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김경수 기자 - 문화기자가 말하는 인천 문화예술계 '핫 이슈'(하) / 김경은 작가 대담·집필
논란 속에 개선돼온 인천의 문화예술환경
김경은: 다음으로 주안영상미디어센터 얘기를 해보죠. 유치 단계부터 구의회가 반대했던데.
김경수: 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전국의 지자체를 대상으로 영상미디어센터 설치 공모를 했습니다. 지자체가 구성한 컨소시엄에 민간단체가 들어가는 조건인데 인천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마침 남구(현 미추홀구)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주안미디어문화축제를 개최하고 민예총(민족예술단체총연합회)이 참여하면서 공모에 지원한 결과 선정됐어요. 그렇게 국비 10억 원을 따냄에 따라 구가 사업예산 10억 원을 매칭해야 합니다. 2005년 말 다음해 본예산으로 10억원을 구의회 심의에 올렸는데 이를 자릅니다.
김경은: 구민 대표들이 나서서 구민 참여 문화예산을 반대하는 건 모양이 좋지 않은데요.
김경수: 문체부 측도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지 우려했던 것 같아요. 향후 사업추진 계획서를 내라고 요구했습니다. 남구는 시에서 특별 재정교부금을 받겠다고 하죠. 그런데 인천시 입장이 좀 난처한 거예요. 의원들이 자른 예산에 대해 시가 보충하는 부담감이었죠. 그래도 예산을 내려줍니다. 구는 주안에 있던 맥나인(Mac9)이라는 멀티플렉스 극장을 매입했는데 문제는 운영비가 없다는 겁니다. 당시 박우섭 청장님은 미디어 분야 추경예산을 세우겠다고 지원 의지를 밝혀요. 막상 시를 취재했더니 운영비까지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운영주체인 민예총은 속이 타들어갑니다. 이 시설이 남구민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인천시민 모두의 것이다. 그러므로 시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런 민예총과 시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립니다. 영상미디어센터는 맥나인이 아니라 주안역 건너편, 청소년상담센터 일부 층을 쓰면서 2007년 8월 어렵게 오픈하게 됩니다.
김경은: 주안영상미디어센터와 ‘영화공간 주안’은 어떤 관계였나요?
김경수: 맥나인 건물 매입 목적은 사실 예술영화관으로 쓰기 위해서였어요. 세 개 관을 ‘영화공간 주안’에서 쓰고 관 하나를 센터에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어쨌든 오픈하고 운영해나간 것은 남구의 의지였어요.
김경은: 팟캐스트가 퍼져나가고 유튜브가 대세인 걸 보면 앞서나간 건데.
김경수: 안타깝죠. 제가 미추홀구 미디어홍보실에서 일한 적이 있거든요. 미디어팀장이었을 당시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을 우리 부서에서 담당했어요. 그때 전남 광주영상미디어센터에 다녀왔는데 그곳은 교육청에서 공문을 내리면 지역내 상당수 학교가 교육에 참여했습니다. 미래 교육이었죠. 지금이야 미디어가 보편화됐지만 스마트폰도 없던 때예요. 매번 구의회에서는 복지예산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로 뒷전으로 미루곤 했습니다.
'각국공원 창조적 복원사업' 논란 끝에 무산
김경은: 만국공원 복원사업으로 넘어가서 얘기하죠.
김경수: 개항장에 여러 나라 조계지가 있어 자유공원을 각국공원, 만국공원이라고 불렀습니다. 항상 어느날 갑자기인데요, 인천시가 ‘각국공원 창조적 복원사업’ 추진을 발표합니다. 어휘 조합에서부터 따로 논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거슬러 올라가면 2004년 인천발전연구원에서 자체 과제로 동명의 구상을 꺼냅니다. 그 다음엔 인천시가 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죠. 문화적으로 열세인 중구에 ‘개항’의 역사성을 투영해서 도시 개발사업을 진행하면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인천학연구원에 용역을 줍니다. 결론은 사업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나왔죠. 공청회도 하면서 시에서 사업을 스타트하기로 했죠.
김경은: 건축학계에서 반대가 심했던 걸로 아는데요.
김경수: 2005년 말부터 2006년으로 이어지며 공청회가 열리고 논란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때가 저를 포함해 일군의 기자들이 인천일보를 그만두고 새로운 신문을 창간하던 과도기라 이 시기가 제게는 블랭크였어요. 이후 사업을 다시 들여다보며 지역에 문제점을 알리기 시작했죠. 당시 쟁점은 이렇습니다. 인천학연구원 쪽에서는 식민유산도 우리의 역사문화이므로 복원할 가치가 있다는 입장이었고 건축학계 쪽에서는 복원을 할 수 없음에도 창조적으로 복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합니다.
김경은: 복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무슨 얘긴지 좀 풀어주세요.
김경수: 개항기에 각국을 대표하던 다섯 개 건물을 공원에 2011년까지 복원해놓겠다는 얘기였어요. 예산은 276억 원. 건축학자들은 온전한 복원이 아니라 단순 재현으로는 문화적 가치를 담보할 수 없다고 비판한 거예요. 추진하는 쪽에선 내부 평면도와 확보한 사진을 조합하면 가능하다고 반박했죠.
김경은: 해반문화사랑회에서 관련 포럼을 열었죠?
김경수: 취재갔던 기억이 나는데요. 완벽한 복원을 고집할 게 아니라 21세기의 기술로 역사적 맥락을 반영하면 충분히 의미있다는 얘기와 목적이 좋아도 원형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추정 복원하는 것은 가짜 생산이라는 반박이 다시 한번 맞섰죠. 논란이 거듭될수록 건축물 자체 복원으로 논의가 한정되면서 논쟁은 공원 복원과 점점 멀어지게 되고 결국 이 사업은 취소됩니다. 역사 왜곡이라고 생각하는 건축계와 문화계 교수들 의견이 힘을 받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안상수 시장에서 송영길 시장으로 바뀐 뒤에는 도시재생 사업이 원도심 살리기로 방향이 전환됩니다.
말 많았던 '국제여성미술비엔날레'
김경은: 국제여성미술비엔날레 얘기를 해보죠. 프레 행사부터 2009년까지 연속 사업이었는데 이것도 보면 많이 안타까웠어요. 이 행사를 이렇게까지 함께할 수 없었는지.
김경수: 사실 여성비엔날레를 향한 비난의 중심에는 제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이 시기 저는 미술 쪽 인터뷰를 많이 했거든요. 새롭게 취재를 시작하면서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인천 여성비엔날레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사명감이 생겼죠.
김경은: 그럼 프레 행사부터 얘기해주시죠.
김경수: 비엔날레가 생긴 이유부터 얘기할게요. 사단법인 인천여성작가연합회에는 인천의 여성 작가들이 대다수 가입해 있습니다. 함께 활동하면서 연합회는 비엔날레 전시회를 추진합니다. 마침 시에서는 인천에서 국제적인 예술제가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라 행사 예산을 지원하기로 합니다. 거기까지는 그렇 수 있습니다만 국제 행사라는 위상에 맞춰 조직위원회를 새로 구성하고 예술감독을 선정하는 등 준비를 해야 하잖아요? 이 부분은 생략된 채로 주최 측은 2006년에 우선 프레 행사를 열겠다고 합니다.
김경은: 거센 반발에 부딪히지 않았나요?
김경수: 예산이 1억 6천이었거든요. 문화예술진흥기금에 대해 말씀드렸잖아요. 한 단체가 전시회를 할 경우 지원금이 1천만 원에도 못미치는 수준이죠. 지역에서는 뭐지? 하면서도 행사를 공론화하자고 나왔어요. 근데 인천시는 예산은 이미 세웠으므로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이었어요. 지역 문화예술단체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라도 밝히라며 성명서를 냅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원점부터 재논의하자는 성명서로 이어졌죠.
김경은: 지역행사인데 어떤 식으로든 함께 하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았을까요?
김경수: 조직위에서는 지역 중견작가를 찾아가서 참여 제안을 했지만 외면하더라는 얘기를 해요. 그래서 제가 그 중견 작가한테 여쭤봤어요. 조직위원회를 꾸리려면 공개적으로 인선하라고 제안했지 거절한 게 아니었다는 거예요. 여성성에 대한 인식도 논란이었어요. 생물학적 차이를 넘어서 남·녀 성 모두를 수용하는 장을 펼치겠다고 합니다. 한편에선 구시대적 인식을 비판하는 ‘남성비웃날레’가 열립니다. 운영위원회 구성을 보면 인천 민미협, 시민문화예술센터, ‘작가들’ 편집위원, 스페이스 빔이 참여했죠. 2006년 8월 5일 두 전시가 동시에 개막, 37일간 이어집니다. 한쪽은 예산이 160만 원이고, 다른 한쪽은 1억 6천만 원이었지요.
김경은: 끝나고 평가는 했겠죠?
김경수: 주최 측의 사후평가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국비 3억 원을 따냅니다. 그러자 시가 3억 원을 매칭했구요. 어쨌든 지난 행사를 거울삼아 본 행사를 준비해서 열어야 하는데... 어느덧 2007년 한여름이 됐는데 누가 조직위원장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홈페이지도 없고 해서 찾아갔어요. 11월 10일 개막해서 50일 동안 진행하는 전시로 작가는 선정 중이며 홍보는 선정 후 예정이라고 했어요. 최소한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전시에 대한 정보를 인지하고 있어야 했음에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10년을 준비한 사업이라고 했지만 구체성이 없는 거예요. 주제는 ‘생명을 태동시키는 어머니의 위대함이 여성성의 근본이다'. 프레행사에서 한 발도 나가지 못한 인식이었죠. 무수한 지역의 소규모 행사와 다를 바 없으니 문제가 있다,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죠. 전시 타이틀을 ‘Knocking on the door-문을 두드리다’라고 붙여 51일간 진행, 세계적 거장과 국외 활동 한국 여성작가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신세대 작가도 참여시키고 부부작가 전시회, 인천미술인전도 더했습니다. 그렇지만 인천비엔날레에서만 볼 수 있는 기획이 아니잖아요. 춤축제 때처럼 시민들 시선 못 끌었고요. 개막 보도자료 뿌린 게 한 달 전이었어요. 훌륭한 작품들은 많았지만 한결같이 화이트 큐브 방식의 전시였습니다.
김경은: 이번에는 평가회가 있었나요?
김경수: 시작이라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발전시켜 나가자는 쪽과 이념적으로나 미학적으로 가치를 담보하지 못하니 폐지하자는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혔어요. 문제는 전문가들의 비평을 겸허히 다 듣겠다면서도 시는 비엔날레를 지속시키겠다는 전제를 고수했어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하자면서 결론을 정해놓고 얘기하는 게 맞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2년 후인 2009년에도 비엔날레 전시가 다시 열립니다. 이번에는 주제를 페미니즘에 맞추고 전시 방식도 지적한 내용을 수용해서 바꾸기는 했는데 전국의 여러 비엔날레와 차별성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어요.
김경은: 열심히 준비해서 아이를 낳았더니 젖도 떼기 전에 내놓으라 한다고 조직위원장이 얘기하던데 이런 일에서는 개인 양육보다 사회적 양육이 적절하지 않았을까요.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오랫동안 공석이었던 인천시립교향악단 사태를 얘기해주세요.
김경수: 인천시립예술단에는 극단, 무용단, 합창단, 교양악단까지 4개 단체가 있습니다. 그중 시향(시립교향악단)은 역사가 깊죠. 2006년이 창단 40주년을 맞는 해로 한국교향악단 역사와 거의 같습니다. 문제는 예술감독이 2년째 공석이라는 데 있었습니다. 금노상 감독이 물러난 뒤 선임을 미루고 있었어요. 당시 시장님은 세계적 마에스트로 정명훈을 인천시향으로 끌어오려는 의지가 대단했거든요. 그런데 정명훈이 덜컥 서울시향으로 갑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고 시향을 객원지휘자 체제로 운영합니다.
김경은: 그렇게 2년이 지나면 실력이나 결속 면에서 문제가 많았겠네요.
김경수: 인천시향 단원들의 기본기가 탄탄합니다. 그런데 연주 때마다 객원지휘자를 모셔오다 보니 '열린음악회 수준'이라는 지적까지 받으면서 한순간 추락하더라고요. 이번에 시는 정명훈과 로린마젤에게 지휘자 추천을 의뢰한 결과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활동 중인 태국 출신의 번디트 웅그랑시와 러시아 아릴드 레머라이트 2인체제가 됩니다. 그나마 2인 객원체제로 1년을 유지하면서 좀 나아지기는 했어요. 그렇지만 교향악단은 하모니가 중요한데 예술감독이 발휘하는 리더십 부재로 실력을 100% 끌어올릴 수는 없었어요. 감독을 하루빨리 선임해야한다는 여론이 일었지만 시장님은 여전히 정명훈을 포기 못 했죠. 시의 계산은 인천&아츠를 정명훈 감독에게 맡겼으니 서울시향 임기를 마치는 2008년이면 그가 인천에 올 수 있고 그때까지 정 감독이 선택한 객원지휘자가 시향을 이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김경은: 정명훈 아니면 대안이 없던 건가요?
김경수: 그 부분은 인천&아츠 얘기를 하면서 하겠습니다. 어쨌든 창단 40주년을 맞아 2년째 공석인 상태에서 또 다시 5개월이 지났죠. 2인체제 이후 시는 또 다른 3인의 객원지휘자 역시 정명훈 감독의 추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과는 정기연주회에서 단원들이 제대로 화음도 못 맞췄다는 혹평을 듣죠. 결국 2006년 9월 첸 주오황 예술감독을 임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김경은: 2년 5개월의 세월이면 손실이 너무 컸네요. 다음 주제로 말씀 중에 잠깐 나왔던 인천&아츠 얘기로 넘어가죠.
김경수: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진행한 4개년 국제예술제였어요. 예산을 100억 투입하겠다 했으니 갑자기 단위가 달라졌죠. 정명훈 관련해서는 굉장히 대담합니다. 예산 조성은 처음 1년 10억, 3년간 30억씩 나누기로 하고 송도신도시개발유한회사(NSC: 추후 NSIC로 명칭을 바꿈)를 후원사로 끌어들입니다. 절반인 50억 원을 매칭 펀드로 조성하라는 조건이었죠. 정명훈 감독이 있으므로 국제 예술제가 가능하고 외국 투자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한마디로 송도 개발을 위해 정명훈 감독을 중심으로 국제예술제를 이끌어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김경은: 모든 게 송도국제도시에 맞춰진 거군요.
김경수: 그러니 지역에서는 당연히 비판이 나오죠. 어쨌든 2006년 정명훈 감독은 인천에서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APO) 재창단 공연을 합니다. 당시 무대에 오른 정 감독은 6년 만에 재창단 공연을 열어준 안상수 시장께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건넵니다. APO는 공연이 있을 때마다 각국에 흩어져 활동하는 연주자들이 모이는 일명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입니다. 공연이 끝나면 각자 자리로 돌아가는 형태입니다.
인천&아츠는 세 축으로 진행됩니다. 첫째, APO의 연고를 인천에 둠으로써 문화도시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전략입니다. 둘째, APO 아카데미(APOA) 워크숍을 열고 유망주를 대상으로 레슨 후 공연으로 마무리, 여기에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 악장과 수석들이 교수진으로 참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공연입니다. 2008년에 정명훈이 서울시향 감독을 끝내면 APOA 예술고문을 맡을 예정이었어요. 게다가 인천시향 감독까지 하면 그림이 완성된다고 생각한 거죠.
김경은: 이런 이벤트에서 항상 문제 됐던 예산 얘기도 궁금하네요.
김경수: 정말 큰 문제였죠. 시민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섭외하고 유치하는 일을 CMI에 맡겼습니다. 정명훈 감독의 형 정명근 씨가 운영하는 공연기획사였죠. 기획사에 별도의 대행비까지 지불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인천&아츠 2년차 프로그램 예산지출 내역을 보면 APOA 워크숍에 5억 9천만 원, 공연 대행료로 7억 4500만 원을 썼습니다. 큰 단위의 돈이 술술 빠져나갔죠. 시민들이야 좋은 공연 하네 하면서 즐기겠지만, 시 정책의 중심은 송도라는 경제자유구역이었고 문화예술은 이를 위한 들러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비난이 일었습니다.
김경은: 인천아트센터 건립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좀 더 얘기해주세요.
김경수: 인천시가 인천아트센터 건립 계획을 갑자기 발표합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문화단지를 송도에 짓겠다. 문화단지 운영자금을 충당할 지원단지로 고급 아파트, 호텔, 오피스텔을 지어 분양하겠다. 이를 위한 부지로 국제업무단지 내 NSIC(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가 소유한 땅을 지목했고, NSIC가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2007년 협약을 체결합니다. CMI라는 공연기획사가 아트센터 운영주체로서 협약에 나서는 게 위상에 안 맞다보니 논란이 일었어요. 그래도 CMI와 인천도시개발공사가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서 지원단지 개발주체가 됩니다.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 사건은 정명근씨 배임으로 막을 내리죠. 인천&아츠 사업과 관련 시 보조금 횡령으로 대법원 3년 확정을 받았고요. 인천아트센터 건립 사업비 횡령ㆍ배임 혐의는 법원에서 39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인천아트센터가 부실 건립될 수밖에 없던 이유죠. 정명훈 감독이야 음악에 순수열정을 지녔더라도 형은 그걸 이용했고 인천시는 장단에 춤을 춘 겁니다. 문화예술계에 오점을 찍고 너무 큰 상처로 남게 됐죠.
김경은: 마지막 주제입니다. 아트플랫폼 얘기를 하죠.
김경수: 일명 ‘예촌’ 사업이라 했는데요, 2003년 10월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2009년 9월에 개관합니다. 시작은 참 멋진 일이었어요. 문제는 누가 운영할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개관이 다가오면서 지역에서 공론화를 촉구합니다. 그때는 ‘중구 미술문화공간 사업’으로 알려졌거든요. 컨셉을 아시아 미술문화 교류와 레지던시 프로그램 운영 공간으로 잡았습니다. 물론 시민들한테 보여줄 전시 공간도 마련하지만 세계적인 작가들이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도 하고 미술 관련 토론, 교육도 하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거였죠. 당시 지역마다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이 조성되고 있었거든요. 어떤 예술인을 데려올 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도 나왔고, 인천 작가는 쿼터제로 안배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시에서는 예술인들 대상 설문조사를 했더니 운영주체로 인천문화재단을 꼽은 응답률이 높았다고 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도 감독권은 인천문화재단에 주되 산하 독립기구로 운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또 한쪽에서는 예총이나 민예총등 민간단체도 전문성이 있으니 민간위탁으로 활용하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김경은: 이 사례에서는 지역 의견이 비교적 반영됐나 보군요.
김경수: 사실 인천시가 운영 관련해 2008년, 공무원과 문화재단 직원으로 TF팀을 구성합니다. 매달 두 차례 회의를 했음에도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죠. 이때 지역문화단체가 운영주체를 논의하는 토론회를 엽니다. 이 자리에서 문화재단 관계자는 재단에 전담부서 한두 팀을 두고 관리, 운영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밝힙니다. 당연히 밀실 행정, 문화재단 독주 같은 지적이 나왔죠. 또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는 전혀 논의된 바 없었다는 반발도 일었습니다.
김경은: 예산 마련은요?
김경수: 2003년 인천시가 조례규칙심의위원회를 열고 해안동 일대(현 인천아트센터) 창고 17개 동을 사들여서 문화예술 공간을 만든다고 하면서 토지보상 예산으로 90억 원을 책정합니다. 관 주도가 아니라 MA(Master Architect) 방식으로 전문가가 설계와 개발을 종합적으로 맡기로 했습니다. 그 정도면 잘 돼가는구나. 이렇게 얘기한 게 그해 8월이거든요. 그런데 공시지가가 상승해서 보상비가 200억 원까지 늘었습니다. 2004년부터 이쪽 땅값이 슬슬 오르기 시작할 때였어요. 그러자 인천시의회에서 10월 임시회의에서 갑자기 제동을 겁니다. 증가한 예산도 문제지만 건물 안전에도 문제 있으니 심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죠. 이에 시는 감정평가를 했더니 처음에 공시지가로 책정한 땅값이 크게 올랐다. 설명을 잘해서 이 사업을 추진하겠는 입장이었어요. 마침 지방재정 투·융자심의를 거치면서 재원 확보 길이 열립니다. 결과 2009년 개관을 하게 됐고 인천문화재단이 운영주체가 됐습니다.
김경은: 우리가 오늘 인천의 문화예술을 주제로 얘기하느라 네 시간 넘게 달려왔습니다. 장시간 준비하고 긴 시간 얘기하느라 힘드셨을 텐데 고맙습니다. 예산이랄지 당사자들 의견을 얼마나 반영했는가 하면서 항상 같은 패턴으로 논란이 반복되지만 인천의 문화예술 환경은 그 속에서 조금씩 나아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인터뷰 이걸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