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목조아미타여래좌상(송암미술관)
연일 계속되는 혼란스런 뉴스에 피로감이 더해지는 요즘, 조용한 사색을 위해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에 위치한 송암미술관을 방문했다. 송암미술관은 동양제철화학 창업자 故송암 이회림(1917-2007) 회장이 소장한 작품을 전시하는 사립 미술관으로 1989년 개관하였다. 2005년 인천광역시에서 고인으로부터 미술관 건물과 유물을 기증받아 2011년 4월 시립미술관으로 재개관했다. 故이회림 회장은 한국 고미술 애호가로서 평생 수집한 문화재만 8400여점에 달한다.
그 덕분에 송암미술관에서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소나무와 영지버섯을 그린 작품)와 보물인 평양성도(平壤城圖/조선후기 평양의 모습을 담은 작품)등 대한민국 보물과 시유형문화유산을 만나볼 수 있다. 야외전시장에서는 석등, 문인석 등 석조 유물과 광개토대왕릉비(복제)가 전시되어 있고 1층에는 시대순으로 삼국시대 토기부터 고려~조선 시대의 공예품, 2층에는 서예와 조선시대 서화가 다수 보관되어 있다.
인천시립박물관 유물탐사 첫 번째 순서는 송암미술관 1층 불교미술전시관에 자리한 목조아미타여래좌상(木造阿彌陀如來坐像)이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한문을 풀어보면 목조(木造) - 나무로 만들어졌고,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 진리를 깨달은 사람 즉 석가모니의, 좌상(坐像) - 앉은 모습을 나타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았던 불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경주의 석굴암에 보존된 불상은 돌로 조각되어 있고, 송암미술관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나무로 조각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재료의 귀천을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철, 동, 나무, 돌 등 불상을 만드는 재료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귀한 재료인 금과 은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공덕(功德)을 높이 사고 값싼 재료로 만들었다고 해서 공덕을 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료의 제한은 두지 않았지만 나무로 조각할 경우 향을 넣어 달인 물로 세척하였고, 금속으로 조각할 경우 세속의 다른 용도로 사용한 적 없는 순수한 재료를 사용하여 예의를 갖추었다고 한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 50cm, 어깨폭 21cm, 무릎폭 32cm로 어깨폭과 무릎폭이 1:1.5로 안정적인 비례로 조각되었다.
부처의 모습은 일반 중생과는 다르게 표현되는데 그 존엄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신체상의 특징으로 크게는 32가지, 작게는 80가지가 있다.
머리 위에 상투처럼 솟은 ‘육계’, 나선형 머리카락인 ‘나발’, 눈썹 사이의 흰 털인 ‘백 호’(흔히들 점으로 잘못 알고 있다), 목에 있는 3개의 주름인 ‘삼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나발은 앞과 뒷부분이 부분적으로 떨어져 나간 상태이며 고개를 살짝 숙인 모습이다. 눈썹과 콧털은 녹색, 입술은 주색(朱色/선명한 빨간 주황색)을 칠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손의 모양을 보면 하품중생의 아미타구품인 수인을 결하고 있는데 하품중생이란 불교 극락왕생의 구품(九品/극락에 다시 태어날 때의 아홉 등급) 가운데 상품, 중품, 하품의 각 중간 자리인 상품중생, 중품중생, 하품중생 중 하나이다.
‘불상마다 손 모양에 차이가 있는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에 함께 전시 되어있는 다른 불상들을 살펴보았다.
불상의 손 모양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계인(契印)과 손가락만으로 특정한 모양을 짓는 수인(手印)으로 나누어진다. 그중 수인은 열 손가락으로 특정 모양을 만들어 부처님의 덕을 나타낸 것인데 교리상 중요한 의미를 담기 때문에 함부로 변형하면 안된다.
수인의 종류는 손바닥이 하늘로 향한 채 왼손 위에 오른손을 포갠 선정인(禪定印), 선정인에서 왼손은 그대로 두고 오른손을 무릎에 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두 손을 어긋나게 마주대어 수레바퀴 모양을 나타낸 전법륜인(轉法輪印), 다섯 손가락이 위를 가리키도록 두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로 올린 시무외인(施無畏印),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아래로 늘어뜨리는 여원인(與願印), 왼손의 검지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싼 지권인(智拳印),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이 있다.
아미타구품인은 중생을 상중하 3등급으로 나누어 상품은 엄지와 검지를 맞댄 모양, 중품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모양, 하품은 엄지와 약지를 맞댄 모양을 나타낸다. 사진 속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수인은 아미타구품인 중 하품중생, 석가모니부처는 항마촉지인, 비로자나부처는 지권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상과 일반 공예품의 가장 큰 차이는 제작 후 종교적인 의식을 치른다는 점인데 불상에는 영원한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바닥 쪽에 구멍을 내어 복장물(腹藏物/불상 안에 봉안되는 불교적 상징물)을 넣었다고 한다. 불상이나 보살상을 만들고 복장을 넣어 봉안하는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다룬 「조상경(造像經)」이라는 책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의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는 복장물이 남아있지 않으나 하단에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복장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복장물은 불경(佛經/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책)과 의복, 금, 은, 칠보와 같은 보물을 담은 후령통(候鈴筒)과 오곡(五穀) · 오향(五香) 등 불교의 교리를 상징하는 것을 말한다.
만든 이의 의도에 맞게 불상을 제작한 후 복장물로 복부 부분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복장물에서 발견되는 당시의 기록은 불상의 제작 시기와 배경, 만든 장인이 누구인지를 추정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전체적인 신체 비례와 세부적인 특징을 고려했을 때 18세기 초반에 조각승 진열(進悅)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조선은 억불숭유(抑佛崇儒)정책으로 불교가 억압의 대상이었지만 화려함이 특징인 고려시대 불교미술과는 다르게 대중적이고 개성적인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제작자로 추정되는 진열은 1670년 전후에 태어나 1700년부터 전라도, 경기도, 경상도 등의 사찰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한 조각승이다. 1695년 전북 전주 서고사 나한전의 가섭존자상의 발원문을 통해서 성심(性沈)의 문하에서 불상 제작의 수련기를 거쳤음을 알 수 있으며, 1719년 목포 달성사 소장 목조지장보살상과 시왕을 개금(改金/불상에 금칠을 하는 작업)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의 작품 중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특히 1713년 경기도 고양 상운사의 불상들과 양식적인 특징을 같이하고 있어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18세기 초반 불상 연구에 중요한 유물임을 인정받아 2015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68호로 지정되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찾은 송암미술관은 평화롭고 지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치가 높은 유물들로 구성된 상설전시 및 특별전시 외에도 다양한 주제의 교육 프로그램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어린이, 청소년 관람객과 함께하는 경우 방문 전 박물관 프로그램을 참고하면 좋겠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관람시간은 09:00~18:00으로 마감시간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하다. 혼자 여유롭게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정기해설시간(1회 10시 30분/2회 13시 30분/15시)에는 문화해설사를 통해 유물 정보를 들을 수 있으니 해설 시간에 맞추어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