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진채 / 소설가
제51차 인천in 터덜터덜 걷기는 완주 구이저수지둘레길로 데크길과 숲길, 마을길 8.8㎞를 걷는 일정이었다. 35명이 참여했다. 전날 늦은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오전 7시 인천시교육청 앞에 모일 때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3시간 반 예정이었던 길은 한없이 밀리고, 비는 오락가락했다. 구이저수지 주차장에 닿을 때쯤엔 5시간이 걸려 12시였다. 내리다 그치길 반복했던 비까지 굵어져 있었다.
서둘러 걷기를 시작했다. 우산에 닿는 빗소리가 마음을 바쁘게 했다. 경관교량을 지나자마자 숲길로 접어들었다. 저수지 둘레길이라고 해서 3시간 넘게 내내 물빛만 보고 걷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숲길, 데크길, 마을길이 이어졌다. 절반 정도의 길은 숲길이었고, 조금 힘들게 숲길을 걸어나오니 절반 정도는 마을길, 들길로 평지였다.
다행히 비는 걷기를 시작한지 얼만 되지 않아 잦아들었다. 숲길은 인공으로 조성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저절로 만들어진 오솔길이 많았고, 미끄럽지 않았다. 물기를 머금은 식물들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저수지 근처 나무들은 물소리가 그리운 듯 모두 저수지 쪽으로 가지를 뻗고 있었다.
술테마박물관 주변에서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추울까 염려했지만, 비도 그쳤고, 밥 먹기도 적당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술테마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기도 했다.
다시 저수지둘레길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숲에서 볼 수 있는 각시붓꽃, 애기나리, 또 이름을 불러주고 싶은 꽃들도 보였다. 지난해 진 나뭇잎들을 거름삼아 새로운 생명들이 솟아나고 있었다.
운무에 싸인 마을은 고요했다. 걷는 내내 지나친 사람이 한 손 안에도 안 들었다. 매실이 제법 통통하게 몸을 불리고 있었고, 아까시꽃 향도 짙었다. 저수지에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도 더러 있었다. 날이 좋았다면 지나치는 사람에게서 전라도의 넉넉한 사투리를 들었을 텐데, 싶었다. 호젓해서 좋았기도 했고, 전라도까지 와서 그 지방사람 한 사람 못 만나고 가는 아쉬움도 있었다. 마을의 어느 집 잘 가꾸어진 정원의 큰꽃으아리가 대신 눈길을 붙잡았다.
앞뒤 일행 간격이 많이 벌어졌지만 갈림길마다 안내판이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우산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도 좋았는데 길 걷기가 끝나갈 때 쯤엔 비가 그쳤다는 신호처럼 새 우는 소리가 들려 나뭇가지 끝을 바라보게 했다.
아침엔 많이 차가 밀려 시작이 늦었지만 12시부터 4시까지 예정된 시간에 걷기를 마칠 수 있었다. 비가 재촉한 건 식물의 키가 아니라 우리 발걸음이었나보다. 인천 가는 길도 아침처럼 밀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정체는 없었다. 돌아가는 차안에서 순식간에 노곤이 풀리며 한 시간쯤 단잠에 빠졌다 깼다. 한결 개운했다.
7시가 조금 넘어 헤어지는 얼굴이 아침보다 훨씬 다정하게 다가왔다. 같은 길을 걸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봄 걷기는 보약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