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김경수 기자 - 문화기자가 말하는 인천 문화예술계 '핫 이슈'(상) / 김경은 작가 대담·집필
시작하는 말
김경수 기자(59)는 인천일보와 인천신문에 재직하며 문화부에서 20여 년간 취재와 데스크를 담당했다. 그는 1988년 인천일보에 입사해 2006년 인천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시 인천일보로 복귀했으며, 이후 2011년 부터 지난해까지 미추홀구청 홍보팀장으로 근무했다. 인천지역 언론에서 2010년 7월까지 문화 전문기자로 인천 문화예술계 한가운데 있었으며 인천문화재단 설립 당시 추진위원회와 이사추천위원회 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치열하게 이슈와 인물을 취재해온 그 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11월 11일 오후 한국근대문학관 문학쉼터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인천문화의 전반을 취재하며 쌓아온 많은 경험들을 풀어 사안별로 하나하나 정리해 인터뷰에 임했다. 기자의 회상이라 비판과 논쟁 중심으로 흐를 것을 염려하면서도 인천의 문화예술계를 오랫동안 겪은 사람으로서 그는 기자답게 팩트체크를 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의 앞에는 A4 용지에 인쇄한 당시 기사가 잔뜩 쌓여 있었다.
시립미술관 하나 없이 ‘2대 도시’를 욕망하다
김경은: ‘인천문화예술 40년사’를 쓰셔야 하실 분이 오늘 인터뷰를 당하시네요.
김경수: 처음 제의받았을 때 문화예술계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도 아닌데 내가 얘기하는 게 맞나? 고개를 갸웃했어요. 그래도 그 시기를 열심히 취재하고 사정을 알던 기자로서 거절하면 안 된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죠. 그날부터 부담이 백배가 되고 현장을 떠난 지 10년이 넘은지라 기사 들추면서 공부하고, 기억해내고 했습니다.
김경은: 기자님 10년 치 기사 읽은 덕분에 저도 공부가 됐어요. 염원이었던 인천시립미술관 문제부터 시작할까요? 학익동 뮤지엄파크에 들어선다고 하던데.
김경수: 저도 최근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2021년 5월 보도된 기사에서는 2025년 개관 예정인 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해서 인천시가 준비단을 구성했다. 올해 7월 기사에서는 인천시가 미술관 주제를 디아스포라로 확정했다. 이렇게 주제까지 나오고 개관 시기와 장소도 정했으니 더 이상의 변경은 없겠구나, 생각하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제가 문화부 기자를 했던 99년도부터 인천 문화예술계에서 인천시립미술관은 꼭 건립해야 하고 시급한 문제라고 너무 많이 얘기했거든요.
김경은: 그런데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가장 큰 걸림돌이 뭐였죠?
김경수: 2000년에 인천시 주최로 시립미술관 건립 추진 시민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미협에서는 건립 서명 운동을 합니다. 2001년 연말에는 인천 미술인들이 건립 추진 전시회를 열어요. 얼마나 마음을 모았는지가 보이는 거죠. 당시 83명의 작가가 참여했다고 해요. 2002년에는 인천시가 건립 추진위원회를 발족할 거라고 다들 기대합니다. 시에서도 인천발전연구원에 시립미술관 건립 타당성 조사를 의뢰하겠다 하고 1월에 발표를 하고 3월에 추진위원으로 13명을 구성합니다. 어디다 지을지 인천대공원, 중앙공원, 송도 신도시, 문학경기장 주변, 구 인천여고를 놓고 시에서 여론조사까지 하죠.
김경은: 장소까지 정해지면 다 된 거라고 하셨는데 20년이 지났군요.
김경수: 송도국제도시 국제비즈니스센터 조성사업으로 건립이 미뤄졌거든요. 센터가 조성되면 외자를 유치할 수 있으니까 그 자금으로 시립미술관을 건립하겠다는 거예요. 예산이 부담되니까 연기 입장을 밝힌 거죠. 결국 2002년을 중심으로 시립미술관 건립은 수면 아래로 다시 가라앉습니다.
김경은: 광역시 중 울산하고 인천만 시립미술관이 없던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김경수: 그 기사를 제가 썼던 기억이 나요. 미술관 건립을 취재하러 다니면 인천시는 어떤 생각이고 언제쯤이나 다시 할 수 있을까? 이런 얘기들을 굉장히 많이 했었어요. 그러다가 2005년 인천문화재단 출범 1주년 심포지엄에서 인천 미술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얘기했죠. 사람들은 재점화를 기대했고 시는 문화재단에 복합문화단지 조성계획안 연구를 의뢰합니다. 문화단지를 용현·학익 지구에다 짓고 그 안에 소통공간으로 전시관, 공연장, 영상단지를 조성한다, 시립미술관도 있다. 세계건축박물관도 건립한다. 계획안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2006년에서 2007년 상황입니다.
김경은: 복합문화단지를 조성하려면 10년은 걸릴 텐데 시가 의지가 없던 걸로밖에 안 보이네요.
김경수: 네. 문화 관련해서는 시가 굉장히 속도가 느리고 문화예술인들 생각과는 다르게 사업을 뚝딱뚝딱한다는 생각이 드실 거예요. 어쨌든 2009년 들어서 드디어 시립미술관 건립 추진위원회하고 건립추진고문단이 구성되고 시민 공청회도 개최합니다. 2014년이 아시안게임이니까 2012년에 착공해서 건립에 돌입하겠다는 거죠. 늘 계획만 발표했는데 이제는 진짜 된다고 다들 생각했어요. 문제는 건립타당성조사를 다시 하겠다고 인천발전연구원에 부지 선정 용역을 준 거예요. 그래서 중구청을 비롯해 개항장 문화지구, 부평 미군기지, 송도 투모로시티 건물, 이렇게 네 곳이 물망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후보지는 많지만 다들 문제를 안고 있던 곳이었죠. 만약 중구청에 짓게 되면 중구 직원들 근무지를 마련해야 하니 쉽지 않죠. 용현·학익지구는 시행사 DCRE가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할 예정이었지만 그 시기가 너무 불투명한 거예요. OCI(구 동양제철화학)가 공장부지를 지방으로 옮긴 뒤 폐석회도 제거해야지, 땅도 정화해야지, 또 건물을 올려야 하는데 과연 2012년까지 가능할까?
김경은: 부평 캠프마켓 부지도 오염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김경수: 게다가 투모로시티 건물은 구입 작품들을 단순히 옮겨 놓는 기능밖에 못 한다 해서 일찌감치 제외됐습니다. 결국 인발연 부지 선정 연구는 하나 마나 한 용역이 된 거죠. 시는 다시 인천대 도화캠퍼스 부지와 부평 경찰대 부지, 제물포고 자리, 서구 아시안게임 경기장 주변 부지, 이렇게 네 곳을 제시합니다. 이 중에서 도화캠퍼스 부지가 제일 낫겠다고 시나 여론이나 일치한 것 같아요. 문제는 당시 거기도 개발이 되고 인천대가 송도로 이전하면서 땅값이 훌쩍 오른 거예요.
김경은: 예산 문제는 결국 의지 문제네요.
김경수: 네, 슬프게도. 2011년 1월에 시는 부지 선정부터 다시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합니다. 이때도 용현·학익지구로 확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시기가 불투명했고, 그러면 여론이 들끓을 게 분명하니까. 조속한 부지 선정과 재원 확보 등이 필요하다고 뒤늦게 실토하죠. 이 상태로는 사업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후에도 무수한 히스토리를 겪으면서 드디어 용연·학익 지구가 선정됩니다.
김경은: 주제도 인천에 맞게 디아스포라로 정하고.
김경수: 그건 좋은데요. 문제는, 마지막으로 부지 선정을 다시 하겠다던 2011년부터 최근 부지 발표까지 긴 시간이 흘렀잖아요? 송도경제특구, 영종국제공항 내세워 서울을 잇는 2대 도시라고 말은 하죠. 몇천억 들이는 프로젝트는 많은데 시립미술관 건립 예산도 확정하지 않고 질질 끌었죠. 문화 마인드가 참 부족하다는 증거라고 할 수밖에요.
김경은: 시립미술관 얘기가 나왔으니까 2009년 인천시립 일랑미술관 건립 논란을 이어가 볼까요.
김경수: 2009년에 뭔가 시립미술관 건립이 재점화하는 분위기였거든요. 근데 인천시가 8월, 송도 석산에 이름도 ‘시립일랑미술관’으로 이종상 교수의 개인미술관을 설립하겠다고 MOU를 체결합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웬 ‘홍두깨’죠. 당연히 백지화해야 한다고 들끓었어요. 그전에 4월 초, 안상수 시장님께서 지역 중견 예술인들을 불러 간담회를 하면서 얼핏 일랑미술관을 건립하겠다고 얘기했어요. 다들 설마 했죠. 이종상 교수는 예산 사람으로 인천하고는 접점이 없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할 때 강화 마리산을 주제로 한 벽화를 내건 게 다였어요. 미술계 인사들께 물었더니 인천에도 우현 고유섭이랄지 검여 유희강 같은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왜? 하는 반응이었죠.
김경은: 그래도 검증은 해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김경수: 바로 그거죠. 이 사람이 어느 정도의 예술인인지 최소한의 그런 평가도 생략된 채로 추진하니 문제였죠. 백지화를 요구하는 미술인 100인 선언이 나옵니다. 지역화단의 원로들이 여기에 다 같이 뜻을 실었습니다. 강광, 백현옥, 장권봉, 최명영, 이삼영, 이철명, 홍윤표, 노희정, 다 원로들이에요. 그러자 이번엔 시장님이 미술인들을 불러서 명칭은 ‘석산미술관’으로 하고 일랑뿐 아니라 다른 개인미술관도 짓겠다고 수정 제안을 합니다. 그런데 연말 ‘예총의 밤’이라고 예술인들 송년회에 홍종일 정무부시장님이 참석해서 일랑미술관을 추진한다는 거예요. 또 발칵 뒤집히고 기자들이 찾아가서 묻자 한 발 빼셨어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더 이상 미술인들 뜻을 거스르고 진행할 수는 없어서 해프닝으로 끝이 났습니다.
17억원 투입, 이어가지 못한 인천세계춤축제
김경은: 미술관 하나 짓는 데 진짜 힘드네요. 갈수록 그 예산이 거대해지니 쉬운 문제는 아니겠지만. 세 번째로 2000년 인천세계춤축제 이야기로 넘어가죠.
김경수: 2000년대 당시는 경쟁적으로 축제를 해서 전국에 1000개에 이르는 축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인천 문화예술인들도 인천을 대표하는 축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였죠.
김경은: 저도 기억나네요. 지자체가 다시 시작된 지 10년밖에 안 돼서 축제 풍년이었죠.
김경수: 2000년 3월 무렵이었어요. 제가 문화예술인들 취재를 다니는데 인천시가 춤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2001년에 공항을 개항하고 2002년 월드컵이 있으니 인천을 대표하는 축제를 만들자. 시기는 2000년이어야 한다. 이런 내용이었어요. 알고 보니 출발점은 2000년 9·15인천상륙작전 50주년 기념이벤트였습니다. 9·15 관련해서 지원받은 국비 10억 원 중 시민행사 명목으로 6억을 지원받았습니다. 시 예산 5억 원(경상운영비 1억 5천만 원은 제외)을 보태고 협찬까지 받아 총 17억이었으니까 이걸 인천 대표 축제와 연결 짓고 장르를 춤으로 한다 였죠. 주제는 ‘황해로 세계로 미래로’.
김경은: 평화를 상징하는 바다를 모티프로 하면 좋은 행사가 될 수 있었겠네요.
김경수: 그렇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간 부족에, 총체적 준비 부족이었어요. 춤축제가 열리는 기간 내내 문화부 기자들하고 행사장에 출근하다시피 했거든요. 관람객을 붙잡고 많이 물었더니, 이름에 걸맞은 무대가 없다. 무엇을 보여주려는지 모르겠다. 이런 의견이 대부분이었어요. 개막 전에 지역 문화계 인사들이 우려한 지적과 맞아떨어진 거죠. 지역 무용인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왜 춤인가? 좋다, 바다와 연계해 인천의 정체성을 살린 주제이되 다른 무용제와 차별화할 수 있는가? 그래야 지속적인 대표 축제가 될 테니까요. 또 관객이 함께 즐길 대중성을 갖췄는가? 이런 질문에 하나라도 예스라는 대답을 받을 수 없는 거죠.
김경은: 준비 부족이라면 예를 들어 행사장에서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김경수: 외국인 무용단들도 오잖아요. 그들을 위한 배려는 제대로 했나, 하는 점이죠. 팸플릿이나 안내표지에 영문 병기가 없었어요. 디테일이지만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준비 정도를 단적으로 보여주죠. 외국인뿐 아니라 참가 무용인들을 위한 배려도 부족했습니다. 무용인들을 위한 무대 장치가 아니었다고 얘기하더라구요.
김경은: 17억이면 적은 돈이 아니었을 텐데요.
김경수: 몇백만 원으로 공연 하나 올릴 때였으니까 뭐를 해도 잘하겠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죠. 문제는 예산이 아니라 과정이 생략된 거였어요. 국내 행사 중에서 400개를 검토하고 춤으로 낙점했다는데 ‘어떻게’는 없이 결론만 있는 거죠. 사실 9월 개최는 준비하기에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3주 정도 연기했는데 인천시민의 날(10월 15일)이 끼어 있었죠. 9·15행사로 국비를 따왔기 때문에 그해에 안 쓰면 반납하거나 문광부로부터 패널티를 받을 수 있다는 속사정도 있었습니다. 문화예술계 입장에서 보면 그러자고 대표 축제를 졸속으로 만드는 것도 문제고 국고 낭비도 문제죠.
김경은: 관객은 얼마나 모였어요?
김경수: 잠정 집계로 9일 동안 35만 명이 왔다고 해요. 얼핏 보기에 많아 보이지만 행사가 없어도 주말이면 인천대공원(개최 장소)에 평균 5만 명 온다고 합니다. 메인과 서브 무대도 있고 종합문화예술회관 대극장, 소극장에서도 공연했거든요. 그 집계까지 다 포함하면 과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직위에서는 1일 10만 명 목표라고 했으니 90만으로 잡고, 그럼 35만은 목표의 3분의 1, 그런 거 감안하면 답 나오죠.
김경은: 그 뒤에 춤축제는 계속 열렸나요?
김경수: 열리지 않았습니다. 축제 개막 전에 추진위원 중에서 한 분이 사퇴하거든요. 인천을 대표하는 문화축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 힘을 보탤 수도 없는 나는 자격이 없다는 입장이었어요. 그러니까 위원은 객관적으로 비판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걸까? 이런 지적이 나왔죠. 막바지에 합류한 인천 무용인들은 할당량을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식이었고 주인이 아니라 손님으로 소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5년 넘게 걸려 출범한 인천문화재단
김경은: 다음 얘기를 해볼게요. 인천문화재단 출범은 시작부터 시끄러웠는데 조용한 것보다는 바람직한 것 같아요.
김경수: 그렇죠. 3가지 이슈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벌써 감이 오시는군요. 인천에는 문화재단이 없었는데 전국체전이 열리면서 필요성이 확산됩니다. 기금을 어떻게 조성하나? 그 얘기가 처음 불거져 나왔죠. 그래서 문화재단 설립 기금 마련과 조례 제정이 공식 제기된 거예요. 그게 99년이었어요. 문화재단이 2004년 12월에 출범했으니 거의 5년 6개월이 걸렸습니다.
김경은: 기금 마련을 놓고 논란이 컸죠?
김경수: 그동안 문화예술진흥기금이 84억 원밖에 안 됐거든요. 뭘 할 수 없는 규모였고 그것도 예술인들을 위한 용도였죠. 그래서 시 예산의 1% 얘기가 나온 겁니다. 매년 일반 회계의 1%를 적립하자. 당시 시예산이 1조 3천억 원이었으니 130억이죠. 최소 1천억이 있어야 하니 7년 정도면 조성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리고 기금이 300억 정도 됐을 때 설립하자. 또 설립 후에는 운영 기금이 필요하잖아요. 그 기금은 이제 마련할 300억을 은행에 맡겨서 이자로 운영하면 되지 않겠냐 했죠. IMF가 지난 시기라 이율이 10% 했던 것 같아요. 연 30억 정도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논의가 오가고 조례가 제정됩니다. 그게 설립 첫걸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 2001년 초에 인천시가 인천발전연구원에 조직, 역할, 예술인 지원 방안 관련해 용역을 줍니다. 당시 적립금은 200억이 넘었으니까 한 해만 지나면 설립할 수 있다. 이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김경은: 그런데 2004년 하고도 12월에 출범했으니 문제가 있었겠군요.
김경수: 시가 약속을 틀어버렸어요. 그해 140억을 적립해야 하는데 예산이 없다 했고 어쨌든 연말까지 100억은 조성했습니다. 문제는 다음 해에 60억 정도밖에 지원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일을 추진하기도 전에 브레이크가 걸렸죠.
김경은: 결국 이 일도 예산 문제에 부딪히는군요.
김경수: 네, 다행히 2002년에 시가 적립한 66억에다 한미은행에서 출연한 50억 원이 더해져요. 갑자기 300억이 딱 모아졌어요, 302억. 그런데 2003년 5월, 인천시가 조례 규칙심의위원회를 열고 1% 출연 조항을 없앱니다. 찬물을 끼얹은 거죠. 당시 이자가 너무 낮다. 이대로는 문화재단을 운영할 수 없다. 차라리 보조금을 매년 지원해 주겠다는 거예요.
김경은: 기금은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중요한 기반인데 좋지 않은 상황이군요.
김경수: 또 시는 전체 20명의 문화재단 정원 가운데 절반 이상(11명)을 공무원으로 채울 계획을 세웁니다. 제대로 일할 사람이 필요한데 공무원을 파견하겠다는 게 시의 대책이었어요. 2003년에 300억이 됐기 때문에 추진 드라이브는 걸립니다. 당시 제가 인천일보 문화부장 시절이라 각계 인사로 구성하는 추진위원에 언론인 자격으로 들어갔어요. 거기서 1천억은 상징적 금액이니 적립하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시에서는 500억으로 하자고, 반으로 뚝 잘라요. 항상 그런 식이었죠.
김경은: 어쨌든 드디어 출범하는 건가요?
김경수: 네, 2004년 8월, 시청에서 발기인 대회가 열렸어요. 이사 추천위원회를 결성합니다. 이사는 10명이었고 대표이사에 최원식 인하대 교수가 선출되죠. 인천지역에서 제일 핫했던 게 문화예술진흥기금이었는데 인천시가 이걸 문화재단에 넘겨버렸어요. 한 해 예산이 한 10억 정도인데 수백 명이 신청합니다. 2004년에 한 200명 정도가 대상이었어요. 2005년에도 200명 대상이었는데 신청자가 400명, 예산은 정확하게 10억 2900만 원이었고요. 항상 다수에게 소액 지원을 할 것인가, 소수에게 크게 지원할 것인가로 고민해왔는데 골치 아픈 문제를 재단에 떠넘긴 겁니다.
김경은: 출범 후 재단 운영이랄지, 사업을 평가한다면요?
김경수: 추진위원으로도 활동하고 고대하던 문화재단이라 애정을 가지고 지켜봤어요. 1년 차에는 뭐라 평가하기 좀 어려웠고요. 2년 시점에 큰 사업으로 27개 추진했더군요. 특별공모, 공공미술프로젝트 등, 특별공모는 3건에 한 1억 5천 줬어요. 그전에는 꿈꿀 수 없던 규모였죠. 외에도 나열하자면 기획공연, 연구발간, 전시회, 비평회, 양적으로는 훌륭한데 특정 장르에 몰린 건 문제였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재단에서 기획공연을 하는 게 맞아? 이런 지적도 있었고요.
김경은: 2년이 지나 차기 이사회 구성에 논란이 있었나요?
김경수: 이사 선임에 배척사항이 있습니다. 현 이사가 차기 이사를 지원하면 심사대상이 되니까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이사들이 모두 지원하다 보니 대표이사 포함 당연직 3인을 제외하고 추천위원회에서 다 빠졌어요. 결국 현 대표이사가 나머지 이사를 다 선임하는 상황이 돼요. 그러면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함에도 조례대로 하는 바람에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받죠. 또 하나 문제는 문화재단과 인천시가 역할을 제대로 분담했나 였어요. 문화재단에 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이 있고 인천시에는 무대제작 지원사업이 있어요. 무대제작 지원은 사이즈가 크죠. 문제는 문화재단에 신청했다가 떨어지고 시에 요청하면 선정되는 경우가 있어서 일관성이 떨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재단에서도 예술지원에 대해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워야 문화예술인들도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 텐데 통로가 폐쇄적이라 아쉬웠죠. 문화재단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얘기가 길어졌네요.
김경은: 문화재단이 인천에서 하는 역할을 보면, 처음부터 세팅을 잘하면 좋지만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단 만들고 개선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 같아요. (하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