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장, 인천 역사 거점에 공연 문화를 지피다
상태바
개항장, 인천 역사 거점에 공연 문화를 지피다
  • 공지선
  • 승인 2023.08.25 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역을 일깨우는, 청년문화예술]
(8) 신포동 '인천여관 1965'
인천시 중구 신포동 '인천 여관 1965' 내부 공간

 

‘개발’이란 이름 아래 수많은 삶의 터전이 사라졌다. 삶과 이야기가 생동했던 건물들은 사진으로만 그 증거를 남기고 보기에만 멀끔하고 튼튼한 신축 건물들, 고층 아파트로 대체됐다. 원도심이란 이름은 몸을 뉘던 자들이 떠난 후에야 붙여졌다. 신도시의 반대말, 노후와 낙후라는 오명으로 폄훼된 지역은 한때 모든 인프라가 모이던 도시의 중심지였다.

인천은 개항 이후 외국인들이 들어오며 가장 ‘신식’의 것들이 넘치던 지역이었다. 개항장으로 불렸던 신포동과 동인천 일대는 새로운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행정과 경제의 요충지였다. 그러나 경인선 개통과 뒤이은 도시의 급격한 팽창, 신도심의 등장으로 이 일대는 빠르게 쇠퇴했다. 말 그대로 원도심이 된 것이다.

하지만 축적되었던 이야기의 깊이 때문인지 지역은 쉽게 잠들지 않았다. 역사를 가진 근대 건축물들은 새로운 가치로 떠올랐고 지난날 깊이 새겨진 이야기들의 나이테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다시금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 현장, 신포동 일대, 자신의 역사를 켜켜이 쌓아가는 공간이 있다. 일자리와 미래를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그 시절 ‘인천여관’, 지금의 ‘인천 여관 1965’가 바로 그곳이다.

 

김재형 피디
김재형 피디

 

“여기가 원래 1965년에 지어져 여관으로 쓰이던 건물이었어요. 공간의 정체성과 역사를 기억하고자 ‘인천여관1965’로 명명하고 복합문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간을 운영하는 김재형 대표는 연극단체 올라아트컴퍼니의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서울과 인천을 거점으로 극단과 다양한 극을 만들어 온 그가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데에는 20년부터 21년에 걸쳐 미림극장에서 진행했던 이머시브연극 ‘걸리버여행기’가 큰 계기가 되었다.

“이머시브 연극이라는 것이 관객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극을 관람하고 퍼포머와의 소통을 통해 단순히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로 극을 이끌어가는 형태인데요. 약 2년 동안 ‘미림극장’에서 관련 연구를 하고 극을 진행했어요. 그러면서 어떤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거점으로 연극이란 매체를 결합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그에게 인천문화재단의 지역거점 청년문화특화거리 ‘청년점점점’ 사업은 좋은 기회로 다가왔다. 지역의 역사와 맞는 이야기를 지정하였고 이를 다듬어 기획안을 작성하였다. 2022년 해당 사업에 선정이 되고 공간을 알아보던 그에게 ‘인천여관’은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공간을 알아볼 때 부동산을 통해 여러 군데를 좀 둘러볼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이 공간을 소개받았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인천여관의 역사성도 그렇고 옥상까지 하면 총 3층의 건물을 전부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그렇고요. 1층 같은 경우는 공간이 터져있지만 2층은 객실이 있던 공간의 형태가 남아있거든요. 저희가 극을 진행하며 여러 공간을 좀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 점도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서 구두로 계약하고 이후 일정은 모두 취소했어요.”

공간을 이어받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필요한 부분은 조금씩 손을 보았고 사람들을 끌어당기기 위해 포토존도 설치했다. 공간 곳곳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여러 차례 배치도 바꾸며 실험을 지속했다. 어떻게 하면 이머시브 연극을 공간과 결합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나갈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렇기에 올해 진행된 워크숍 공연은 더 유의미 했다. 일제강점기, 신포동에 실존했던 용동권번을 소재로 한 극이었다.

“권번은 현재로 따지면 현재 연예기획사였어요. 현재에 들어서 일제의 만행 때문에 그 이미지가 많이 왜곡되기는 했지만 기생들은 그 당대 최고의 여류 문화 예술가였던 거죠. 독립 이후에도 일제가 씌운 이미지 때문에 곡해된 것들이 많더라고요. 그 흔적은 오늘날도 찾아볼 수 있어요. 용동권번 계단의 음각에서요. 여러 차례의 리서치를 거쳤고 기생의 이야기를 연극적인 상상력을 더해서 관객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해당 워크숍 공연은 ‘붉은 연꽃’이란 제목으로 5월과 6월 총 2회 진행되었다. 인천 개항장의 한 호텔에, 외국인들의 축하 연회가 열리고 흥을 돋우기 위해 연회에 불려온 용동권번 최고의 기생 홍련화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공간을 운영하면서 어려움도 있었다고 김재형 프로듀서는 말을 이어갔다. 노후한 공간에 대한 수선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콘텐츠에 대한 고민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런 그가 앞으로 공간을 운영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공간보단 콘텐츠가 먼저임을 밝혔다.

“공간 운영에 대한 경험이 없으셨다면 막연히 내가 그 공간만 있으면 뭐가 어떻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거든요. 근데 막상 공간이 생기고 나면 그 안에서 우리가 채울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느낄 수가 있어요. 공간을 얻기 전에 운영할 콘텐츠들을 좀 명확히 하시고 그것에 대한 계획을 충분히 세운 뒤에 해도 늦지 않아요.”

현재는 본인도 여러 실험을 하며 공간에 대한 경험치를 쌓고 있다며 앞으로 인천여관1965라는 공간을 통해 공연 예술이 일반 대중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더 많은 분과 만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공연을 만드는 것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관객분들과 만날까를 고민해요. 워크숍 공연으로 첫발을 뗐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아요. '예산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면?',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는 관객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까?’ 등등이요. 앞으로 여러 시도를 해보려 합니다. 시행착오를 겪겠지요. 그래도 묵묵히 가보겠습니다.”

그는 문화예술 활동을 향유하고 누리는 것이 인생을 더 아름답고 윤택하게 만든다고 믿는다며 앞으로 공간에서 이어질 다양한 창작 활동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