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인천어린이과학관(계양구 방축동)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요새는 농사철이라 논에 물을 대놓은 곳이 많다. 반면 성토한 논도 있다. 이화동을 직선으로 관통하는 도로 공사로 아예 파헤쳐진 논도 여럿 보인다. 기온이 오르며 만물이 소생한다는데, 건설 경기도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내 주변의 자연이 조금씩 돌이킬 수 없는 장면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보는 게 썩 내키지는 않는다. 그 설움 모아 대신 울어주는 것인지 저녁만 되면 집 앞 논두렁의 개구리 합창이 몹시도 애달프다. 과거 중학교 시절, 5월이면 합창대회가 열렸던 기억이 난다. 마스크도 벗었으니 올해는 사람들의 합창도 이곳저곳에서 울릴 것이다. 푸르게 부풀어 오르는 계양산 뒤편의 인천어린이과학관을 찾았다. 4월은 과학의 달이기도 하고 어린이 세상의 때 묻지 않은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사전 예약을 진행했다.
나서기 전, 과학관 인근 귤현동의 비닐하우스에서 불이 났다는 안전 문자에 가슴이 덜컹했다. 얼마 후 70대 노부부가 먼 길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요새 불 소식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모두 불조심, 반드시 사전 예방에 힘써야 한다. 인천어린이과학관은 어린이만 이용하는 공간은 아니다. 과거에는 산과 들, 저수지 등에서 소풍을 빙자해 체험활동을 했었다. 지금이야 갖추어진 장소에서 정해진 동선 따라 걸으면 된다. 마음만 먹으면 체험이라는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게임처럼도 느껴졌다.
데스크에서 예약 확인을 하다가 두 분만 오셨냐는 질문에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 없이 성인 두 분 맞느냐는 질문이 이상한 건 아닌데 시설의 분위기를 단박에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곳은 어린이의 ‘안전’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영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보호자와 함께 이용하는 시설이다 보니 여러 보안 규제가 알게 모르게 작동하고 있다. 평일 기준 하루 최대 1,000명 정도로 5회에 나눠 입장시킨다. 잠시 보호자 아닌 어린이로 둔갑한다.
인천어린이과학관은 2009년 짓기 시작해 2011년 개관하였다. 시설은 다섯 마을의 테마로 꾸며져 동선을 따라 천천히 이용할 수 있다. 무지개마을, 인체마을, 비밀마을, 지구마을, 도시마을이 보호자와 어린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단, 어린아이 없이 무지개마을을 이용할 순 없었다. 인체마을부터 널따란 공간을 탐험한다. 흐름으로는 아이들의 달리기와 함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안내 설명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인체를 탐험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재미있는 일이다. 걸어서 목구멍 속이나 대장 속을 살펴볼 수 있다(내시경이 된 느낌이다).
비밀마을은 여러 직업의 종류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아나운서나 건축가, 의사, 요리사, 예술가 등 사회 속에서 활약해 볼 수 있는 꿈을 대입해서 가상 체험해보도록 꾸몄다. 나의 유년시절에는 마치 소방관, 군인, 과학자가 직업의 전부라 여겼었다.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일찍 알았다면 어땠을까 싶은 ‘아차차!’의 시간이었다. 많은 이용객으로 고장 난 기기도 가끔 눈에 띄었다. 한 층을 더 올라 지구마을에 도착해서 지구의 속내를 알아보았다. 우리가 사는 지구 행성의 구조와, 함께 사는 동식물들의 모습이 모형 및 파노라마 프로젝터를 이용해 입체적으로 구현되고 있었다. 이동 경로 중간마다 설명을 듣거나 별도의 체험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많았는데 과학을 한층 가깝게 접하는 정거장 같았다.
마지막으로 도시마을로 뛰어들었다. 모든 과학적 지식이 활용된 미래 생활이 어떨지 상상할 수 있게끔 구성된 공간이었다. 우주가 새로운 공간으로 소개되고 로봇이 함께하는 삐뚤빼뚤하지 않은 세련된 모습이 그려져 있던 곳이었지만, 찬물 격으로 아이 같은 어른의 시선에는 향후 마주칠 현실에 온몸이 경직됨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1층 로비는 어린이들의 마음 바다처럼 오색찬란한 색깔이 파도치고 있었다. 한편 시설의 전기를 옥상에서 자체적으로 얻는다고 하니 시설 자체가 비밀의 마을이었다. 1층 기획전시실에는 세 개의 과학관이 협업한 ‘모든 사물의 역사’라는 전시가 막바지였다. 학교에서 이용되는 여러 사물의 과학적 원리를 흥미롭게 알 수 있었으나 공간 구성 부분에서는 다소 아쉬웠다. 밖으로 나와 과학관을 한 바퀴 돈다. 인근 주민들도 자주 이용하는 동네 놀이터임이 틀림없다. 뒤편 야외 생태체험장에는 어린왕자가 홀로 놀고 있었다. 5월이 되었으니, 친구들이 좀 더 찾아올 것이다. 결코 외롭지 않을 사회의 품을 느끼는 것이 최고의 ‘과학’이 아닌가 생각한다.
과학관 건너편 이름 없는 산에 외할머니가 잠들어 계신다. 혹여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무슨 일인가 깨어나실 지도 모를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어린이들 속에 섞여 잠시 푸른 나래를 펼쳐보았던 재미난 시간이었는데, 어린이들 각자의 마음 빈 곳에 무지개가 떴는지 모르겠다. 5월 어린이날 비 내림이 야속했지만, 아무쪼록 어린이의 건강, 생각, 미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