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마을 인근 갤러리 ‘화안’ 개관준비 마쳐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 뒤편 차이나타운 끝자락에 지난해 말 4층짜리 신축건물이 들어섰다. 아직 간판이 걸리지 않은 건물은 내부 인테리어가 마무리, 향후 어떤 장소로 쓰여질 지 궁금증을 불러온다.
건물을 지은 이는 뜻밖의 인천 중견 서예가 관호 최원복 선생이다. 낡은 구옥이 있던 집터에 건물을 올리는 데는 무려 3년이 걸렸다. 바로 카페가 있는 갤러리가 들어설 공간이다.
“젊어서부터 줄곧 갤러리를 하나 열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림을 거는 공간에서 차도 마실수 있는 구성을 염두에 뒀죠. 지금은 갤러리와 카페가 함께 있는 것이 일상화됐지만 당시는 생소한 발상이었습니다. 수십년동안 벼르던 일을 70이 넘은 나이에 드디어 실행을 하게 됐네요.”
주위에서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다. 힘들게 갤러리를 운영하겠다고 나선 선생을 말리는 이도 많았다.
“스스로 편한 것을 못견뎌합니다. 편하다는 것은 곧 나태함으로 가고 쉬고 싶다는 마음을 부르죠. 위험한 일을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갤러리와 작업실이 있는 공간을 갖고 싶은 것이 꿈이기도 했구요. 앞으로 남은 인생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치열하게 살고 싶습니다.”
사실 건물은 짓는 일엔 많은 무리가 따랐다. 살던 아파트를 팔고, 대출도 받았다. 공사 기간이 늘어나면서 금리는 오르고 자재 값이 뛰는 바람에 추가 대출을 받아야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꿈을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모든 어려움을 넘어섰다.
다음 달이면 갤러리와 카페를 오픈 할 예정이다. 이름도 이미 정했다.
“화안(花顔)이라고 지었습니다. 이태백 시에 나오는 구절에서 차용했죠. ‘아름다운 사람’을 표현하는 말이에요. 즉 아름다운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소, 이곳에 오는 사람들 모두가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3년전 개인전에서 ‘화안’이라는 글씨를 선보인 바 있다. 그 작품을 조각가 정기호 선생이 서각 작품으로 만들어 그에게 선물했다. 이미 1층 카페엔 작품을 걸어놓았다.
“개관전에서는 최근 완성한 작품을 걸려고 합니다. 내가 꾸민 갤러리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것, 벌써부터 설레입니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데 한없이 치열한 선생이다. 개인전을 치르자마자 곧바로 새로운 작업에 몰두한다. 공력에 비해 의외로 개인전 횟수가 그리 많지 않지 않은 이유는 이렇다.
“개인전을 하면 그 기간 매일 매일 작품을 둘러봅니다. 새로운 느낌과 영감을 얻기 위한 과정이지요. 그리곤 그 느낌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 다시 첫 걸음을 시작하는 거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달라진 운필을 느끼는 순간이 옵니다.” 그사이 몇 년의 세월이 흘러가 있다.
최근 선생의 필체를 보면 이전과 느낌이 확 달라졌다. 서체는 회화성이 더욱 짙어졌고 조형성과 운필의 역동성은 극대화됐다. 마치 글씨가 꿈틀꿈틀 살아서 튀어나올 듯 하다.
작품에서 많이 활용하는 서체는 금문과 초서다. 금문은 상형문자 이후 만들어진 글자이다 보니 아직 상형문자의 성격이 많이 남아 있다. 그만큼 조형적인 요소가 많다.
“옛 고전인 금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그 곳에 생명을 불어넣는 선질 작업이 중요합니다. 그냥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도록 만들어내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초서 역시 역동성과 흐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전개해가는 것이 초서의 묘미입니다. 공간에도 흐름이 있어요. 단번에 써 내려가되, 가다가 멈췄다 다시 가고, 때론 빨리 가다 속도를 늦추기도 하면서 역동성을 만들어냅니다.”
단 전통적인 운필법은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틀안에서 문자가 가지고 있는 회화성에 주안점을 두고 연구합니다.”
변화의 계기가 있었다. 두 번의 여행이 그에게 큰 울림을 줬다. 한번은 스위스 니스 여행 당시 샤갈기념관에서 본 작품이었고 또 한번은 이탈리아 여행에서 목격한 현대미술이었다.
“이전 알고 있던 샤갈의 그림과 다른 웅장함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를 서예의 움직임으로 만들어보자는 의욕이 일었죠. 또 이탈리아에서 본 현대미술 작품에서는 강렬한 선의 움직임을 보았습니다.”
각각 연구에 몰두한 결과를 선보이는 전시를 열었다. 지난 2017년, 2020년 개인전에서다. 운필의 운동감을 살리는 데 몰두한 작품들이다. “그 이전의 작품을 보니 스스로 눈에 안차더라구요.”
한 작품을 만드는 데 온힘을 쏟는다. 완성하고 나면 몸 안의 기가 다 빠진 느낌을 체험하곤 한다.
“손끝은 도구에 불과합니다. 몸속 기와 정신이 손끝을 통해 전달되면서 작품으로 탄생하는 거죠. 몰입도가 강할수록 생생한 느낌으로 글자가 살아납니다.”
작품을 만드는 행위가 고행을 닮은 듯 하다고 하자 선생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영감을 얻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