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이현 / 자유기고가
“집은 좋든 싫든 무조건 있어야 하는 곳, 그래서 한 번도 집에 있는 시간이 좋은지조차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끄러운 얘기를 꺼내야겠다. 나는 정리를 전혀 못하는 인간이다. 독립해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는 아예 물건 자체를 줄이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결국 설 연휴를 맞아 옷 정리부터 시작했다. 작년에 단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이제는 맞지 않는 옷 등 기준도 정했다. 무려 김장봉투 네 봉지를 꽉꽉 채워 넣고 의류 재활용함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도 남은 옷들이 여전히 공간을 가득 차지하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서재로 쓰기로 한 공간은 발 디딜 곳 없이 책과 갖가지 물건들이 뒤섞여 산을 이루고 있고, 거실에는 풀지 않은 여행 짐 보따리가 군데군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왜 이렇게 사나 한심한 생각이 들어 청소를 시작했지만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울상만 지으며 포기한 것이 여러 번이다. 연휴를 맞아 그 중 아주 작은 부분을 해치웠고 다행히 그 부분은 바닥의 모습이 드러났다.
30년 넘게 살아 온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정리 정돈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아무렇게나 걸쳐 놓은 옷들 때문에 행거가 넘어져 그 아래에 깔리는 지경이 되어도 잘못됐다고 여기지 않았다. 가족들도 네 방은 네가 알아서하라는 식이었기 때문에 나만 살기에 불편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 책 저 책 읽다가 잠이 들면 베개 옆에 책들이 쌓였지만 오히려 안락한 느낌이었다. 언젠가 한 번 내 방에 놀러왔던 친구는 책상 위에 있던 먼지 가득 쌓인 껌을 집어 들었다가 껌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던 것이냐고 나에게 핀잔을 줬는데 나로서는 당연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웃고 말았다.
그래서 정말로 ‘괜찮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공부나 글쓰기를 할 공간조차 없는 집에 있는 상태가 점점 더 괴로워졌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불안감은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조차 편히 쉬지 못하는 심리상태를 만들었는데, 어질러 놓은 집을 보면 ‘집안일’도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워진다. 점점 무기력에 빠지는 기분이다.
<오늘부터 그 자리에 의자를 두기로 했다>를 집어든 것은 부제 때문이었다. ‘집에 가고 싶지만, 집에 있기 싫은 나를 위한 공간 심리 수업’이라는 문장이 와 닿았다. 완전히 내 마음과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사연들을 다루는지 궁금했다. 저자 윤주희는 공간정리 전문가다. 처음에는 집을 근사하고 아름답게 꾸며주는 일이 좋아 시작했지만, 정리된 집을 통해 사람의 인생이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경제적으로 어렵고 열악한 환경에 처한 이웃들을 위해 자신의 정리 재능을 보태고자 정리컨설팅 회사를 차렸다고 한다.
온 동네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가져다 쌓아놓는 저장강박증을 가진 사람, 옷 사기를 포기 하지 못하는 사람, 육아와 가족 돌봄에 지쳐 집 정리 자체에서 손을 놓아버린 사람 등 다양한 사연들이 나온다. 그런데 의뢰인이 대부분 여자다. 우리나라에서 ‘집’을 가꾸고 치우는 일이 여전히 ‘여자들’에게 몰려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정리가 되지 않은 집에서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물건들을 헤치며 살아가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삶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주로 ‘여자’, 다시 말해 ‘아내’ 혹은 ‘엄마’라면,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저자에게 구조 요청을 하는 대부분은 정돈되지 않은 집 때문에 마음의 상처도 깊어진 사람들이었다. 정신과적 진단에서 주로 언급되는 ‘신체화’라는 말도 등장한다. 심리적 질환이 신체의 고통으로 나타나는 것을 뜻하는데, 의학적 검사 소견으로는 정상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주변에서는 꾀병으로 여기기도 한단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정리 비법에 대해서는 직접 읽으며 알아보길 권한다. 이 책에 필요를 못 느낀다면 당신의 집은 괜찮은 상태일 것이다. 다 읽으면 정리할 용기가 바로 샘솟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집안 곳곳 쌓인 흔적들을 치우는 일은 여전히 두렵다. 그래도 우선 체득해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언젠가 갑자기 눈물이 흐른 적이 있다. “왜 세상의 좋은 것들은 영원하지 않을까?”라는 말을 하며 하염없이 울었다. 물건을 사 모으고, 좋았던 기억을 쌓아두는 것으로 나는 어떤 순간들을 저장하고 싶었던 것일까. 다시는 들여다보지도 않을 물건들을 곁에 두고야 안심하는 내 마음의 근원에 있는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집 정리’보다 좋은 방법이 또 있을까 싶다. 내게 무엇이 있고, 왜 그것을 가지게 되었는지, 지금도 여전히 그 이유가 유효한지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과거보다는 현재의 나와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나를 바꾸는 지름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