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웃음 가득한 장미의 시간들, 연수장미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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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웃음 가득한 장미의 시간들, 연수장미공원에서
  • 유광식
  • 승인 2023.06.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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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연수동 장미공원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제철 맞아 활짝 핀 장미꽃, 2023ⓒ유광식
제철 맞아 활짝 핀 장미꽃, 2023ⓒ유광식

 

무더운 여름이 예상된다. 부모님 댁 에어컨을 청소하고 배기 상태를 확인하는 것으로 월하(越夏)를 준비한다. 그렇게 앉아 세상을 살피니 이곳저곳에서 뻘건 불기둥을 내뿜으며 까만 우주로 이상한 물건들을 로켓배송 중이다. 그 넓고 까만 우주 케이크에 불 켜려고 한 건 분명 아닐진대, 쏘아대는 의도를 보니 편안한 미래보다는 어떤 위기로서의 미래가 머릿속에 반짝반짝하는 건 나뿐인가 싶다. 늘어나는 인구에 맞춰 인천의 자치구 분구 계획도 공식 발사되었다. 일련의 노력이 환상인지 실제인지 그 기분을 만끽하려 잠시 문학산 아래 장미공원을 찾아가 본다. 

 

새롭게 설치된 공원 명찰, 2023ⓒ유광식
새롭게 설치된 공원 명찰, 2023ⓒ유광식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어느 모녀, 2023ⓒ유광식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어느 모녀, 2023ⓒ유광식

 

인천의 배꼽산이라고도 하는 문학산 남쪽 기슭에는 장미공원이 있다. 지금이야 전국 어디에 가든 장미공원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흔히 접하는 게 장미이자 공원이다. 지난 5월은 가정의 달이자 여러 축하 행사가 많았을 기간으로, 이때 장미의 출장이 많았을 것이다. 연수장미공원도 그런 민원을 통 크게 해결하려 했는지 부지 안에 수만 송이 장미를 집결시켰고, 밤에 피는 장미인 ‘LED장미’까지 대기 시켜 두었다. 공원 산기슭에서 내려다보면 연수구가 드넓게 펼쳐진다. 공원 지정 이후 77년이 지나서야 조성을 최종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장미원을 산책하는 시민들, 2020ⓒ유광식
장미원을 산책하는 시민들, 2020ⓒ유광식
마음 부풀 듯 활짝 핀 장미꽃, 2023ⓒ김주혜
마음 부풀 듯 활짝 핀 장미꽃, 2023ⓒ김주혜

 

연수장미공원은 3년 전에도 한 번 찾은 적이 있다. 다시 와보니 주차장이 추가되었고 기존 교회와 무허가 건물터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산책로가 늘었고 좀 더 쾌적한 모습으로 인근 시민들을 맞이하며, 문학산 등산로 입구이기도 하다. 강한 햇살이었지만 날이 좋아서인지 공원에는 가족 나들이를 비롯해 다정한 추억을 만드는 연인들, 축구하는 아이들, 등산객 등이 배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다들 장미원 안의 꽃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그야말로 사진 맛집이 따로 없다. 어르신 한 분은 심겨진 장미의 면적이 조금 아쉬웠는지 많이 피어 있는 곳이 또 있냐며 물어 오셨다. 5월 말이라 개화 시기가 조금 지나기도 했고 낮 더위에 지쳐 자리에 누울 지경이기도 했다. 

 

장미원으로 봄 배웅 나온 시민들, 2023ⓒ김주혜
장미원으로 봄 배웅 나온 시민들, 2023ⓒ김주혜
트릭아트 계단에서 추억 남기기, 2023ⓒ김주혜
트릭아트 계단에서 추억 남기기, 2023ⓒ김주혜

 

공원 아래는 함박마을이다. 인천의 대표적인 고려인 마을로 알려진 곳이다. 공원 아래 펼쳐진 거리로 잠시 미끄럼을 타고자 골목으로 내려가 본다. 반듯하게 구획된 오래된 주택 사이로 신축건물 공사의 후끈거리는 소음이 심하긴 했다. 주된 도로 양옆으로는 평소 보기 힘든 중앙아시아 문자를 이용해 메뉴를 설명하는 이국적인 상점들이 많았다. 통신사 대리점은 이 동네 대표적인 무선링크 통제실일 것이다. 다양한 국적의 민족이 사는 만큼 그 품이 넓어야 할 것이고 피워내야 할 사랑이 진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한편 뜨거운 날씨임에도 좁은 운전석에서 맛있게 주무시는 만두ㆍ찐빵 푸드 트럭 아저씨의 시간을 해치고 싶지 않아 잠시 까치발을 하고 걷는다. 

 

함박로의 한 상점(엄마 케이크 빵집), 2023ⓒ유광식
함박로의 한 상점(엄마 케이크 빵집), 2023ⓒ유광식
고려인마을(함박마을) 함박로 풍경, 2023ⓒ유광식
고려인마을(함박마을) 함박로 풍경, 2023ⓒ유광식

 

장미공원 끄트머리에는 무척 커다란 미루나무 한 그루가 있다. 3년 전에도 그 풍채가 남달라 담아 두었는데, 마을의 이정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바람에 이리로 저리로 몰려 휘날리는 모습이 평화롭다. ‘쒸익~쒸익~’ 하는 소리는 마치 거친 마음을 단번에 쓸어버리는 것도 같고 세 사람이 둘러도 모자랄 허리둘레는 굳건한 정신마저 들게 한다. 공원 이곳저곳 벤치가 마련되어 있지만 미루나무 옆에 낡은 의자 하나 가져다 두고 쉬는 시간이 좀 더 멋있을 것 같단 생각이다. 미루나무를 생각하면 무언가 아련함을 연상시키는 것 같아 그저 두 눈 감고 끌어안고 싶은 심정이 들어 신기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보듬으며 걸어갈 다문화에 대한 인식의 지향점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상징으로도 읽힌다. 이날 미루나무의 반가운 손짓에 화답이라도 하듯 기꺼이 마음 흔들게 놔두었다. 

 

LED수국 정원 앞으로 키다리 미루나무, 2023ⓒ유광식
LED수국 정원 앞으로 키다리 미루나무, 2023ⓒ유광식

 

높아지는 기온 탓이 크겠지만 하늘엔 뭉게구름이 많이 피었다. 함박마을에서는 가을에 ‘함박웃소’라는 이름의 축제가 열린다. 모두의 미소를 모아 함께 먹고 즐기고 나누는 자리가 무척 필요한 시간이겠구나 싶다. 분명 ‘미래’를 안고 들어왔을 사람들의 현지 ‘불안’을 잠식시키고 불그스레한 삶의 ‘얼굴’로 피어오르길 아니 바랄 수 없다. 그래서일까. 지난 시절보다 다양한 빛깔의 장미가 보여서 좋았다. 이는 바라보는 아이나 청년, 어르신들의 표정에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가 모두, 마치 장미가 되어 세탁소를 나선 것처럼 화사하다.

 

문학산 위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2023ⓒ유광식
문학산 위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2023ⓒ유광식

 

요즘 다시 관계에 대한 생각이 깊다. 하루에도 수만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가만히 두질 않는 바깥 상황도 상황이지만, 우리 사는 가까이 장미꽃 하나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삶에 바치는 사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된다. 멀리 우크라이나 땅에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적 같은 국제 관계가 형성되어 벅찬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때를 재촉해 본다. 내가 바라보고 보듬는 공간이 좋아진다는 것은 굳이 ‘어린왕자’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정말 기적 같은 일임을 안다.    

 

장미공원을 지키는 미루나무, 2020ⓒ유광식
장미공원을 지키는 미루나무, 2020ⓒ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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