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 관곡지 입구에 강희맹의 묘역과 신도비
지구 기온 관측 이래 가장 뜨거웠다는 7월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이 맘 때면 시흥시 하중동 관곡에 있는 5만 5천여평의 연못에 수련과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관곡지(官谷池)는 인천에서 가깝고 일년 어느 계절에 찾아도 자연과 역사의 향기를 짙게 맡을 수 있는 곳이다.
봄이면 관곡지 입구의 길게 뻗은 길 양쪽으로 들어선 벚나무가 온통 연분홍 벚꽃으로 휩싸여 꿈길 같은 벚꽃 터널을 연출해 낸다.
6~7월 이 맘 때면 끝이 보이지 않게 넓게 퍼진 관곡지에는 앙징맞게 예쁜 수련이 연못 가득히 떠 있고, 늘씬하고 기품있는 연꽃의 고아한 향기가 그득하다.
가을. 빛깔 고운 벚나무 단풍 길을 걸어 5만여평 관곡지의 두렁길에 들어서면 스산한 바람결에 서걱이는 억새의 서글픈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문득 스러져 간 젊은 날의 추억에 가슴 한 쪽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흰 눈 소복히 쌓인 교교한 들녘에 서서 천년 역사의 향기에 잠시 취해 보는 시간도 좋다.
관곡지를 조성한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강석덕(姜碩德), 어머니는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이다.
심온은 세종의 왕비인 소현왕후의 아버지로 조선 4대 임금이신 세종이 강희맹의 이모부이다.
시·서·화 삼절(三絶)로 유명한 인수부윤(仁壽府尹) 강희안(姜希顏)이 형이다.
강희맹은 1442년(세종 24) 진사시에 합격하고 1447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그 역시 시·서·화에 뛰어난 문장가였다.
시문집으로 『사숙재집(私淑齋集)』이 있고, 관직에서 물러나 경기도 금양현(지금의 경기도 시흥시·광명시와 서울특별시 금천구 지역)에서 지내면서 농사에 관해 정리한 「금양잡록(衿陽雜錄)」, 실생활 내용을 엮은 「촌담해이(村談解頤)」, 할아버지·아버지·형의 시를 모아 편찬한 「진산세고(晉山世稿)」등의 저서가 있다.
또한 농촌에서 채집한 농요를 모아 정리한 「농구십사장(農謳十四章)」은 농촌의 실제 생활과 농민의 애환을 잘 묘사하고 있다.
1455년(세조 1)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어 예조참의·이조참의를 역임하고, 1463년(세조 9) 진헌부사(進獻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중국에서 돌아올 때 난징[南京]의 전당지(錢塘池)에서 붉은 연꽃 씨를 채취하여 안산군 초산면 하중리(지금의 시흥시 하중동) 관곡지(官谷池)에 재배하였다.
관곡지는 그의 사위 사헌부감찰 권만형(權曼衡)의 후손들에 의해 현재까지 관리되고 있다.
1986년 3월 시흥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되었다.
강희맹이 심은 관곡지의 연꽃은 다른 연꽃과 달리 색이 희고, 꽃잎은 뾰족하며 꽃의 끝부분은 담홍색 연꽃으로 이곳에서 재배에 성공하여 널리 퍼지게 되었다.
관곡지의 연혁은 1844년(헌종 10) 안산군수로 부임했던 권용정(權用正)의 『연지사적(蓮池事蹟)』과 『연지수치후보초(蓮池修治後報草)』에 잘 남아 있다.
강희맹 묘와 신도비는 관곡지 입구인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다.
묘는 동북향으로 자리하고 봉분은 부인과 합장묘인 단분(單墳)이다.
봉분의 높이는 3m, 둘레는 7m로 묘역의 넓이는 400㎡이다. 묘 중앙에 묘비가 있고, 그 앞에 상석과 향로석이 있으며 묘 좌우에 문인석이 있다.
장명등이나 망주석은 세워져 있지 않다.
좌우의 문인석은 두 손을 가슴에 대고 자연스럽게 맞잡은 단아한 자세로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형태이다.
시호는 문량(文良)으로 1488년(성종 19) 신도비가 세워졌다.
신도비의 비문은 예문관대제학 서거정(徐居正)이 짓고, 글씨는 홍문관박사 박증영(朴增榮)이 쓰고 전액(篆額)하였다.
후대에 비각(碑閣)이 세워졌다.
강희맹 묘 앞의 묘비에는 “의정부좌찬성 진산군 문량공 강공지묘 정부인안씨 부장(議政府左贊成晉山君文良公姜公之墓貞夫人安氏祔葬)”이라고 적혀 있다.
진주 강씨 문량공파 묘역 입구에는 근년에 조성된 문량공 사우(文良公祠宇)와 재실(齋室)인 연성재(蓮城齋), 강희안·강희맹·강귀손 신도비 3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강희맹 묘 및 신도비는 1985년 9월 20일 경기도 기념물 제8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기념물로 재지정 되었다.
강희맹 묘 및 신도비는 조선 전기 사대부의 무덤 양식과 석물 구조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참고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온도계가 생긴 이래 가장 덥다는 금년 7월이지만 천년의 향기를 품고 있는 강희맹 묘역 위의 뭉게 구름에 가슴속이 한결 시원해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