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가 그려낸 삶의 역사, 장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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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어가 그려낸 삶의 역사, 장기동
  • 유광식
  • 승인 2022.07.18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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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람일기]
(84) 계양구 장기동 일대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3・1만세운동 기념탑 광장과 아이들, 2022ⓒ유광식
3・1만세운동 기념탑 광장과 아이들, 2022ⓒ유광식

 

여름날이지만 어느 찰나에 진짜 여름 같단 상황이 있다. 바깥에서는 땡볕과 끈적이는 땀 때문에 서두르며 걷지도 못한다. 덥다면 시원한 물가를 찾으면 해결될 일이지만 국내외적 영향으로 솟구친 소비자 물가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 같다. 살겠다고 올린 금액이 상대를 제압하는 무기가 되어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퍽퍽한 세상살이를 제대로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옥상에서 바다에서 다리 위에서 몸을 던져야만 했던 우리 주변의 사건에 숙연함만 떠오른다. 힘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서민들의 삶이 가혹한 법과 제도를 얼마나 버텨낼지 모르겠다.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사실을 익히고 즐기는 것이 어찌 좋지 않겠냐마는 윗집 입주자의 발망치 후렴구 소리에 온 신경을 쏟기에도 바쁜 일상이다.

 

장기동 골목 모습, 2022ⓒ유광식
장기동 골목 모습, 2022ⓒ유광식

 

빨간밥차와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건물, 2022ⓒ유광식
빨간밥차와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건물, 2022ⓒ유광식

 

인근의 계양구 장기동을 찾아가 보았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동 이름이 주는 뉘앙스가 다양하다. 본래 말은 장이 선다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전국 곳곳에 장이 서니 중복되는 장소가 꽤 있을 것 같다. 대구시에도 있고 근처 김포시에도 장기동이 있었다. 김포는 그리 멀지 않아 택시를 탄다면 구별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장기동은 인근 한강과 굴포천의 하류 지역으로, 잉어와 같은 물고기가 많이 서식했다. 그래서인지 잉어가 많이 거래된 모양이다. 장터 이름도 황어장이었다. 그래서인지 계양대교 아래에는 어마어마한 황어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바로 옆 경인운하에서 헤엄치다 걸려 잡힌 녀석은 아닌지 모르겠다.

 

장기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태극기, 2022ⓒ유광식
장기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태극기, 2022ⓒ유광식
계양대교 아래 대형 황어상, 2022ⓒ유광식
계양대교 아래 대형 황어상, 2022ⓒ유광식

 

황어장은 시장의 기능만 담당했던 곳이 아니었다. 과거 기미년 324일 장날에 만세운동이 일어나 인근 김포와 인천 등 강서지역의 만세운동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때 시위자였던 이은선이 일본 순사에 의해 순국하였기에 더더욱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다. 지사의 순국 장소라고 추정되는 곳에는 이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 2005년 광복절을 기념하여 옛 계양1동 우체국 건물 앞에 세워졌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황어장터 31만세운동 기념탑과 역사문화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탑 앞은 어른들 못지않게 아이들의 만남의 광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이 탑에서 먼 훗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아이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새로 지은 역사문화센터가 있었으나, 기존 전시관 건물과 조경 보수 때문인지 아직은 내부를 관람할 수 없었다. 역사문화센터는 기념전시관과 지역 커뮤니티 공간, 청소년 동아리방 등 구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고 하니 다음 달 광복절이 어느 해보다 더욱 뜻깊을 것 같다.

 

3・1만세운동 역사문화센터(2022.4.7. 개관), 2022ⓒ유광식
3・1만세운동 역사문화센터(2022.4.7. 개관), 2022ⓒ유광식
옛 계양1동 우체국 앞에 세운 이은선 지사 순국지 표석, 2022ⓒ유광식
옛 계양1동 우체국 앞에 세운 이은선 지사 순국지 표석, 2022ⓒ유광식

 

농경지와 계양대교의 웅장함을 따라 아라뱃길로 방향을 틀었다. 요새는 보행통로뿐만 아니라 자전거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는 것 같다. 높디높은 대교 옆으로는 비스듬히 오르막길이 있어 천천히 걸어본다. 오르다 보면 꽤 높아서 아찔하기도 하다. 계양대교 상단에 오르니 보행승강기를 이용해서 자전거와 함께 오르내리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다만 한 승강기 1기가 작동되지 않아(하강은 계단으로?) 유리 온실 같은 승강기탑 속의 계단을 뱅뱅 돌며 지상까지 걸어 내려가야 했다. 너무 무더운 날씨라서 승강기가 더위를 먹었을까? 시설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지상으로 내려오니 고장난 승강기 따위는 바로 잊혔다. 출입구로 나오니 귤현나루 광장에는 거대한 황어 한 마리가 포획을 아쉬워하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황어상 옆에는 아라천 디자인큐브라는 컨테이너형 복합문화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시설은 좋아 보이나 활용 면에서 어떨지 궁금해졌다. 이 일대의 활성화를 위한 관계 기관의 노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계양대교에서 바라본 귤현나루 일대, 2022ⓒ유광식
계양대교에서 바라본 귤현나루 일대, 2022ⓒ유광식
아라천 디자인큐브 복합문화센터, 2022ⓒ유광식
아라천 디자인큐브 복합문화센터, 2022ⓒ유광식

 

귤현나루를 지나는 자전거 행렬이 있고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챙겨 온 간식을 먹는 이도 있고 라디오 노래를 틀어놓거나 돗자리에서 꿀잠을 청하는 사람 등 꽤 많은 시민들이 쾌적한 거리를 유지하며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계양대교 하부에는 숨겨진 보행통로가 있다. 흔들다리 마냥 차량의 움직임에 따라 조금은 출렁거리며 스릴을 느낄 수 있었던 보행통로에서 멀리 장기동의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대신 자동차 소음은 감내해야 한다. 계양대교는 귤현동과 장기동, 검단신도시를 연결해 주는 북부권의 중요한 연결다리이다.

 

계양대교 보행통로에서 바라본 장기동 방향, 2022ⓒ유광식
계양대교 보행통로에서 바라본 장기동 방향, 2022ⓒ유광식
계양대교 보행통로에서 바라본 귤현동 방향, 2022ⓒ유광식
계양대교 보행통로에서 바라본 귤현동 방향, 2022ⓒ유광식

 

장기동은 인천의 북동쪽 하천 하류 구역인지라 물이 풍부하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살고 농업이 발달하며 시장이 서고 다양한 교류가 많았을 것이다. 인천 지역의 중요한 길목인 셈이다. 태극기가 게양된 장기동 골목에 서서 지난 역사를 보듬고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조금씩 거주의 의미가 부푸는 걸 보면 물 건너 계양산의 키가 그렇게 커진 건 아닐까?

 

계양대교를 오르며(중간에 계양역과 우측으로 계양산이 보인다), 2022ⓒ김주혜
계양대교를 오르며(중간에 계양역과 우측으로 계양산이 보인다), 2022ⓒ김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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