스(33세 사망) 묘다. 인천에 성 누가병원을 설립, 무료로 조선인들을 치료하고 고아원도 만들고 한국 동요를 정리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그 옆으로 미국인들의 묘가 있고, 몇명의 독일인들이 묻혀 있다. 독일 함부르크 출신 무역상도 있고, 독일인 가족 묘도 있다. 

  

영국인들도 미국이나 독일인 만큼 많다. 영국인 가족묘도 있고, 오스트렐리아인의 묘도 있다.

그 당시 열강의 각축장이 된 조선의 모습을 이 곳 외국인 묘지에서 다시 보는 듯하여 씁쓸하다.   

 

성명, 생몰연대, 직업, 국적 등이 기록된 묘비가 주욱 늘어선 가운데 이름만 적혀 있거나 그나마 이름조차 없는 묘비도 상당히 많다.

그중에는 부부 묘, 가족 묘도 있고 형제의 묘, 어린 애의 묘도 보인다.

멀리 스페인, 터키, 스코트랜드, 영국, 미국,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오스트렐리아 에서 온 사람들도 있고 중국인, 일본인도 꽤 있다.

이들은 모두 무슨 꿈을 쫒아 먼곳 가까운 곳에서 조선의 제물포까지 온 것일까?​

외국인 묘지 입구에 1878년 가족과 함께 돈을 벌러 입국한 오쿠가와 가타로와 동생 요시카즈가 묻혀있다. 이들 형제는 1884년 갑신정변의 실패 후 죽었다.

문득 150여년전 격동의 근대화 시기, 구한말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스친다.

국적도 다르고 사연도 다르게 이 땅에 들어와 길지 않은 세월을 살다가 한줌 흙으로 돌아간 수많은 이방인들의 묘석을 읽으며 세월의 덧없음과 함께 그들의 족적이 작지만 큰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음도 깨닫는다.

신부, 의사, 무역상, 군인, 통역관, 교육자, 세관원, 해군 나팔수에 그들의 아내와 어린 아이들까지 사연도 삶의 방식도 죽음도 다양하다.

 

멕시코에서는 11월1일을 '죽은자의 날'이라 하여 해골가면을 쓴 사람들이 시가 행진을 하며 축제를 즐긴다. 이날은 저승문이 열려 저승의 영혼들이 이승으로 건너와 함께 어울려 즐긴다고 믿는다. 무덤에 촛불을 켜고 술을 붓고 꽃을 꽂아 죽은자와 산자가 신나게 한판 축제를 벌인다. 미국, 영국의 핼러윈도 이러한 축제에 다름 아니다.

이런 축제들은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득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영면을 취하고 있는 이 곳의 영혼들이 21세기 한국의 인천 땅에 잠시 놀러나오면 얼마나 놀랍고 대견스러워 할까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요 근래에는 차이나타운과 함께 점차 늘어나는 중국인들이 따로 웅장한 파루를 짓고 추모 벽을 설치하며 그 규모를 넓혀가고 있다.

 

 

지난 2008년부터 매년 11월 11일 11시(한국시간)에는 전 세계의 6.25참전 용사들과 관계자들이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을 향하여 거수경례를 하고 1분간 묵념한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인 그날을 기념하여 '부산을 향하여'라는 추모 행사를 하는 것이다.

우리도 인천을 제2의 고향으로 여겨 이곳에 잠들어있는 수많은 영령을 위한 추모의 날 행사를 마련해 보아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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