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이민자들의 여권, 신부될 여인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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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이민자들의 여권, 신부될 여인의 사진
  • 민정숙 객원기자
  • 승인 2023.12.0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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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속으로]
(7) 대한제국 집조(여권)와 사진신부
인천in이 인천시립박물관과 협력하여 본관 및 분관 소장 유물들을 탐사하고 독자·시민들에 소개합니다. 인천의 역사·문화를 대표하는 박물관 속 유물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떤 유래와 의미를 담고 있는 지 알아보며 지역 역사문화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일곱번째 순서는 이민사박물관의 집조와 사진신부입니다.

 

- 집조(執照, 대한제국 여권)

해외여행 할 때 여권 지참은 필수다. 개항과 함께 많은 외국인들이 조선에 들어오자 대한제국(1897~1910)은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국내를 여행하는 외국인에게는 ‘호조’를, 외국으로 나가는 조선인에게는 지금의 여권과 같은 ‘집조’를 발급하였다. 대한제국은 1902년 하와이 이민 업무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유민원’을 설치하였고 여권 관련 업무를 관리하였다.

월미도에 위치한 한국이민사박물관은 네 개의 전시실에 이주민의 역사, 유물을 소개하고 있다. 이민사박물관 전시품 중 ‘집조’라고 표기된 여권이 눈에 띄었다. 100년 이상 되었지만 비교적 내용을 알 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양호하다. 박물관 홈페이지에 내용이 상세하게 소개된 집조는 고영휴의 것이다.

 

고영휴 집조
고영휴 집조

 

위의 사진은 1903년 8월 23일 대한제국 유민원에서 고영휴에게 발행한 '대한제국 해외여행장'이다. 좌측면에는 국한문 혼용, 우측면에는 영문 및 프랑스어로 인쇄 및 수기되어 있다. 왼쪽 것은 유민원 발행, 오른쪽 것은 대한제국 외부(外部) 발행이다.

박물관 해설자료에 의하면 위 여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발급번호-796

소지인의 거주지-전라도 제주군 성내면 1동

이름- 高永休

나이-49

보증인의 이름-李汝三

직업-상업

거주지-인천 우각동

 

‘오른쪽 사람이 미국 하와이를 여행함에 있어서 길을 가는데 방해가 없게 하며 또 보호하고 돕는 모든 일을 지나는 길의 각 관청에게 요청합니다'라는 내용의 문구가 있고 발급날짜는 1903년(光武 7年) 8월 23일이다.

하와이 첫 이민자들은 ‘유민원’이 발급한 이 집조를 갖고 건너갔다.

집조는 한지 한 장을 좌, 우로 나누어 왼쪽에는 주소, 성명, 연령, 여행의 목적 및 목적지와 보증인의 주소, 성명, 직업을 기재했다. 소지자의 통행에 방해가 되는 일이 없도록 각국 관사에게 보호를 바란다는 내용을 기록했다. 또 오른쪽에는 이 내용을 영문과 불어로 표시하였다.

박물관에는 다른 여행객들의 집조들도 전시하고 있어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도산 안창호의 집조도 있다.

집조를 갖고 이민을 간 한인들은 조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돌아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정착하기 위하여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인 노동자들보다 열심히 일을 했다. 새벽 다섯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의 고된 노동으로 받는 월급은 약 17불에 불과하여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그렇지만 조선인의 강한 의지와 정신력으로 극복하여 정착할 수 있었다.

 

도산 안창호 여권
도산 안창호 여권
최춘근 여권
최춘근 여권
이경도 여권
이경도 여권

 

- ‘사진 신부’(Picture Bride) 

초기 하와이 이민자들은 대부분 독신 남성이므로 배우자를 찾기 위해 고국으로 사진을 보냈고, 그 사진만 보고 하와이로 이주한 여성들이 바로 ‘사진신부’다.

사진신부는 110년 전의 사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얼굴 모습이 잘 나타나 놀랍다.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중매하는 사람을 통하여 700여 명의 사진신부들이 결혼을 위해 하와이로 떠났다.

 

‘사진신부’ 전시자료. 출처 : 한국이민사박물관
‘사진신부’ 전시자료(한국이민사박물관)

 

사진신부들의 이주 계기는 종교적 이유,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서,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은 이유 등이라고 연구 결과는 밝힌다. 이민사 연구자는 60%는 유학의 성격이라고 한다.

KBS 다큐온 ‘하와이의 사진신부’(153회, 2022. 8. 19 방영)에 의하면 하와이에서 한인공동체를 만들고 고유한 정체성과 문화를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은 사진신부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교육열도 높았고 생활력이 강하였으며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남성들은 사탕수수밭에서 일하고 받은 임금, 여성들은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여 모은 자금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사진신부들이 구심점이 된 하와이 이민 1세대의 고국 사랑은 광복 후에도 이어졌고, 후손들은 미국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신부들에 대한 자료는 하와이 한인이민 90주년기념사업에서 제작한 비디오(하단 사진참고), 사진신부 천연희에 대한 책 ‘하와이 사진신부 천연희의 이야기’ 등이 있다. 하와이대학 한국학연구소는 후손들이 자료를 기증하여 보관하고 있고 한국이민사박물관도 관련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다.

 

하와이 사진신부 다큐 케이스(좌), 하와이 사진신부 천연희 이야기, 일조각, 2022(우)
하와이 사진신부 다큐 케이스(좌), 하와이 사진신부 천연희 이야기(일조각) 2022(우)

 

천연희의 딸 메리 자보는 7권의 노트와 20개의 카세트테이프에 이민자로서의 삶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녀의 남편은 농장에서 일하는 나이 많은 술꾼이었고 책임감도 부족한 가장이어서 이혼하고 자녀들을 위하여 빨래와 바느질로 생활비를 벌기 시작했고 사업가로서 성공하였다. 교육열이 높아 자녀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하면서 독립운동도 지원하여 2022년 대통령표창도 받았다.

사진신부들은 하와이에 있는 예비 남편 사진 한 장 보고 이주를 결정할 정도로 용기, 열정, 도전정신이 있는 여성들이므로 생활력도 강하고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이었고 하와이 이주 민의 구심점 역할도 하였다.

 

미국의 치외법권을 인정하는 불평등 조항 담은 조미수호조약 문서. 출처 :한국이민사박물관
미국의 치외법권을 인정하는 불평등 조항 담은 조미수호조약 문서. 출처 :한국이민사박물관

 

- 이민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한국이민사박물관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와 열망으로 1902년 12월 22일 인천 제물포항에서 121명이 낯선 땅 하와이로 향했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신체검사에 통과한 이민 1진 102명이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한국 이민사의 시작이다.

19세기 말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한 굶주림, 서구열강의 조선 진출에 따른 많은 정치적 사건, 일본의 쌀 및 곡물 대량 반출로 인한 빈곤 등이 요인이었다고 한다.

개항의 중심지 인천은 디아스포라의 도시이다. 120년 전 대한민국 최초 이민자들이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멀고 긴 뱃길 떠났던 곳이 인천이다. 2013년부터 시작되어 올해 11회가 운영되었던 디아스포라 영화제도 인천이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하와이 이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2008년 문을 연 한국이민사 박물관은 이민의 역사를 체계화하기 위한 취지로 건립하였다.

 

인천 월미도에 있는 한국이민사박물관 전경
인천 월미도에 있는 한국이민사박물관 전경

 

박물관의 전시 내용을 보면 한국이민사에 대한 책을 한 권 읽은 듯한 느낌을 준다. 단편적으로 들어서 알고 있던 이주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전시하고 있어 흐름을 잘 파악할 수 있다. 120여 년 전 통신과 운송시스템이 열악하던 시대에 험난한 여행길을 택한 이주민들의 절박함과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의 용기를 읽을 수 있다. 상설 전시 외에 한국이민사박물관 2023년도 특별전 ‘역경을 딛고 우뚝 선 조선인, 자이니치’(2023. 12.3까지)를 전시하고 있다. 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조선인은 제도적, 민족적 차별과 싸우며 스스로 자이니치라 부르며 일본에 살고있는 재일동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재외동포청 역할에 거는 기대

현재 해외 거주 이주민은 7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다양한 사연으로 고국을 떠나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원폭 피해 동포, 사할린 동포, 고려인 동포, 파독 광부 및 간호사들, 해외 입양 동포, 다문화 가정 동포들이 조국을 느낄 수 있도록 관리하고 보살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디아스포라의 도시 인천에 새롭게 문을 연 재외동포청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한민국과 재외동포의 연결고리가 되어 서로 협력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상생발전하는 중심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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