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부평구 일신동 일대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초미세먼지가 강해 며칠 동안 시야 확보가 무척 어려웠다. 목도 컬컬하고 기침도 조금 하며 견딘 것 같다. ‘블러드문’ 월식이 있었다. 붉은 달빛이 마치 가을 단풍에 함께 물드는 것은 아닌가 한다. 연말이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새로운 해를 계획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작업에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시기인 것 같다. 바쁠 때가 좋은 시기라고는 하는데 과연 나는 잘 지내고 있는지 종종 자문하게 된다. 찬바람이 거세지기 전의 노란 뜰, 늦가을 따라 잠시 일신동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부평구의 우측 아래가 일신동이다. 법정동 일신동과 구산동이 하나의 행정동으로 묶여 일신동을 구성하고 있다. 해방 후 이 일대가 모두 부개동이었지만 40여 년 전 분동되었다. 인근 부천 송내와 인접했지만 조금 외진 곳이기도 하다. 송내IC, 수도권 제1고속도로가 가로지르고 산업, 안전, 복지와 연관된 기관이 밀집되어 있다. 전체 면적의 절반이 군부대로 구성되어 알 수 없는 긴장감도 흐른다. 부일종합시장과 일신종합시장이 중앙에 자리한다. 같은 생활권역이라 종종 ‘부개’와 ‘일신’이 번갈아 사용된다.
낯선 이가 와서일까? 도착하여 조금 걷기도 전에 어디선가 까마귀 한 마리가 전깃줄에 앉아 나를 내려 본다. 일신주공아파트의 울타리목은 모두 같은 높이로 이발을 해놓았다. 대롱대롱 주황색 감이 지나가는 새를 찾고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모여 어수선한 시대를 볶고 계셨다. 골목에는 사람이 뜸하고 중앙의 시장에 왕래가 잦다. 모두 거쳐 지나가는 것으로 보아 이 동네 중요한 쇼핑타운, 만남의 장소로 보였다.
단독주택이 많이 있는 구역이다. 한 차례 재개발 바람도 다녀간 것도 같고 군부대 통합에 따른 주민반발 움직임도 현수막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여러 기관이 있지만 대체로 선호하는 기관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가뜩이나 군부대가 차지하는 부지가 일신동의 절반이 넘으니 규제가 많아지는 걸 탐탁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일신초 옆 풍림아파트 외벽에서 한 분이 야외 스케치를 나온 것처럼 여유롭게 진지하게 벽화를 그리고 계셨다. 업체가 아닌 홀로 하고 계셨다. 거주민일 것이다.
시장 주변으로 주택들이 즐비하고 그중 한 집에서 가족들이 나와 감따기 행사 중이었다. 아버지는 대문 위에 올라가서 감나무를 털고 골목에서 딸들이 감을 받는다. 풍요를 거둬들이는 풍경이 서산 너머로 해지는 것과 겹치면서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떡집으로 이어졌다. 이 좁은 구역에서 정말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매번 이곳저곳을 누벼 보아도 놀라는 부분이다. 시장은 마을의 에너지를 대신하는 것 같아 되도록 들러보는 장소이다. 일신시장은 아직 현대화시설이 구비되지 않아 좀 더 시장답다. 몇몇은 옛 간판 아래 다른 업종이다. 핫바 간판 집은 의류상점이다. 김밥이라고 적힌 간판 집은 민물고기 판매점이고 구구치킨 집은 상호와 다르게 건어물집이다. 좁은 상가길은 다시 골목길로 이어지고 골목은 다시 주택의 대문으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벌집 같은 구역이지만 질서정연한 삶의 움직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몇 개의 목욕탕 벽돌 굴뚝을 보면서 웅장했던 시절과 늠름한 지금의 시대를 함께 보듬고 있다는 생각에 말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천 어딜 가나 음과 양이 존재한다. 주택의 이름이나 마을의 지명에도 이런 의도가 남아 있다. 부평을 연다는 부개동과 매일매일 새로워진다는 일신동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늘 진보하고자 한다. 삶을 찌우려고 한다. 곧 겨울이다. 골목 끝에 우뚝 솟아 있는 교회 첨탑을 보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었음을 기도한다. 변방의 자리에서 볕 쪼개가며 사는 일신동이지만 새로워질 날이 많을 것 같다. 저녁 어스름에 벌겋게 바뀌는 빨간 벽돌벽을 보면서 저녁의 온도가 뜨거우리라 생각한다. 한편 어느 에어컨 기자재 공장 야외에서 퇴근을 앞두고 배추를 내어와 씻는 직원(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을 보며 맛있는 겨울을 상상하며 흥분이 돈다. 내일, 내년은 새로울 것이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