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도화지 같은 스펙타클한 청년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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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도화지 같은 스펙타클한 청년공간
  • 공지선
  • 승인 2023.02.2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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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일깨우는, 청년문화예술]
(2) 배다리 '인천스펙타클' 이종범 기획자를 만나다
가만히 살펴보면, 칙칙한 도시를 의미있게 채색하고 일깨우려 소리없이 분투하는 ‘문화청년’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인천지역에서 문화예술 공간을 운영하며 새롭게 시도하는 청년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예술세계를 나눠본다. 공지선 청년작가가 그 공간들을 찾아 나선다.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과거 물길이 있었던, ‘배를 대는 다리가 있는 곳‘이란 의미의 ’배다리‘는 근대 인천의 소중한 역사를 간직한 동네다. 작은 배들은 저마다의 물자를 실어 수많은 이야기를 날랐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큰 여관이 있었고, 대한민국 최초의 공립보통학교가 지어졌으며 양조장과 성냥공장이 있던 곳. 한국전쟁 직후 부터 헌책방 거리로도 유명했던 곳. 과거 시끌벅적했던 배다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 서서히 가라앉아 고요한 모습으로 남겨졌다. 여관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고 그 많던 중고 책방은 서너군네만 남았다. 배다리를 찾았던 그 많은 발걸음들은 팽창한 도시의 개발지로 발길을 옮겨 나갔다.

그러나 최근 이 고요함에 이따금 상기된 웃음소리와 함께 뜨거운 활력이 피어오른다. 쓰임을 다 한 건물이 그 용도를 바꿔 문화공간으로 변모해갔고 그와 동시에 하나둘 청년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2016년부터 ‘인천 스펙타클’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에서 다양한 로컬 활동을 한 ‘이종범’ 기획자도 지난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학업에서부터 생업이든 문화생활이든 늘 서울에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재밌는 거를 멀리 가지 않고도 가까운 인천에서 할 수 있겠느냐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내가 사는 동네에서 내가 계속 살기 위해서는 이 동네, 이 도시에 어떤 게 필요할까를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로컬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출판도 하고 행사를 열기도 하고 또 커뮤니티 모임 같은 걸 운영하기도 하고요. 요즘은 잡지도 내고 있어요. 재밌어 보이는 거는 다 하고 있습니다”

이종범 기획자
‘인천스펙타클’ 이종범 기획자 

<스펙타클 타운>은 이렇게 2022년 여름 개관했다. 인천스펙타클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인 ‘스펙타클 유니버시티’와 교육을 동반한 콘텐츠 제작 프로그램인 ‘로컬 에디터 스쿨’을 운영하며 줌(zoom:화상회의 앱)이나 공간 대관이 아닌 상시로 모여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아지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동기가 되었다.

“제가 하는 일을 설명하면서 재밌을 것 같은 건 이것저것 다 한다고 했는데 여기도 그런 공간이에요. 뭔가 그렇게 딱 전시 공간입니다, 모임 공간입니다 규정 짓기보다는 인천에서 재밌는 사람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무엇이든 담길 수 있는, 그런 도화지 같은 공간을 상상하면서 이제 열게 된 공간이에요. 저희의 오피스이기도 하고요”

스펙타클타운 공간
스펙타클타운 공간

배다리에 자리 잡게 된 이유에 대해선 ‘위치’를 꼽았다. 그는 공간을 오픈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위치 선정에 대해 세 가지 기준점을 세워두었다. 첫 번째로는 취향에 맞는 공간들이 주변에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터, 혹은 일거리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로는 이런 것들을 같이 즐길 수 있는 좋은 이웃이나 동료들이 있어야 로컬을 이야기하고 그 동네에서 지내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간의 활동이 인천이라는 넓은 광역도시 안을 유랑하며 숨겨진 것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것이었다면, 거점을 정할 때는 이 세 가지의 기준 들이 가장 잘 충족하는 동네가 어디일까를 먼저 염두에 둔 것이다.

“사실 딱 여기 한 군데만 들렀다 가셔야 한다면 누군가를 초대하기 민망하잖아요. 그래서 근처에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좋은 취향의 공간들이 많이 있으면 좋겠다는 게 첫 번째였고. 두 번째로는 아무리 좋고 재밌는 동네여도 현실적인 부분을 배제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임대료라든지 아니면 지원 사업이라든지 아니면 교통에서 최소한의 접근성 같은 게 이제 보장되는 동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뭔가 재밌게 협업을 할 수 있는 이웃들이 근처 도보 거리 안에 있으면 좋겠다는 거였죠.”

스펙타클타운 외부
스펙타클타운 외부

배다리가 인천 내에서 문화적으로 상징적인 동네인 점. 사람들이 좋아할 요소들이 포진해 있는 점. 시기에 맞물려 공간구성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는 좋은 지원사업이 있었다는 점도 지역을 선택하는데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지역을 정하고 난 뒤 공간을 구성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공간에서 일을 해본 적은 있었으나 직접 공간을 기획하고 구성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실제로 부동산을 알아보며 공간의 쓰임을 기획하고 시공하는 등 오픈 준비를 하는 데에만 반년이 걸렸다.

“공간이 원한다고 100평, 200평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저희가 하고 싶은 것들은 많고 그래서 그 많은 기능들을 유한한 크기의 공간 안에 유한한 저희의 체력을 활용해서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바퀴’였다. 공간을 구성하는 가벽과 가구에 바퀴를 달아 고정적인 공간이 아닌 프로젝트에 따라 변화하는 가변적 공간을 완성하게 되었다.

“올 때마다 계속 뭔가 달라지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 구상하고 이제 실제로 구현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조금 초반에는 좀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스펙타클 타운 개관전 _마계인천_ 당시 공간 모습
스펙타클 타운 개관전 _마계인천_ 당시 공간 모습

<스펙타클 타운>을 오픈하고 기회도 많아졌다. 과거 공개된 유형의 공간이 없었을 때는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 있어서 어느 정도 진입장벽이 있었다. 협업이나 만남을 원하는 누군가가 손을 내밀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갑자기 어느 날 불쑥 문 열고 들어와서 뭐 안녕하세요~ 하기는 좀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공간이 있으므로 훨씬 더 뭔가 같이 누군가를 우연히 만날 수 있을 접점과 가능성이 훨씬 더 늘어났다고 생각해요.”

그는 우연한 만남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공간의 장점으로 뽑았다. 이웃들과의 협업도 유의미하다. 지난 여름 공간을 오픈하면서 진행한 개관전 <마계 인천>에선 이웃 카페인 ‘동양가배관’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진행하였다.

“<동양가배관>은 커피를 하는 남편과 문화기획을 하는 아내가 운영하는 배다리에 있는 카페예요. 그래서 그런지 항상 재미난 프로젝트를 많이 하세요. <스펙타클 타운>하고는 개관전시 주제인 <마계 인천>을 상징하는 두 가지 음료를 함께 기획했어요. 하나는 마계의 씁쓸함을 담은 커피 블랜드 원두였고 다른 하나는 ‘서해 갯벌 스무디‘라고 갯벌의 색을 흑임자로 표현하고 거기에 소금을 뿌려 인천 바다의 짠맛도 표현한 음료예요.”

연말에는 그들과 <영감 반상회>도 함께 진행하였다. 배다리가 궁금한 창작자 혹은 예비 창작자들과 함께 마실하듯 동네를 구경하고 차를 한잔 마시며 창작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 외 예전부터 배다리에 자리 잡은 ‘나비날다 책방’과 ‘스페이스 빔’과의 협업도 지속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더 많은 이웃들과 같이 협업의 범위를 넓혀가는 걸 계획하고 있다.

스펙타클 타운 프로그램
스펙타클 타운 프로그램

현재는 공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며 <스펙타클 타운>과 결이 맞는 프로젝트들을 하나둘씩 찾아가고 있는 단계이다. 앞으로 시간이 흘러 누군가가 질문을 건넨다면 현재 이야기 한 것과 완전히 다른 성격이 공간이 될 수도 있다고 그는 말한다.

“여기가 뭐든지 될 수 있는, 아직은 열려 있는 길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데 저희끼리만 공간을 쓰다 보면 나중에는 그런 가능성이 점점 하나로만 굳어질 수 있잖아요. 근데 그렇게 굳어지지 않게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많은 분들이 여기를 전혀 다른 용도로 다양하게 사용을 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어요.”

스펙타클 타운 회의
스펙타클 타운 회의

‘인천스펙타클’은 지역에서 수많은 활동을 하며 곳곳에 새로움을 심어내고 있다. 기획자 이종범은 앞으로 <스펙타클 타운>을 통해 문화예술의 씨앗 들을 사람들한테 알리고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힌다. 앞으로 배다리에 불어올 새로운 변화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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